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교학점제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릴까?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고민

고등학교 교육의 혁신을 표방하며 추진되고 있는 고교학점제.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맞춘 수업 선택권 보장이라는 이상은 분명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상이 현실을 만나면, 오히려 그 괴리 속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그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다시 묻고 고민해야 할 때다.

1. 고교학점제, 무엇이 달라지는가?

고교학점제란 학생이 자신의 진로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고, 누적 학점을 기준으로 졸업하는 제도이다. 2025년 전면 도입을 앞두고, 전국의 고등학교는 준비에 한창이다. 교육부는 "학습자의 주도성을 강화하고, 맞춤형 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목소리는 다소 다르다. 2023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교학점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기대한다"는 응답은 41.2%에 불과했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도 36.5%에 달했다. 즉, 제도의 철학은 동의하지만 실질적 이해와 신뢰는 아직 부족한 상태다.

2. 제도는 이상적이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고교학점제의 도입 목적은 진로 맞춤형 교육이다. 그러나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빈번히 지적된다.

교육의 질 저하: 교사 1인이 여러 과목을 맡게 되면서, 수업 준비 시간이 부족해지고 수업의 완성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행정 업무 과중: 출결 관리, 시간표 운영, 학사 일정 조정 등 교사의 행정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학교 간 격차: 소규모 학교, 농어촌 학교에서는 개설할 수 있는 선택과목의 수가 적어 선택권이 형식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제도의 본래 취지를 왜곡시키고, 교사와 학생 모두를 소진시키고 있다.

3. 교육은 학교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다

학생들은 고교학점제보다는 자유로운 동아리 활동, 자율 프로젝트, 체험 중심 활동에 더 큰 흥미를 느끼고 있다. 실제로 2022년 경기교육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고등학생들이 꼽은 학교 내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은 ‘자율 동아리 운영’과 ‘학급 활동’이었다.

또한, 고교학점제의 분반 수업 구조는 학생 간 유대감, 학급의 결속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같은 반’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친구들과의 교류도 분절되며, 교육공동체로서의 학교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

4. 입시가 바뀌지 않으면, 교육은 바뀌지 않는다

현행 대학입시 제도는 여전히 내신과 수능 중심이다. 과목 선택이 자유로워진다 해도, 학생들은 입시에 유리한 과목을 택할 수밖에 없다. 특정 과목 선택이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학점제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주요 원인이다.

실제로 서울 주요 대학교는 여전히 수능 중심 전형의 비중이 높으며, 교육계는 "과목 선택이 입시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절대평가와 대학 전형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입시와 연동되지 않으면, 교육의 방향성을 잃게 된다.

5. 고교학점제를 살리는 실질적 조건들

고교학점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실질적 대안이 필요하다.

과목 선택에 따른 불이익 제거: 대학 전형에서 선택과목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절대평가를 확대해야 한다.

수업 정보의 사전 공개: 수업계획서, 교재, 커리큘럼을 사전에 충분히 공개해 학생과 학부모가 신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맛보기 수업 도입: 과목 선택 전에 미리 수업을 체험해보고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탈과 재선택 허용: 수업 중간에 과목을 바꾸거나 재선택할 수 있는 유연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투명한 학사일정 공개: 학부모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학사 운영 계획과 과목 개설 기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6. 교육정책은 당위성보다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

고교학점제는 대한민국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제도가 실제 학교 안에서 작동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아무리 좋은 철학도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납득하지 않으면 공허한 이념에 불과하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수업 안에서의 ‘선택권 보장’과 교사의 ‘교육과정 편성권 확대’이다. 무제한의 자유는 혼란을 부르고, 제한 없는 선택은 방황을 낳는다. 따라서 지금은 엄선된 정보, 단단한 시스템, 안정된 교육 생태계가 절실하다.

고교학점제는 실험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을 바꾸는 현실이다. 우리는 지금, 실현 가능한 이상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2025. 6. 24.(화)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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