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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Jan 12. 2024

눈물 머금고 인사합니다. Adios ‘장어탕’

완도 청해진 '목교청해식당'

두 달 전, 한 해에 두어 번 오시는 두부의 부모님이 찾아왔다.    

 

어떻게 보면 몇 시간씩 비행기 타고 외국 여행에 비하면 서울에서 해남까지 5시간이라는 거리가 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는 부모님이 주일에 교회예배를 포기하고, 5시간을 달려 딸을 보러 오기란 작정하지 않으면 나서기 힘든 거리이기도 하다.

 

해가 가기 전 딸내미가 보고파 한걸음에 내달려 온 부모님께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두부를 위해, 집에서 정성스레 상을 차렸다. 그래도 한 끼는 맛있는 식당으로 모시고 싶어 부모님께 짱뚱어탕부터 낙지나 전복요리, 생선구이, 각종 회 등 두부와 내가 가봤던 해남 근교에서 소문난 식당 메뉴를 설명했다.    

 

“서진씨, 전에 먹었던 장어탕 어때요?”     


그 전해에 부모님이 내려오시고, 거제도에서 언니와 형부 그리고 조카를 보겠다며 달려온 막내 이모님, 때마침 배를 타는 막내 이모님의 남편인 이모부님이 타고 온 배가 완도에 정박해 갈치 상자를 들고 오셨다.

그리고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 “나 해남으로 출발했는데.” 서울에서 날 보러 출발했다는 친구까지 7명이 좁은 시골 집에 모였었다.  

   

가까운 사람과 어색한 사이가 모여 왁자지껄한 밤을 보내고, 해장을 위해 ‘장어탕’을 먹으러 갔었다.

“이런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음식을 팔아? 정말 맛있는 거야?”

“일단 들어와 드셔봐.”라고 두부와 나는 자신 있게 다섯 손님을 모시고 조그만 점방 겸 식당으로 들어갔다.      

예약하고 온 사람이라 말하니 “안짝 방에 차려 놨소.”라며 퉁명스럽게 말하던 주인아주머니.

찌개에 불을 켜며 “밥은 더 없응께 알아서 드쇼.”하더니 나가버린다.

“뭐 저래? 밥이 없으면 어떻게 해? 그냥 매운탕 같은데.”

“드셔보고 말해줘.”

가까운 친구지만 입맛 까다로운 녀석과 가까우면서도 어려운 두부의 부모님 그리고 어제 처음 만나 친구 되기로 한 막내 이모님 앞에서 두부와 나는 땀을 뻘뻘 흘렸다.

하지만 한 입만 먹으면 아무도 트집 잡는 이야기는 안 할 거라는 걸 우린 장담했다.

그래, 맛있으니까. 맛있게 먹고 가면 되지.

    

‘장어탕’엔 특별히 들어가는 재료가 없다. 그렇다고 맛이 특별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주인아저씨가 배 타고 나가 바다에서 잡아 온 장어가 주재료.

장어뼈 국물이 뽀얗게 우러난 육수에 된장을 풀고, 고춧가루로 칼칼함을 더하고, 젓국을 살짝 넣어 감칠맛을 올리고, 큼지막하게 썬 미나리가 시원하고 상큼한 끝맺음을 해준다.     


모두 한입 후루룩 국물을 맛보더니 우리를 힐끔 쳐다보고, 다시 조용히 숟가락으로 국물을 흡입하고 있다.

“맛이 자꾸 당기죠?”라며 부모님, 막내 이모님 내외, 내 친구를 둘러봤다. 모두 아무 소리 없이 먹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가득 눌러 담긴 밥을 고새 비우고 “밥이 더 필요하겠는데.”라는 말에, 누군가 “점방에서 라면 사다 끓일까요?하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부가 라면을 들고 왔다.

라면봉지를 뜯어 건더기와 수프는 버리고 '장어탕' 국물에  꼬들꼬들 익힌 면과 함께 국물 한입 호로록.  캬~ 시원하고 깊은 국물 맛과 라면의 조합이란. 다시 두 개가 들어가 라면 4 봉지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주인아주머니가 불친절해서 그렇지, 맛은 있네요.”라며 말수가 적은 두부 아버님이 배불러 더는 못 먹겠다며 숟가락을 놓고 ‘장어탕’을 쳐다보셨다.


“맛있네. 불편한 식당에 왜 데려왔는지 알겠다.” 하며 나름 미식가인 친구가 내 등을 탁탁 두드리더니 “해남 오길 잘했네.”라더니 허허 웃었었다.  

   

그런 황당하고 괴팍한 아주머니가 해주는 ‘장어탕’을 먹으러 간다는 두부 어머니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럼 제가 예약할게요. 내일 점심으로 먹을까요?” 모두에게 OK 사인을 받고 예약을 했다.    

 

완도 다리를 지나, 장보고가 일본군과 해적을 막기 위해 만든 ‘청해진’ 바로 앞에 있는 점방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럴 수가!


“안녕하세요. 예약한 사람입니다.”라고 들어간 식당이 조용했다. 사장님을 찾으려 둘러보니 주방 안쪽 방에서 주인아주머니가 미동 없이 식사 중이었다.

“아직 식사가 준비가 안 됐나요?” 대답 없이 식사하는 아주머니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방을 둘러봤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나 밥 먹고 있는 거 안보이요?”라며 귀찮다는 듯 인상을 쓰고 있었다.

“저희 11시 30분에 온다고 전화를 드렸었는데요.”

“먹고 갈라믄 기다리쇼.”   

  

그 후 30분이 흐르고, “화장실이 어딘가요?”라는 질문에 “저짝 박물관으로 걸어가다 보믄 공중화장실이 있소. 그쪽으로 가보쇼.”라는 말에 화가 났다.     


내가 4년을 밥을 먹으러 오면서 오만가지 불친절함을 그놈에 ‘장어탕’ 맛으로 이겨냈다. 하지만 더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아무 준비도 안 하셨지요?”

묵묵부답으로 답하는 아주머니에게 “그럼 가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다시는 안 오겠다고 다짐했다.     


식사 시간은 늦어지고 무례한 식당에 두부 부모님을 모시고 간 것에 죄송했다.

오히려 부모님이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가 주셔 더 미안했었다.


두부의 부모님이 서울로 가신 후, 한 달 반이 지나 2024년 1월이다.

     

거의 반년만인가? 영암으로 논어를 같이 배우러 다니던 학당 학우들을 만났다.

학우라고 하기엔 어려운 교편을 놓고 퇴직하신 선생님과 명리학을 공부하는 선생님이다. 전에는 한 달에 한 번, 모여 토론도 하고 식사도 가끔 했는데 언제부턴가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뵙지 못했다.


완도와 해남 경계선에서 만나 차 한 대로 움직이자는 연락을 받고 ‘아! 장어탕 집에 가겠구나.’라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역시 ‘장어탕’ 집 앞이다.

앞에 보이는 ‘장어탕’ 집을 처음 나에게 소개해 준 나의 학우들과 마지막 '장어탕'을 함께 할 줄 몰랐다.


‘장어탕’을 마주하고 앉았다.

그래도 인사라는 하라는 뜻인가?

‘오늘이 너를 보는 마지막인 것 같다. 그동안 맛있게 잘 먹었다.’를 고하고 그릇을 비우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다시 ‘장어탕’의 맛을 봤지만, 눈물을 머금고 인사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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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친절하더라도 정말 맛있는 '장어탕'을 드시고 싶으신 분은 꼭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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