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학부모, 학생의 목소리에서 출발하는 ‘진짜 변화’의 조건
“가르치는 게 즐겁고, 배우는 게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2025년 9월 12일, 최교진 장관이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 취임했다. 40년간 교육 현장에서 살아온 그는, 처음으로 교사 출신으로 교육부의 수장이 된 인물이다. 다선의 현직 교육감을 지낸 이력이 있는 만큼 기대도 크지만, 그만큼의 우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학교 현장은 지금 ‘고요한 위기’ 속에 있다.
바닷가에서 물이 빠지고 고요해진 뒤, 쓰나미는 갑자기 덮쳐온다. 지금 우리가 겪는 교육의 고요함 역시, 거대한 변화를 앞둔 전조는 아닐까. 학생은 지치고, 교사는 떠나며, 학부모는 불안을 안고 있다. 입시와 민원, 경쟁과 정답, 피로와 불신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이 조용한 물결 속에서, 장관은 어떤 방향으로 교육의 키를 잡아야 하는가?
이제 단순한 제도 도입이나 선언이 아닌, 교육의 근본을 성찰하고 현장과 함께 가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새 장관에게 바라는 일곱 가지를 제안한다.
1. 교권 회복,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금 교실은 위기다. 일부 학부모의 민원으로 인해 학급 전체가 흔들리고, 교사는 자존감과 심리적 안정감을 잃고 있다. 교육활동을 위축시키는 신고 남용, 교권 침해, 회복 없는 절차는 교사의 소진을 가속화한다. 장관이 말한 “가르치는 게 즐거운 나라”는 교사가 안심하고 수업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말이 아닌 법과 제도로 보호받는 교육활동, 무분별한 아동학대 오신고에 대한 실질적 대책, 교권 침해자에 대한 책임 있는 제재가 필요하다. ‘예방-신속 대응-재발 방지’의 3단 고리가 작동되는 국가 차원의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교사의 존엄과 전문성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교육의 출발이다.
2. 입시제도와 경쟁교육 개편: 불안을 걷고, 삶을 채워야
지금의 교육은 지나치게 경쟁적이다.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번아웃’을 겪고, 학부모는 입시 정보와 비교 속에서 불안을 키운다. 교육이 삶의 수단이 아닌 전쟁이 되는 순간,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서열을 정하는 무대가 된다.
이 상황에서 장관은 입시제도의 개편을 국가교육위원회와 협력해 추진해야 한다. ‘서울대 10개 육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배움에 집중하고, 학교가 삶의 공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성적표에 찍히는 숫자만이 아니라, 존중·배려·공동체를 배우는 교육을 가능하게 하려면, 사교육 의존을 줄이고, 평가 중심 교육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입시는 공정과 기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존엄과 다양성을 담는 그릇이어야 한다. 대학이 인생의 목적지가 아니라 하나의 경로가 되는 사회, 그것이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3. 고교학점제와 유보통합: 이상보다 체감이 먼저다
고교학점제와 유보통합 정책은 교육의 방향성과 이상을 담고 있지만, 지나치게 빠른 추진은 현장의 혼란을 낳고 있다. 어떤 제도든 현장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체감하지 못하면 실효성이 없다.
학점제라면 ‘개설 과목 수, 교사 수급, 이동권 보장’을 먼저 해결해야 하고, 유보통합이라면 ‘교사 처우, 시설 기준, 학부모 부담’을 구체적으로 다뤄야 한다. 교육환경이 달라진 만큼 교육정책도 바뀌어야 하지만, 그 변화가 누구에게 어떻게 체감되는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제도는 현장에 작동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4.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형평과 공공성부터 검토하라
내년도 교육부 예산은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한다. 지역균형발전과 교육격차 해소라는 명분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 혜택이 오직 일부 상위권 학생과 대학에만 집중될 경우, 이는 또 하나의 차별이 될 수 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교육 정책은 모든 청년에게 열린 기회가 되어야 한다.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20대 청년, 일반대 재학생, 학습 중단 경험자에 대한 포괄적 지원 없이 일부에게만 혜택이 쏠리는 구조는 교육의 공공성을 위협할 수 있다.
교육격차 해소라는 원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소외받는 이들을 포함하는 구조 설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공공 정책이 일부만을 위한 도약대가 되어선 안 된다.
5. 학부모 정책의 공백을 메워라
취임사엔 학생과 교사에 대한 정책 방향은 있었지만, 정작 ‘학부모’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교육공동체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방황하는 존재가 학부모다. 정보 부족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사교육 의존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국가 차원의 진학 정보 플랫폼, 학교-교육청-지역사회 연계 상담 체계, 학부모 대상 교육과 참여 플랫폼, 학교와 갈등을 중재할 소통 창구가 필요하다.
학교는 혼자 살 수 없고, 학부모를 동반자로 만들지 않고는 공교육은 설 자리를 잃는다. 교육정책에서 학부모는 수요자가 아니라 함께 정책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6. 설득하고 조율하는 ‘교육 리더’가 되어야
장관은 이제 더 이상 요구하는 입장이 아니다. 국가의 교육정책을 조율하고 실행하는 책임의 자리에 있다. 그 무게만큼이나, 설득과 조율의 언어가 절실하다.
갈등이 격화되는 시대다. 청문회 과정에서의 논란은 끝나지 않은 갈등의 일부일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당파를 넘어서는 교육적 리더십이며, 교육의 본질을 중심에 두고 정책의 방향을 설계하는 신뢰의 리더십이다.
과거엔 교육청이나 학교 단위에서 요구를 외쳤다면, 지금은 전국 단위의 정책과 예산, 법률을 조율하는 자리다. 새로운 장관은 정책의 관리자이자, 교육 구성원과 국가 사이를 잇는 촉진자여야 한다.
7. AI와 미래교육: 도구가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AI는 단순히 하나의 과목이 아니다. AI는 교육 전체를 다시 설계하게 만드는 도구이며, 동시에 위기이자 기회다. 장관은 AI기초역량 강화를 강조했지만, 단순한 디지털 기초 교육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AI와 협력하는 인간, AI를 넘는 감성과 윤리, AI 시대에만 가능한 교육과정과 학교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암기식·문제풀이식 교육이 아닌, 질문과 공동체, 성찰과 창의가 살아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지금이 그 전환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교육의 진짜 골든타임은 지금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러나 장관 한 명의 태도와 비전, 언어와 결정은 정책의 방향을 바꾸고, 국민의 신뢰를 세운다. 그가 말한 대로, 교육의 힘으로 미래를 연다면, 지금이야말로 골든타임이다.
기존의 교육체계를 무너뜨리는 쓰나미는 이미 시작됐다. 학생은 떠나고, 교사는 지치며, 학부모는 불신한다. 이 고요함을 지나 쓰나미가 닥치기 전에,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첫 책임은 교육부 장관에게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고, 개편이 아니라 회복이며, 개혁이 아니라 공감이다. 진짜 변화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의 목소리에서 출발한다. 그 소리를 가장 먼저 듣고, 가장 늦게까지 놓지 않는 장관이길 바란다.
2025. 9.14.(일)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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