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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12. 2024

한 번만 자세히 들여다봤다면

7. 어른 생각 말고 아이들 생각

“일단 생각 좀 해봅시다.”봉쌤은 창문을 쳐다보는 건지 흘러가는 구름을 보는 건지 눈에 잔뜩 힘을 주고 한참을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선생님 저는 내일 수업 준비로 과학실에 좀 다녀올게요.”

윤 선생님도 뭔가 생각이 필요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으신 모양이다.

“그러세요.”


윤선생님이 탕비실을 나가고 나와 봉쌤은 눈이 마주쳤다.     

봉쌤 몸이 내 쪽으로 기울어지며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해야 할까?”라고 우물거린다.

“음... 서류 통과되고 선생님들이 애들한테 잘했다고 얼마나 칭찬을 해줬겠어. 문제아 3인방에게는 ‘이거라도 잘해봐라.’라고 말해줬겠지. 아니야?”

“그랬지.”

“잘한다. 맨날 ‘니들은’ ‘니들은’ 듣던 애들한테.”

“할 말 없네.”


“뻔지르르한 계획서 써주고 ‘이 돈으로는 음식 축제에 나갈 수 없다.’라고 말해줄 거야? 아니지 그냥 흐지부지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지나가것지. 학교가 노력이 아니라 잘못된 수단을 가르치는 곳이야? 잘한다.”

“그것도 할 말 없네. 난 반대했어.”

“그래도 했으면 하니까 날 불렀것지. 그러게, 처음부터 활동비 얘기를 해줬으면 음식 축제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잖아. 그랬다 하더라도 선생님들이 그건 빼고 썼어야지. 난 아이들에게 사실대로 말해줘야 한다고 봐. 어떤 방향으로 요리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은지 들어보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정리해 보고 내자.”


“얼마나 필요할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와~ 나는 교육원도 이해가 안 간다. 350만 원으로 음식 축제에 나가겠다는 이 터무니없는 계획서를 통과시켰다는 게.”      


난 솔직히 교육원에서 아이들 계획서를 읽어봤을까 싶을 정도다.

프로젝트 사이트 들어가면 아이들 활동하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대부분이 돈이 안 들어가는 활동(유적지 답사, 환경 봉사활동, 지역스포츠센터를 이용한 운동, 유니크 플레이스 탐방, 음악 선생님에게 버스킹 배우기, 유튜브를 통해 K-pop 댄스 배우기 등) 하거나 기존해 있는 인스트루먼트나 비싼 운동기구가 있는 동아리; 밴드, 골프, 국악 등을 이용해 활동하는 팀들이 많았다.


또한 프로젝트에 명시되어 있는 사항 중 하나가, 지원금으로 집기는 살 수 없다는 같은 것과 다른 기관에서 추가 보조를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그렇다면 오롯이 350만 원으로 집기를 사지 못하고 요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인데. 어떻게?

음식 축제에 나가려면 사용해야 하는 집기 및 음식 재료비 구매비용이 들어갈 것은 예상하지 않았다는 거다.

‘어머, 얘네는 이 돈으로 그런 것도 할 수 있나 봐.’라며 해내면 교육신문이나 잡지에 인터뷰 사진이 내보고, 우리가 적은 돈으로 아이들과 이런 일들을 해냅니다. 홍보하려나?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으면 생각이 좋았더라도 잘랐어야 하고, 통과를 시키고 싶었다면 추가 지원항목도 있었어야지.     


“나도 그 생각에 동감하네. 몰라서 그랬어. 몰라서.”

가만히 듣고 있던 봉쌤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하나야. 추가 강습을 무료로 몇 번은 해 줄 수 있다는 거. 재료비는 학교에서 내고. 알았지.”

“음식 축제 나가려면 준비기간은 얼마나 걸려?”

“애들이 칼을 잡아 본 적이 없어서... 주전부리관 신청하고 통과되면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연습해야지. 여름방학 이후로 시작하면 되긴 할 건데... 신청을 6월경 받을걸.”


봉쌤이 팔짱을 끼고 다리를 쭉 뻗더니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고 입을 꼭 다물고 있다.

    

핸드폰 액정을 눌러 시간을 슬쩍 봤다.

