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교육정책이 현장을 병들게 하고 있다.
“학습을 놓친 아이들”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고교학점제의 전면 시행과 함께, ‘최소성취수준 보장제’(이하 ‘최성보’)가 교육 현장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교육부는 이를 통해 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하고, 고교학점제의 안정성을 높이고하 한다.
그러나 교원단체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상론”이라며 폐지를 요구하고 있고, 학교 현장에서는 과중한 행정과 민원 증가, 학생들의 혼란이라는 부작용이 끊이지 않는다.
‘최소성취수준 보장’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공교육의 당위성과 책임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지금의 정책은 그 철학의 무게를 오롯이 고등학교 교사와 학교에만 떠넘기고 있다. 그 결과는 현장의 피로감, 학부모의 불신, 학생의 방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교육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누적된 교육 문제를 교사와 학교에 전가하는 구조라면, 이상적인 정책이 오히려 교육을 무너뜨리는 역설이 된다.
“왜 실패하는가?” 원인과 구조적 한계
첫째, 고등학교에서 감당하고 있는 기초학력 문제는 단기간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기에 발생한 학습 결손은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누적되어 왔으며, 그 누구도 단일한 책임 주체로 단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현실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 결손이 충분히 보완되지 못한 채 고등학교로 이어지면서, 보충지도와 성취보장이라는 과제가 고스란히 고등학교 교사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고등학교는 진로지도, 고교학점제 운영, 입시 대비 등 본래도 다층적인 책무를 수행하고 있어, ‘기초학력 보장’이 현실에서는 ‘추가 부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학령기 전반을 아우르는 기초학력 지원 체계를 공교육 전체가 공동으로 고민해야 한다. 특히 교육소외계층이나 경계선 지능 학생 등 개별 지원이 절실한 학생들에게는 초기부터 지속적인 개입과 촘촘한 연계 시스템이 병행되어야 한다.
둘째, 대학의 학점제를 고등학교에 그대로 끌어온 구조 자체가 무리였다.
대학은 입학시험을 통해 일정 수준의 학업 역량을 갖춘 학생들을 선발하고, 학생 스스로 진학을 희망한 학과에 소속되어 전공 중심의 수업을 이수하는 구조다. 이처럼 대학은 학점제 운영에 적합한 선발 체계와 학과 중심의 교육 체계, 자기주도적 학습 문화가 일정 부분 갖춰져 있다. 또한 조교, 학사행정실, 학과 사무실 등 학점제 운영을 뒷받침하는 조직과 인력, 인프라도 비교적 잘 마련되어 있다.
반면 고등학교는 학생의 성향과 학업 수준이 매우 다양하고, 입학 단계에서의 분화 없이 지역 내 중학교 졸업자들이 모두 입학하는 구조다. 학생 간 학습 격차가 크고, 자기주도 학습 역량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목 선택과 학점 관리를 스스로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게다가 학점제 운영을 위한 전담 인력 없이, 교사가 수업, 생활지도, 행정업무, 보충지도까지 모두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다.
셋째, 성취수준 미달 학생일수록 출석률이 낮고, 보충지도 참여 의지도 부족하다는 점도 구조적 난점이다.
단순히 수업을 제공한다고 해서 학생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제도는 형식에 머물 수밖에 없다. 많은 경우, 이들 학생은 학습 부진보다도 정서적 불안정, 자존감 저하, 진로 미확립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학교에 대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강제적인 보충지도로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성취수준 미달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은 단순히 '수업을 더 제공하는 것'을 넘어, 학습 동기를 회복시키고, 학교 적응을 도울 수 있는 다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유연한 학사제도 운영을 통해 학생이 자율성과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정서적 상담, 진로 설계, 학습 코칭 등 학생의 심리·사회적 상태에 맞는 맞춤형 지원 체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넷째, 정책의 이상과 학교 현장의 괴리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학은 학점제 운영을 위한 인력과 구조가 갖춰져 있지만, 고등학교는 그러한 인프라 없이 교사가 출결관리, 평가기록, 보충지도, 학생상담 등 모든 업무를 동시에 감당하고 있다. 특히 수행평가 기록의 분량과 관리, 학부모와의 민원 대응까지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서 교사들은 ‘교수자’가 아니라 ‘관리자’로 전락하고 있다.
이제는 행정업무의 간소화와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 출결관리 자동화, 성취기록 시스템 간소화, 평가기록의 현실화 등 실질적인 업무 감축 없이는 교사는 수업에 집중할 수 없다. 교육정책은 수업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며, 교사가 ‘수업에 몰입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상은 지키되, 방식은 바꿔야 한다
최소성취수준 보장제는 교육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모든 학생이 학습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돕는 일은 공교육의 기본 책무다. 그러나 철학만 있고, 설계와 실행은 부재한 제도는 현장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지금의 최성보는 제도적 기반 없이 선언적으로만 도입되었고, 현실적 실행 주체가 교사로 한정되면서 책임은 집중되고, 성과는 모호하며, 현장은 지치고 있다.
교육의 실패를 교사에게만 묻지 마라
‘이상적인 교육정책’이 현실에서는 오히려 혼란과 갈등을 유발하는 구조적 실패로 나타나고 있다. 교육의 책임을 교사와 학교에만 묻는 구조는 이제 재고해야 한다.
기초학력 보장은 초등학교부터, 학습 회복은 교육청이, 학업 동기와 정서 지원은 가정과 사회가 함께 나누는 책임 분산 구조가 필요하다.
학교는 교육정책의 실험장이 아니다. 아이들의 삶이 걸린 공간이다. 더 이상 정책의 이상을 위해 학교와 교사를 희생시키지 말고, 현실과 철학이 함께 가는 전향적인 교육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공교육은 아이들의 삶을 지켜내는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될 수 있다.
2025.8. 20.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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