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과 혐오를 넘어, 공교육이 세워야 할 민주주의의 토대
우리가 선망해온 미국의 현실은 최근 몇 년간의 정치적 극단화 속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최근 정치인을 겨냥한 총격 사건과 같은 극단적 폭력은, 단순한 개인 범죄를 넘어 미국 사회의 분열과 정치적 불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선거 불복과 가짜뉴스, 혐오 선동이 결합되면서 이제는 민주적 절차 자체가 위협받고 있으며, 총기와 폭력이 정치적 의견 표출의 수단으로 등장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세계 민주주의의 본산”이라 불리던 나라가 순식간에 혼란과 분열의 무대가 된 것이다.
겉으로는 여전히 문화와 경제, 군사력의 강대국이지만, 그 속은 차별과 폭력의 언어가 사회 곳곳에 확산되고 있었다. 인종·이민자·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늘어나고, ‘힘’이 ‘도덕’을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위기의 뿌리를 추적해 보면 결국 공교육의 붕괴라는 원인에 도달한다. 민주적 시민으로서 필요한 기초 역량을 길러내지 못한 교육이 분열과 혐오의 정치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미국 사회의 위기는 단순히 정치의 실패가 아니다. 정치가 취약해진 이유는 시민 역량의 약화 때문이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상당수는 기초 문해력이 부족하다. 때로는 길거리 인터뷰에서 수도 이름이나 대통령 이름조차 답하지 못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정세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 내부의 기본 제도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이 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흔든다.
시민으로서 필요한 교양과 덕목은 공교육에서 길러져야 한다. 그러나 공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분노와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인의 선동은 더욱 쉽게 먹혀들고, 개인 맞춤형으로 편향된 정보만을 제공하는 SNS와 유튜브는 확증 편향을 강화한다. 정치적 중립성이나 합리적 사고보다는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듣는 문화가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혼란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사회 역시 세대 갈등, 남녀 갈등, 정치적 이념 갈등이 첨예하다. 그런데도 교실 안은 이상할 만큼 조용하다. 학생들은 현실 문제에 대한 토론 경험이 거의 없고, 교과서는 여전히 과거의 주제에 갇혀 있다. 그 결과 학생들은 관심 있는 주제를 학교가 아닌 온라인 커뮤니티나 유튜브에서 접하고, 그곳에서 왜곡된 정보와 자극적인 콘텐츠를 통해 세계를 해석한다.
공교육이 다루지 않는 현실의 갈등을 학생들은 음지에서 배우고 있다. 학교가 민주적 토론의 장이 되지 못한다면, 학생들은 스스로의 생각을 검증받지 못한 채 극단적인 주장에 매몰된다. 그 과정에서 편견과 혐오는 강화되고, 사회는 더욱 분열된다. 지금의 침묵하는 교실은 결국 미래의 정치적 혼란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고대 민주주의의 근본은 광장, 아고라였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시민이 모여 논쟁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설득당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졌다. 이 경험이야말로 시민으로서의 덕목을 길러낸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 안의 학생들은 침묵 속에서 시험과 성적에만 매몰되어 있다.
공교육의 교실은 더 시끄러워야 한다.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고, 때론 다툼이 있어도 괜찮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민주적 절차를 몸으로 배운다. 공교육이 단순히 지식 전달을 넘어, 갈등을 사회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훈련장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학생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미디어는 SNS와 유튜브다. 이곳은 개인 맞춤형 알고리즘으로 움직이며, 사람들을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 속으로 가두어 버린다. 토론의 장이 아니라, 편향과 확증의 거울 방에 불과하다. 이런 환경에서 길러진 학생이 시민으로 성장했을 때, 민주주의는 언제든 극단적 분열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
따라서 공교육은 반드시 토론 교육, 시민 교육, 다양성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학생이 실제로 관심 갖는 사회 현안을 다루고, 입장을 바꿔 보며, 상대의 논리를 존중하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학교야말로 ‘작은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실험장이어야 한다.
한국의 교육과정은 여전히 형식적이다. ‘시민교육’이 교과서의 한 장에 머물러 있고, 현실의 첨예한 갈등은 교실 밖으로 밀려나 있다. 그 결과 학생들은 교과서를 ‘건조하다’고 느끼며, 현실 감각과 동떨어진 교육은 공감을 얻지 못한다.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친다고 하면서 정작 민주적 경험은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교실 안에서 다뤄야 할 주제는 늘 교실 밖으로 밀려난다. 세대 갈등, 젠더 갈등, 지역 갈등, 환경 문제, 노동 문제 같은 주제는 교사와 학생이 함께 토론해야 할 의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논쟁을 두려워하고,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회피한다. 그 결과, 학생들은 민주적 훈련을 받지 못한 채 사회로 나가고, 사회는 더욱 불안정해진다.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 혐오와 분노의 정치가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치인은 대중의 불안을 특정 집단에 돌리고, 미디어는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 사회적 약자는 희생양이 되고, 다수는 일시적인 분노 속에서 결집한다. 그러나 그 결집은 금세 분열로 이어진다. 공교육이 이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계속해서 흔들릴 것이다.
공교육은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의 마지막 안전망이다. 차별과 혐오를 줄이고, 누구나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학생들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합리적으로 토론하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경제적 형평성은 물론, 민주적 감각을 길러내는 것이야말로 공교육의 존재 이유다.
우리는 지금 갈등의 시대를 살고 있다. 모두가 분노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분노는 언제나 자신보다 약한 누군가에게 향하고, 혐오와 갈등은 점점 더 증폭된다.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길은 결국 교육이다. 미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교육의 위기는 곧 사회의 위기이며,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다시 붙잡아야 할 화두는 공교육이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토대이며 사회 통합의 장치로서의 공교육. 학교에서 다양성이 존중받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며, 민주적 절차를 배우는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분열의 정치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상대적 갈등과 혐오, 분노의 시대. 우리가 다시 공교육의 본질을 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5. 9. 16. (화)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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