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임 Jan 09. 2024

'무쇠 주물 팬', 앞으로

아홉

‘무쇠 주물 팬’에 빵을 구워 브리치즈를 올리고 아보카도 그다음은 크레송, 그 위에 발사믹 비네거를 뿌려 한 입 베어 물었다. 옆에 준비해 둔 A4 지에 볼펜을 들고 오늘 준비할 요리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다시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고 오물오물 행복감에 젖어든다.

역시 맛있는 음식은 날 행복하게 해 준다.

작업실에서 대충 토스터에 식빵을 구웠을 때보다 ‘주물 팬’에 구운 식빵이 맛있다는 걸 인정해야 할 때다.

다시 오후에 도착할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요리를 생각해 본다.    

 


친구들이 도착할 시간에 맞춰, 창고와 작업장 겸 고기 구워 먹는 장소로 쓰이는 공간에 쌈 채소, 쌈장, 채소무침, 저민 마늘과 고추, 김치, 밑반찬으로 상을 차리고 핸드폰에 뜬 시간을 확인한다.

주방으로 들어가 바지락이 들어간 배추 시래기 된장국 간을 보고, 뜸이 들고 있는 솥 밥 가까이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본다. ‘달걀찜이 잘됐네. 밥 냄새도 좋고. 누룽지를 만들려면 불을 살짝 키워야 하는데.’하고 고민하는 사이, 밖에서 차 소리가 들린다.     


두런두런 소리가 들리더니 “어디가 문이야?”라는 소리에 주방 뒷문을 열고 소리친다.

“앞으로 와, 거기가 정문이야. 여긴 주방 문.”

“거기로 들어가면 안 돼?”

“응, 안돼. 앞으로 들어와서 여기에 놓인 슬리퍼 신고 나가면 돼.”

웅성웅성 집으로 들어와, 완전 시골집이라며 두리번거리고 밖에서 보는 것보다 넓은데라며 나를 부른다.

“잘 사냐?”

“하루하루가 똑같지.”     


작년에 집을 살짝 보수하고부터 부쩍 지인들의 방문이 잦아졌다.

편하게 고기를 구워 먹을 장소가 생기도 했고 시골 구경 오고 싶다는 지인들에게 “언제든 오셔.”가 발단이었다.

잠잘 곳이 여의치 않다고 얘기해도 대부분이 친한 친구들이라, 잠이야 거실과 조그만 방 세 개에 나눠서 대충 끼워 자며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아차! 고기를 구워야지’ 고기 파티가 준비된 작업장으로 들어가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무쇠 주물 팬'을 올린다.

“밖에 바비큐 그릴은 안 써?”

“귀찮아.”

“서진아, 이 조그만 팬으로 고기를 어떻게 구워, 한참 걸리겠네.”

“걱정하지 마셔. 내가 가르치는 학생 10명이 넘게 왔어도 아무 일 없었어. 집구경이나 해.”

솥뚜껑을 열어 달걀찜을 꺼내고 뜸이든 밥을 커다란 볼에 담아 친구들에게 보냈다.  

   

뜨겁게 달궈진 ‘무쇠 주물 팬’에 고기를 올리자마자, 취이이익 칙칙, 취이이익 칙칙, 취이이이익 소리를 내고 기름을 쪽쪽 빼내며, 그 기름에 살짝 튀겨지듯 구워지는 삼겹살 냄새가 평화롭던 뱃속을 자극한다.

“야! 들어와 밥 먹어. 나 배고파.”

고기를 굽고 있는 내 주위에 아이들이 서성거리더니 “조그만데 잘 익네, 금방 익겠네.”라더니 작업장에 별게 다 있다며 집안을 살펴본다.

“너 미장도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이랑 집 고친 거야? 공구상 공구는 다 있네.”

“밥. 먹. 어!”

고기를 굽고 있는 주물 팬이 크지는 않다. 그러니 ‘언제 고기가 익을까?’ 하고 기다리는 중이라는 걸 나도 안다.

“이게 작아도 열 일해. 금방 익어. 야! 구운 고기 다 식겠다.”     


‘무쇠 주물 팬’은 쇠와 탄소의 합금으로 주형틀 속에 넣고 응고시켜 만든 팬이다.

