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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09. 2024

꼬순맛 들깨순두부, 재료 소진되기 전에 서두르세요.

목포 ‘정다운순두부’

1시가 넘었다.

이제 거의 다 와 간다.


설마 못 먹고 또 먼 길을 터덜터덜 돌아가 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거나 가는 길에 대충 때워야 하는 상황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죄송합니다. 재료가 소진되었어요. 다음에 찾아주세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다. 오늘은 기필코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라는 말을 듣고 말리라.


식당 담 밑에 차가 없다는 건 손님이 많이 빠졌고 식당 안엔 손님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방증이다.

주차한 차에서 내려 식당으로 몸을 돌렸다. 식당 대문으로 손님이 우르르 나온다.

제발 그 손님들이 마지막 손님이 아니길 바라며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오. 오. 다행이다.

“1인 식사도 가능한가요?”

“그럼요. 이쪽으로 오세요.”   

  

동생 두부와 항상 같이 오다가 혼자 오는 건 처음이다

“두부야, 미안해.”     


자리에 앉은 나는 주저 없이 ‘들깨 순두부’를 시켰다.

‘정다운 순두부’의 시그니처메뉴가 전복이 들어간 순두부이지만 난 들깨가 들어간 순두부가 담백, 개운하고 든든하니 마음에 든다.     


‘정다운 순두부’는 수소문 끝에 찾아낸 맛집이었다.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은 두부와 목포로 장을 보러 간다. 도시에 간 김에 도시 맛을 보기 위해 길을 헤매던 때가 있었다.

이왕 도시에 왔으니 시골에는 없는 맛있는 걸 먹어보자며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며 허탕을 치다가 수소문 끝에 어렵게 찾아낸 식당이었다.


나름대로 요리에 진심이었던 두부의 동료 직원이 “목포 구시가지, 용당동에 순두부 파는 집인데. 직접 만들어 선생님 입맛에 잘 맞을 것 같은데요.”라고 어깨를 들썩이며 자신 있게 말했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아침 일찍 출발.

원래부터 순두붓집이 이른 시간에 만석을 이루고 재료가 떨어지면 일찍 문을 닫는다는 정보를 들은 적도 없었지만, 일찍 가야만 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팍팍 들어왔었다.

  

아직 11시가 안 된 시간. 쭈뼛쭈뼛 식당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전라도 억양의 서울말을 쓰는 직원인지 딸인지 친절히 맞이해 주었다.

“저희가 너무 일찍 왔죠?”

“아니요. 조금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을까요.”      

두부는 김치 순두부, 나는 들깨 순두부를 시키고 앉아 순두부를 기다렸다.


구운 김과 샐러드 그리고 호두 조림이 먼저 나왔다. 역시 전라도! 뒤이어 깔끔한 한상차림의 반찬이 나오는데, 때깔 좋은 팽이버섯이 올라간 전복 뚝배기 조림이 한가운데 떡하니 놓였다. 순두부 없이 반찬만으로도 밥 한 공기는 뚝딱 비울 것 같은 맛이었다.     


뒤이어 나온 순두부, 러프하게 갈아 넣은 들깨가 씹히는 맛이 순두부와 너무 잘 어울렸다. 그런데 이 상큼한 들깨 향은 무엇? 호호 불어가며 위에서 떠먹다 호오~홉 호오~홉 조금씩 빨아들이며 먹다 보니, 아하! 들깻잎이었다.     

밭에서 나는 고기라 하여 단백질이 풍부한 콩요리를 좋아하는 나. 평상시에도 모두부, 순두부, 콩나물에 콩자반에 밥에 넣을 콩을 집에 챙겨 놓고 사는 사람이 맛난 순두부 맛집을 찾았으니, 뭘 더 바라겠어!


두부가 자기 순두부도 먹어보라며 나에게 들이밀었다.

김치 순두부를 한 수저 입에 넣고 “미안, 내 맛은 아니야. 콩요리는 자고로 담백해야지.”라며 손을 흔들어줬다.

한 그릇 바닥까지 긁어 비우고, 만족한 얼굴로 웃음을 지으며 손으로 배를 어루만져주며 “맛있는 건 살 안 쪄.”라며 서로를 위로했었다.      


이때부터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되는 날이면 '정다운 순두부'를 찾아갔다.

어떤 날은 간발의 차이로 ‘다음 기회에’라는 아쉬움을 남겨 줬어도 우리는 찾고 또 찾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히 구운 김을 세 번이나 연거푸 재주문하며 밥을 먹던 두부가 “언니, 우리 부산 여행 갈래?”라며 날 쳐다봤다.

“언제?”

“밥 먹고 집에 가서 간단히 짐 챙겨 출발할까?”


그리하여 우리는 맛있는 순두부가 주는 따뜻한 행복감에 젖어 느닷없이 2박 3일 부산 여행을 떠났었다.

돌아오는 길 하얀 초승달 옆에 떠 있는 별인지 인공위성인지 모를 하늘을 보며 “우리 미친 거지? 갑자기 순두부 먹다가 여행이 웬 말이냐고.”라며 깔깔깔 웃었던 적도 있었다.     


역시 맛있는 음식은 우리에게 여유로운 마음을 만들어 주나 보다.



오늘도 역시나, 구운 김과 샐러드 그리고 호두 조림이 나오고, 팽이버섯이 올라간 전복 조림이 뚝배기에 담겨 얌전하게 담긴 반찬 가운데 맨 앞에 놓였다.     


식당에서 만든 순두부로 요리한 들깨 순두부가 나왔다.

후루룩 쩝쩝 후루룩 쩝쩝 순두부 맛을 먼저 보고 뜨뜻하게 입과 마음을 적시고, 전복과 팽이버섯을 가위로 설겅설겅 잘라 밥공기에 넣고 구운 김에 쌓아 한입 가득 넣고 오물오물 씹으며 “진짜 두부한테 미안한데.”를 여러 번 되뇐 것 같다.     


김을 찍어 먹을 간장을 가져다주신다는 것이 연근 묻힘만 두 개를 주신 것 같다. 나에겐 전복 조림이 있어 간장은 필요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연근을 두 배로 얻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우렁이 들어간 깍두기는 ‘요것이 무엇일까?’ 싶어 젓가락이 안 갈 수도 있지만, 꼭 먹어봐야 하는 반찬으로 추천한다. 비릿한 우렁이 맛은 전혀 안 난다. 이번에도 우렁이만 다 집어 먹었다.    

  

부드럽게 조린 노가리와 전라도에서 많이 먹는 감태 김치, 묵무침과 브로콜리도 있었지만 다 먹었다간 집에 가지 못할 것 같아 들깨 소스에 무친 사과로 마무리했다.     


혼자 먹는 상에 이렇게 많은 음식을 주면 뭐가 남을까 싶다.     


콧노래라도 부를 기세로 “오늘은 늦었는데도 먹고 가네.”라며 대문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문 앞에 떡하니 걸려있는 문구.

‘재료가 소진되어 영업을 마감합니다.’


매일 콩을 깨끗이 씻어 불리고, 끓여 맷돌에 갈아 콩즙만 짜내 다시 끓이고, 휘휘 저어가며 조심스레 간수를 부어 뭉글뭉글하게 만든 순두부를 먹은 내가, 마지막의 손님이었나 보다.   

  

오늘 난 운이 정말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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