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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협에서 알았다, 아빠는 어디든 갈 수 있단 걸.

19. 낯선 협곡에서 가장 익숙한 사람을 떠올리다-리장 호도협(2)

by 리우화


호도협.


호랑이가 협곡을 뛰어다녔다는 전설이 깃든 곳.

그러나 그곳엔 전설보다 더 묘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

수많은 인연이 스치고, 낯선 이들이 뜻밖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어쩌면 호도협이 품고 있는 진짜 전설은

사람을 사람에게로 이끄는 그 신령한 힘일지도 모른다.




오늘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가명, 얼굴 블러 처리했습니다.

명수 아버님,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되신다면 꼭 소중한 댓글 남겨주세요! : )




리장 호도협을 등산하다 만난 친구 여섯 명과

차마객잔 쪽으로 이동하던 중

저 멀리 홀로 걷는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등산복 차림에 눌러쓴 버킷햇. 어딘가 낯익었다.


설마, 혹시? 무리에서 떨어져 그에게 슬며시 다가갔다.


”请问,你是中国人吗?”

(실례지만, 중국인이세요?)

”아… 저, 중국말 못합니다.“


나도 이제 현지인과 한국인을 구분하는 안목이 생겼나보다.


”어머, 안녕하세요! 저 한국 사람이예요!“

”아유, 뭐야! 한국 사람이예요? 아니, 저 먼치서 뒤 따라올 때 다 중국인인 줄 알았어요!“


호도협에서 만난 일곱번째 인연.

경남 창원에서 떠나오신 62세, 이명수 아버님이다.


명수 아버님의 사람 좋은 미소를 가릴 수 밖에 없어 퍽 아쉽다. 쑤이는 고향 사람 만나 좋겠다며 나보다 더 기뻐했다.




명수 아버님은 나처럼

윈난성 리장부터 샹그릴라까지 여행 중이었다.


그는 여행하는 동안 한국 사람은 처음 만났다며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빠와 동년배인 그의 미소가 어쩐지 낯익고 따뜻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밥 살게요. 마, 가입시다!”


일행 모두에게 점심을 사주겠단 그를 한사코 말리고

차마 객잔 안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호도협에 오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차마객잔에서 점심을 먹고 중도객잔까지 이동한다. 이 곳은 현지식은 물론 한국 음식도 파는 곳으로 유명하다.
명수 아버님과 나의 첫 식사, 한 상 가득한 인연의 소중함.


아버님은 돼지김치볶음밥

나는 나씨족(纳西族) 전통 음식인 햄 볶음밥.


이왕이면 현지식을 맛 봐보시란 내 제안에

그는 고개를 흔드며 말했다.


“원래 이 나이되면 지구 반대쪽에 놀러가도 한식을 찾는 법입니다.”


아버님은 2년 전 퇴직 후 세계 곳곳을 여행 중이었다.

아내분께선 아직 일을 하고 있어 아쉽지만 홀로 배낭을 맸다고.

향신료가 강한 중국 음식은 어쩔 땐 기겁할 만큼 낯설다가도

가끔은 입에 착 붙는다며 허허 웃었다.


그는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내가 참 대견하다며

지난 여행 일화를 얘기해줬다.


“내가 앱을 사용할 줄 몰라요.

그래서 길가에 있는 어디 여행사에서 위롱설산(玉龙雪山)에 가는 표를 예매했어요.


그런데 가만 보이 표에 포함된 패키지 입장권을 잘못 산 거예요.


허겁지겁 여행사에 되돌아가 표를 환불하려 보니

허 참. 이거 중국말만 알아들으니 대화가 통하나 말입니까.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환불을 받았지만 하나터먼 10만 원을 날릴 뻔 했지 뭐예요.”




중국이 여행하기 어려운 이유 ‘언어’와 ‘앱’.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고

번역기도 무용지물인 지역이 많은 데다

결제는 위챗페이, 알리페이 같은 자국 앱을 써야 한다.

문제가 생겨도 즉각 대처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중년의 아버님께서

홀로 이 낯선 땅 호도협까지 오셨다는 건

실로 얼마나 대단한 여정이었는 지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몇 달전, 아빠가 엄마랑 함께 중국으로

자유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던 일이 생각났다.

<세계테마기행>을 보고 광활한 풍경에 감명 받으신 듯 했다.

그때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거기 여행하기 복잡한 나라야.

나이 드신 분들한텐 더 힘들고. 딴데 가, 딴 데.“


조언이랍시고 아빠의 여정에

선을 그어버린 내가 불쑥 부끄러워졌다.

아빠는, 어디든 갈 수 있는데.

그 곳이 설령 지구 반대편이라 할 지라도.


주름진 눈가로 환히 웃던 명수 아버님의 얼굴에

순간 아빠가 겹쳐보였다.

괜스레 애틋한 마음이 몰려와 고개를 살짝 떨궜다.




“그럼, 친구들하고 재밌는 여행하세요.

여행길이 비슷하니 또 만나게 될 지도 모르겠네. 잘가요!”


차마객잔에서 아버님과 헤어지며 몇 번이고 허리숙여 인사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배낭여행이란 젊은 이들만의 특권이 아니란 걸.

여행에 있어 어려운 건 언어나 앱 따위가 아니라

'용기'의 유무라는 걸.


낯선 땅에서 길을 묻고

처음보는 음식을 시도해보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아버님의 모습은

그 어떤 풍경보다도 기억에 오래 남았다.


그리고 여행이란

근사한 풍경을 구경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낯선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떠올리는 과정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단순한 여행자였던 나는 그날

누군가의 딸로서 한 걸음 멈춰 섰고,

마음은 오랜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조용히 젖어들었다.


차마객잔에서 중도객잔으로 이동하는 길, 아빠에게 카톡 하나 보냈다.


아빠. 우리 다음엔 중국 여행 같이갈까?


딸로서 건넨, 첫 데이트 신청이었다.




진정 인연이었던걸까.


몇 일 뒤, 리장 다음 여행지인 샹그릴라 유스호스텔에서

명수 아버님을 다시 만났다.


새로 사귄 중국 친구와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바로 옆 자리에서 만두를 드시고 계신 게 아닌가.


샹그릴라의 마지막 날 아침, 따뜻한 커피 한잔과 눈물어린 상봉.


이산가족 상봉한 것처럼 살가운 인사를 나누고

그는 다시 씩씩하게 메리 설산(梅里雪山)을 향해 떠났다.


아버님, 지금쯤 여행에서 돌아오셨겠네요. 잘 지내시죠?


언젠가 또, 어디선가.

그 날처럼 웃으며, 마주치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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