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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Jan 19. 2024

바닷 바람 날리는 찐한 ‘짱뚱어탕’ 드셔볼라

해남 '주막식당', '고천암식당'

만약 내가 어려서 짱뚱어가 어떻게 생긴 물고기인지 봤더라면 안 먹었을지도 모른다.


‘개펄에 푹 박혀 툭 불거진 눈만 내놓고 있는 저 희귀 망측한 물고기를 나에게 먹으라고?’ 하며 입을 꼭 다물고 차라리 맨밥만 오물오물 씹어 먹으며 ‘다시는 엄마 아빠 따라나서지 않겠어!’라며 굳은 다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엄마, 짱뚱어가 뭐야?”라는 나의 물음에 “바다에 사는 물고기야. 엄마는 짱뚱어탕이 그렇게 맛있더라.” 하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듯 짱뚱어탕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고 “정말 맛있네. 여기 오면 꼭 먹고 가야 해.”라며 아빠를 바라봤다.

나와 동생들을 안심시키며 먹기를 권하는 엄마의 바람을 아는 건지 아니면 듣지를 못했는지 아빠는 그저 땀을 뻘뻘 흘리며 짱뚱어탕에 열심히 숟가락을 넣었다 뺐다 하며 한 그릇을 다 드셨다.   

  

잔뜩 들어가 있는 말린 배추에 된장 냄새가 나고 고춧가루를 뿌렸는지 고추장을 넣었는지 알 수 없는 색깔을 띤 짱뚱어탕. 첫 입은 총총 썬 말린 배추와 무언가 짓이겨 넣은 된장 맛이 나는 그냥 어른들의 맛이었다.


지금도 맵찔이이기는 하지만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백김치가 없으면 빨간 김치를 물에 씻어 먹을 정도로 매운 음식을 못 먹던 나는 “매운데.”라며 물을 마시자, “건더기만 조금씩 건져 먹어봐.”하며 엄마도 한 그릇을 비우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생들은 옆에서 “난 이런 거 싫어. 엄마 고기 먹으러 가자.”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도 첫째라는 사명을 띠고 있어서인지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2시간 30분 고속도로를 달려 광주에 도착하고 다시 화순을 지나 보성군 작은 시골 마을 첩첩산중에 할머니 산소가 있다. 우리는 일 년에 적어도 두 번, 명절이면 가야 하는 성묫길에 들리는 벌교 장이나 식당에서 짱뚱어탕을 팔았고 부모님은 무슨 행사 치르는 것처럼 꼭 들러 드셨다.    

 

우리가 성묘하러 가는 전라남도 보성과 장을 보러 가는 벌교는 광활한 개펄이 펼쳐져 있다. 여기엔 꼬막도 살고 낙지도 살지만,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짱뚱어’도 산다.     


짱뚱어는 개펄에서 사는 물고기다. 깊은 바다에 나가서 살지는 않고 조개랑 낙지 같은 것들과 함께 펄에 몸을 숨기고 있다.     

생긴 것은 금붕어처럼 눈이 툭 불거져 나오고 얼굴이 넙데데하고 눌려 앞에서 보면 몸통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몸통은 가늘고 뒤로 갈수록 뉘어놓은 도롱뇽 꼬리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가시처럼 뾰족뾰족하고 짧은 등지느러미와 그 뒤로 꼬리까지 펼쳐진 긴 등지느러미를 가지고 있다. 개펄에 뒹굴고 뛰어다녀 온몸에 펄을 마사지하듯 휘감고 다녀서 그렇지, 깨끗이 씻어놓으면 흰색에 가까운 비취색으로 점을 찍혀 있어 못생겼는데도 나름 모양새는 갖췄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보면 ‘짱뚱어’의 모양새가 자세히 적혀 있다.     



짱뚱어 ' 출처, doopedia 두산백과'


영화 ‘자산어보’를 보면 ‘짱뚱어탕’이 만들어진 과정이 설명되어 있다.

