임신 사실을 직장에 가장 먼저 알렸을 때, “축하해요” 만큼이나 자주 들은 말은 “무리하지 말고 조심하세요”였다. 임신 초기는 중요하다며 절대 안정이 제일이라 한다.
하루에 가장 무리하는 시간을 꼽자면 출근 후 여덟 시간에 이르는 회사 일상이다. 학교에서 11살 학생 26명과 8시 30분부터 14시 경까지 한 교실에 내내 붙어있는 것이 가장 무리되는 일이다. 목청 좋은 어린이들의 쩌렁쩌렁한 고함에 뛰어다니는 소음은 덤. 일으키는 먼지도 원치 않는 덤.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큰 맘 먹어야 하는 전시상황이 내가 봤을 땐 가장 큰 무리다. 감각이 예민하고 막힌 곳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학생들과 상호작용하는 즐거움을 빼면, 학교란 피로감 최대치인 장소다.
사람들이 말하는 ‘안정’은 따로 있다. 소득원은 건들지 말고, 나머지 활동을 줄이라는 것이다. 내게는 갖은 소음과 민원과 책임에서 벗어나 하루 한두 시간 수영을 하거나, 요가를 하거나, 춤을 추는 게 낙이다. 그런데 ‘안정기’를 겪는 산모는 이 중 아무 것도 권장 받지 못한다. 초기는 유산 위험이 있어 무리하지 말라고만 한다. 귀가 먹먹할 만큼의 소음에서 매일 노출되는 건 괜찮고, 조용한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 좀 치는 건 그렇게 위험한 일인가?
안정을 취해야 할 이유가 납득 되지 않아 한동안 침울했다. 내가 물구나무 한 번 서서, 수영에서 숨 한 번 차서 유산될 거면, 그동안 모르고 했던 6주 동안 무사한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지?
물론 가능성이라는 말을 나도 안다. 지금껏 괜찮았다고 같은 강도로 하다간 정말 무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짜고짜 수영 금지, 요가 금지, 근력운동 금지, 무리 금지. 종목 자체를, 움직임 자체를 뭉뚱그려 ‘무리 금지’라는 말로 퉁치는 점이 납득불가 포인트였다.
도서관에 가서 ‘임신’ 구역 책장을 처음으로 찾았다. 몇 권 책을 읽다 보니 ‘무리 금지’의 이유가 조금씩 납득이 됐다. 체온이 올라가면 안 좋다, 산소가 부족하면 안 좋다는 설명을 읽으며, ‘무리’라는 게 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과하게 열이 오르거나 숨이 차는 상황을 피하면 되는 것이다. 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복근을 과하게 쓰는 운동은 직감적으로 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복근운동이 임신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까지 찾아보진 않았다.
타협점을 찾아 수영과 요가, 무용을 계속하고 있다. 숨이 차게 물속을 수 바퀴 도는 강습반 레인에서 나와, 자유수영 레인에서 걷다가 자유형 한두 바퀴, 숨이 차려 할 때 다시 물속을 걷는다. 걸을 때도 게걸음하며 옆으로 걷기, 뛰며 걷기, 손으로 물 잡으며 걷기, 회전하며 걷기 등 현란한 움직임을 덧붙여 앞으로 나아간다. 요가도 거꾸로 서거나 복근을 많이 쓰는 동작은 피하고, 부드럽게 흐를 수 있는 빈야사 동작들을 떠오르는 대로 가볍게 이어간다. 무용 수업은 갑자기 뛰는 움직임 대신 느리게 몸의 연결을 탐색하는 소마 수업엘 나간다. 몸이 침대 위에서보다도 무용실 바닥 위에서 더 이완되어 하품까지 나올 만큼 편안하다.
아기의 집인 산모에게도, 즐거운 안정기를 누리게 해주었으면 한다. 수영 하세요, 춤 추세요 했다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최대한 안전을 확보하려는 의사선생님과 가족들의 입장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 말들 한마디로, 산모의 하루하루는 24시간보다도 더 길고 지루하고, 따분하고 꿀꿀한, 죽은 시간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산모도 이어지는 삶 안에서 즐겁게 아기를 맞이할 때 더 행복하다. 수영을 좋아하는 이라면 물속을 거닐 때 ‘아가야 너도 아기집 안에서 편안하지? 나도 물속에 있으니 안락하고 편안하다’ 교감을 나눌 수 있다. 요가를 좋아하는 수련자라면 들숨과 날숨을 오갈 때 ‘아가야, 깊은 숨을 받으렴’ 하고 고요한 숨으로 몸속의 아기와 연결될 수 있다.
심지어 어제는 이번 달부터 시작한 라인댄스 수업이었는데, “아가야, 이 리듬에 이 발동작 진짜 재미있다 그치?” 하고 혼잣말이 나왔다. 산모의 몸은 아기의 집이다. 집이 우울하고 어두울 때보다 생동감이 흐를 때, 집 안에서 태어나는 존재로서 생명력을 띈다고 믿는다.
나와 같이 아기집을 품은 여자들이 나를 잃어가는 우울감에 빠지지 않길, 나로서의 일상에 엄마로의 정체성이 더해져 더 창조적인 우리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