내구력이 강하고 열전도율이 높아 금세 뜨거워지며 열을 오래 유지하는 기능이 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을 때, 커다랗고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냄비를 사용하기보다 작지만, 내구성이 좋은 ‘무쇠 팬’을 이용하면 좁은 식탁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고기를 굽고 있는 팬은 한쪽은 오목하고 반대쪽은 볼록하게 생겼다. 오목한 쪽으로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국물이 자작한 불고기나 해물볶음 탕 같은 요리를 만들 때 사용한다. 그리고 볼록한 쪽으론 한국인 영혼의 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고기구이를 빨리 많은 양을 구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거 뒤집어서 구워야지? 기름이 가운데로 모이잖아!”라며 친구가 요리사가 자기가 쓰는 팬 쓸 줄도 모른다며 깔깔깔 웃는다.

“자 봐봐.” 고기가 익으며 빠져나와 가운데 모인 기름에 새송이버섯을 통으로 넣어 튀기듯 익혀주고 잘라서 먹으면 “맛있지? 소금 안 뿌려도 맛있어.”라며 나의 어깨를 으쓱인다.

“다음은.” 버섯을 빼낸 자리에 김치를 넣어 익히고 고기와 함께 먹는다.

“맛있지?”

     

익은 버섯과 김치를 잘게 자르고, 남은 쌈채도 좀 잘라 넣고, 고기도 다지듯 잘라 볶는다. 뜨겁게 달궈진 ‘무쇠 팬’이라 순식간에 고슬고슬 노릇노릇하게 볶아진다. 여기에 고추장 한 숟가락과 간장 조금을 넣고 마구 볶아줍니다. 밥을 넣고 잘 섞어서 익히고 다시 섞고 익히고 이제 불을 줄여 바닥이 살짝 누를 수 있게 해 줄까?

“팬이 뜨거워서 그런지 밥이 맛있다.”라며 배가 부르다는 녀석들이 무쇠 팬 바닥을 긁고 있다.     



“그런데 고기 굽는 용으로만 쓰기엔 손이 많이 가지 않아?”


무겁고, 세제를 쓰면 쇠에 흡수되기 때문에 사용을 할 수 없어 뜨거운 물로 닦고, 다시 물을 받아 끓여내고, 다시 뜨겁게 달군 후 기름을 입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하지만 무쇠 팬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그까짓 거!’라고 말할 것이다.     


단시간에 ‘무쇠 팬’ 위에서 스테이크가 구워, 레스팅을 거쳐 ‘오븐’ 넣어 구워낸 육즙이 가득 담겨있는 소고기를 썰어 보자. '팬을 사길 잘했어.'라는 말이 로 나올지 모른다.


‘무쇠 팬’에 구원진 스테이크를 넣고 바비큐 소스와 육수를 부어 알루미늄 포일로 봉합하여 낮은 불에서 끓여낸다. 브레이징 비프에서 풍기는 냄새에 삼사십 분을 초 단위로 세며 기다리게 될 것이다.     


요리는 온도 그리고 시간의 싸움이다.

아무리 잘 썰었다 해도, 아무리 맛있는 양념을 만들었다 해도 적당한 온도와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맛이 없어진다.


특히 가정집은 상업용 주방처럼 강력한 화력을 가진 가스레인지를 사용하지 않기에, 뜨겁게 단시간 조리를 해야 하는 요리에 필요한 도구가 ‘무쇠 팬’이다.


또한 열을 오래 유지하고 내구성이 좋아 장시간을 요구하는 요리 시간을 단축해 준다.   

   

“이러니 내가 안 쓰겠어. 그 정도 어려움은 감수해야지. 그래서 너희가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오는 거잖아.”

“네. 네. 네.”

서울에서 5시간, 대전에서 3시간 30분, 그 먼 거리에서 달려와 주는 친구들이다.

무겁고 다루기 힘들어도 나에게 와준 너희들에게 내가 뭔들 못 해주겠니.     


‘무쇠 주물 팬 1호’ 그리고 ‘무쇠 주물 팬 2호’ 앞을 부탁한다.


이전 09화 '숟가락', 뭘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