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대형 찜솥’이 있습니다.
연고도 없는 작은 마을에 귀촌해 동생과 저 그리고 반려견 길동이와 셋뿐인 집에 ‘대’ 자와 ‘큰’ 자가 들어간 쟁반과 스테인리스 다라, 주걱, 채반, 들통, 면 보자기, 베주머니, 집게 같은 주방에서 필요한 물건들이 생기면서 커다란 ‘찜솥’도 샀지요.
대형 조리기구들이 많아지며 우리 집 옆에 붙은 작은 집을 수리하고 방한 쪽에 선반을 만들었어요. 지인들이 집에 찾아와 점점 ‘대’ 자와 ‘큰’ 자가 붙은 물건이 쌓여가는 모양새를 보고 “그냥 식당을 차리지, 그래.”라는 소리를 하지만 우리도 다 쓸모가 있어서 산 물건이었죠.
‘찜솥’은 만두 때문에 산 조리도구입니다.
일 년에 몇 차례 동생 두부를 앉쳐놓고 만두를 빚어요.
집에 찾아온다는 손님을 위해, 바삐 돌아가는 우리의 끼니가 되기 위해 적어도 50개에서 100개의 만두를 만들어 냉동실에 보관해 두고 한 꾸러미씩 꺼내 데워먹습니다.
만두는 그때그때 다른 재료를 사용하지요.
묵은지를 씻어 다져 갈아 놓은 돼지고기에 다진 말린 호박과 겨울에 제맛인 쪽파를 넣고요.
인삼, 녹용도 부럽지 않은 겨울을 난 봄 부추와 두부.
봄에 채취한 죽순을 삶아 소고기를 더해 매콤한 양념을 한 소를 만듭니다.
오이가 많이 나오는 달엔, 소금에 절인 오이와 두부, 부추가 재료입니다.
걷잡을 수 없이 자란 가지와 돼지고기를 양념하기도 합니다.
주렁주렁 열린 조선호박을 따서 채를 치고, 다진 양파와 당근을 더합니다.
생배추를 곱게 썰어 소금에 절여 채를 썬 당근과 물기를 빼낸 무로 소를 만들어요.
한도 끝도 없는 재료로 만두를 만드는 일은 문제 될 것이 없어요.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다 보면 반죽은 되어 있고, 만두피는 시중에 냉동이 아닌 생피도 팔아 사다 씁니다.
우리의 문제는 ‘찜기’.
우린 만두를 찌고 식혀서 10개씩 개별 포장해 냉동실에 보관한다. 그런 후 꺼내 데우기만 하는 간편한 방법을 이용하지요.
‘대형 찜기’가 없을 때는 작은 찜기에 6개 소형 찜기에 4개씩 넣어 찌다 보니 만드는 시간보다 찌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었습니다.
만두를 만든다면 좋아하던 두부가 “오늘은 몇 개나 만들 거야?”라며 걱정하더군요.
우린 “대형 찜기를 사자!”는 결단을 내리고 기물 점으로 향했습니다.
‘대형 찜기’가 있으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스멀스멀 이상한 기운이 우리에게 다가오며, ‘대형 찜기’를 올려 사용할 커다란 스토브, 커다란 주걱 하나, 대형 스테인리스 다라, 대형 채반, 대형 면 보자기, 대형 집게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뭘 했겠어요! 만두 100개를 거뜬히 만들었습니다.
이후 ‘대형 찜기’는 나물을 여러 번 삶을 필요도 없이 한 번에 해결해 줬답니다.
그뿐인가, 요리를 배우는 중학생들과 참여한 지역 음식 축제에서 큰 몫을 담당해 줬고요.
이제는 9명이나 되는 학생들과 삼계탕을 끓이고, 국수를 삶아 먹는데, ‘대형 찜기’ 솥만으로도 거뜬합니다.
그리고 우리 집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커다란 조리기구 선반이 설치된 작은 집에 커다란 테이블과 작은 테이블이 놓이고 의자가 쌓여 있습니다.
찾아오는 손님도 많아지며, 간판만 달지 않았지, 식당 같은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어요.
때로는 찾아온 손님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일에 감사함을 느끼며 사는 중입니다.
올해 첫 만두를 만들려 합니다.
텃밭에 남은 작은 배추 3개, 동생이 “언니, 배추 넣어서 만든 시원한 만두 있잖아.” 하며 날 바라봤어요.
“여름에 말린 가지 넣어서 만들까?”
“말린 가지로도 만두를 할 수 있어?”
“음…. 잘게 다져서 만들면 고기를 안 넣어도 식감도 좋고 영양도 풍부하지.”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칼을 가져와 뿌리를 동강 잘라내고 배추를 들고 들어왔지요.
“몇 개나 할 거야?”
“만두 귀신 경태, 귀여운 동글이, 고마운 이장님네, 삼거리 할머니, 밤호박 이모님네, 김 선생님, 12개씩만 줘도 72개네.”
말려두었던 가지를 물에 넣어 불렸습니다.
“양이 많아지겠는데.”
“뭐가 걱정이야. 선반에서 ‘찜솥’ 가져올까?”
그래 우리에겐 ‘대형 찜솥’이 있지!
‘비건 가지 배추 만두’
배추를 잘게 썰어 소금에 절입니다.
불린 가지를 부드럽게 해 주기 위해 벅벅 문질러 씻어 채반에 담습니다.
물을 짜낸 가지를 잘게 썰고 다진다. 곱게 다지지 않아도 된다. 필요하다면 푸드프로세서를 이용한다.
다져진 가지를 면보자기에 넣고 짭니다.
가지를 짰던 면 보자기에 두부도 짭니다.
다진 당근과 생강즙, 후추, 간장 조금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지요.
잘 주물러 만두소를 만듭니다.
마지막 만두피에 소를 넣어 만들어요.
“언니, 고기만두.”
삼분에 일 정도 남은 소에 갈아 놓은 돼지고기를 넣고 곱게 다진 마늘과 다진 양파 그리고 생강 조금을 넣어 반죽합니다.
“언니 김치만두는?”
에고~
김치를 씻어 잘게 썰어, 면 보자기에 넣고 물기를 짭니다.
두부도 짜고요.
‘하얗고 보드라운 두부 대신 저기 서 있는 통통하고 근육질인 두부를 넣어 짜고 싶네요.’
갈아 놓은 돼지고기와 송송 썬 쪽파, 다진 양파와 당근, 마늘 그리고 생강 조금을 넣어 만듭니다. 여기에 묵은 맛을 잡아주는 잘게 다진 미나리를 넣으면 향긋할 텐데 시간이 늦어 마트에 다시 가긴 어려우니 패스.
만두 200개 완성.
제가 만약 저 ‘쪼꼬만 찜기’로 200개를 만들었다면?
‘휘휘 생각아 저리 가라. 난 만두나 먹으련다.’
요놈 맛있네요.
가지·배추 만두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