정약전을 찾아온 정약용의 제자 강희가 복어보다 맛이 나은 물고기를 궁금해하자 정약전이 아구어라고 대답을 한다. 정약전의 제자 창대가 돼지나 주던 생선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강희에게 내일은 짱뚱어탕 맛 좀 보시라 말하니 가거댁이 나리 덕분에 보릿고개에 먹을 것이 하나 더 생겼다며 힘든 시기를 넘겼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거기다 먹지도 않았던 짱뚱어가 맛이 좋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인다.


이 이야기로 보면 정약전이 바닷고기에 관심을 두기 전까지는 먹지 않았던 생선이라 말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안 먹었던 생선이라고 ‘자산어보’에는 나오지만, 오래전부터 힘들었던 시기를 거쳐 가던 사람들은 죽지 않기 위해 먹었을지도 모르는 생선이다.      


다만 정약전과 같은 시기에 유배를 살던 다산 정약용의 ‘농가’를 보면 ‘상추잎에 보리밥 싸서 고추장에 파뿌리를 곁들여서 먹는다. 금년에는 넙치마저 구하기가 어렵구나. 잡는 족족히 관청에 바쳤으니.’라는 글이 있다. 이 이야기는 관료들이 예전에 흔하디 흔하게 잡히던 넙치마저도 가져가 버려 먹을 것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정약전과 정약용, 두 양반이 전라도에 유배를 와 살면서 백성의 생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고 '짱뚱어탕'을 포함하여 전남의 먹거리를 바꿔 놓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짱뚱어 '출처, 나무위키'


어렸을 때야 어른들 맛이니 좋아하지 않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전남지역에 부모님을 따라가면 나도 덩달아 찾게 되는 음식이 되었다. 아니 가끔 생각이나 찾아가게 되는 음식이 되었다고 말하는 게 분할지도 모른다.


‘짱뚱어탕’의 맛을 못 먹어본 분들께 설명하자면, 민물에 사는 미꾸라지로 만든 ‘추어탕’을 상상하면 비슷하다 할 것이다.      


내장을 손질한 짱뚱어를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폭 고아낸다.

고아낸 짱뚱어를 건져 뼈를 발라 살코기만 끓여내기도 하고, 뼈 채로 적당히 으깨거나 통으로 고아낸 국물에 된장을 풀어 고춧가루를 뿌리거나 고추장을 더하고 배추나 무청 시래기와 파를 넣어 폭 끓여낸다.

여기에 호박이나 부추, 고추를 넣어 끓이기도 한다.     


요 못생기고 희한하게 생긴 놈이 기혈을 풀어주어 오래 살 수 있게 해주는 보양식으로 아주 좋다는 것이 알려지며 보양식이 되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전라남도 어느 밥집에 가도 ‘짱뚱어탕’을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다.


나도 전라남도 남단 바닷가가 가까운 지역으로 이사를 오면, 지인들과 간단한 식사 때마다 즐겨 찾는다.     

비린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동생 두부도 ‘짱뚱어탕’을 먹자는 소리에는 토를 달지 않고 따라오는 것을 봐도 칼칼하고 고소하고 개운한 맛이 일품이긴 하다.     


해남지역을 돌아다니며 가본 식당 중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읍에 있는 ‘주막식당’이라는 곳으로 푸성귀로 금방 버무린 겉절이나 집에서 아주 작은 새우로 담은 자하젓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다.

그리고 황산면에 ‘고천암식당’도 유명하지만, 넉넉하게 차로 30분을 가야 하니 짧은 점심시간은 ‘주막식당’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오늘 저녁은 주막식당으로 달려가 볼까?’라는 생각이 움직이고 있는 손을 멈추게 한다.     


여러분도 쌀쌀한 겨울, 뜨끈한 ‘짱뚱어탕’ 한 그릇으로 감기도 멀리 차버리고 원기회복하러 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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