“벌써 2시간이 넘게 흘렀어. 난 애들한테 갈껴. 그럼 안 하는 걸로 알고. 애들이랑 얘기 좀 할게.”

“아직 애들한테 안 한다고 말하지 말고 얘기만 하고 있어 봐.”

“빨리 와. 나도 가야혀.”     


주섬주섬 가방에 핸드폰과 계획서를 넣고 볼펜을 만지작거리며 탕비실을 나왔다. 오른쪽으로 돌아 저 끝에 있는 기가실을 바라봤다.

사실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발길을 재촉해 기가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런데 조용하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 놈은 컴퓨터로 유튜버를 보고 있고 나머지 놈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게임 삼매경 중이다.   

   

“자~ 모여 보세요.”

빠른 속도로 나범이가 다가오고 그 뒤를 따라 양준이가 헤헤거리며 내 옆에 서 있다. 1학년이었던 디엔이는 귀찮을 정도로 활달하고 말이 많던 아이가 3학년이 되더니 키가 갑자기 커져서 그런지 어슬렁어슬렁 건들거리며 다가온다. 내가 눈에 힘을 주고 치켜보자 얼른 다가와 의자에 털썩 앉는다.

문제아 3인방은 꼭 붙어 앉아서 자기들끼리 툭툭 치며 장난 중이다.     


“계획서 1부씩 가지고 있지?”

“네~” “네.” “예.” “네에에” 대답도 가지각색으로 하면서 가방에 꼬깃꼬깃 구겨 넣은 계획서를 꺼낸다.

“볼펜이나 연필 들고.”

오만 잡동사니를 꺼내며 볼펜을 찾는 두 녀석에게 이름을 물어봤다.

“이름.”

“재범이요.”

“너는?”

“그리요.”

“니들 둘이 제일 친해?”

“어떻게 알아요.”

“넌 재범인 선생님 오른쪽, 그리는 선생님 왼쪽에 앉아.”

“왜요?”

“예뻐서 옆에 두려고.”

“선생님 저는요?” 1학년 양준이가 날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넌 내 맞은편에 앉을래? 계속 보게.”

“형 그럼 나는 여기. 여기.”라며 가방을 들고 디엔이에게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조르더니 결국 자리를 바꿔 앉았다.  

   

“동아리 만들자고 제안한 사람이 나범이야?”

“아니요. 2학년이요.”

“오호~ 기특한데. 왜?”

“맛있는 거 먹고 싶어서요.”라고 재범이가 큰 소리로 말한다.

“그래! 맛있는 거. 재범이는 뭘 만들어 먹고 싶어?”

“초밥이요.”

“우와~ 회 뜨는 것도 배워야겠는데. 재범이는 초밥을 좋아해?”

“전에 목포에 있는 뷔페에서 초밥을 한번 먹어봤는데 또 먹고 싶어요.”

“다른 친구는?”

“저는 돈가스 많이 먹고 싶어요. 치즈 넣어서 만들 수도 있죠?"

“선생님 피자도 만들 수 있어요?”

“짜장면은요?”

“난 탕수육.”

“햄버거, 수제 햄버거 높게 만들어 먹어요?”

“닭꼬치도 만들어요?”

“후라이드치킨.”

"초콜릿 하고 크림 바른 와플."


너도나도 떠들고 있는데 밤송이머리를 한 녀석만 조용히 앉아있다.

“네가 래도지? 너는 어떤 요리를 해보고 싶어.”

“어. 어. 어. 저는. 느끼한 건 싫어하고요. 불고기, 닭볶음탕, 삼겹살 같은 거 좋아해요. 짜장보다 전 짬뽕을 만들어 먹었으면 좋겠어요.”     


농사일로 바쁘고 나이 든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과 살아 밥 먹으러 읍으로 나가는 일이 흔치 않은 아이들은 만들고 싶은 요리가 아닌 먹고 싶은 요리를 나열하고 있다.  

   

“그런데 선생님, 저희 음식 축제에 나갈 수 있어요?”

나범이는 요리를 배우기보다 음식축제에 나가고 싶은가 보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우리가 지역축제에서 음식을 팔아 돈을 벌 수 있어요?”라며 재범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본다.

내가 자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돈?"

재범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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