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지르르한 계획서 써주고 ‘이 돈으로는 음식 축제에 나갈 수 없다.’라고 말해줄 거야? 아니지 그냥 흐지부지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지나가것지. 학교가 노력이 아니라 잘못된 수단을 가르치는 곳이야? 잘한다.”
“그것도 할 말 없네. 난 반대했어.”
“그래도 했으면 하니까 날 불렀것지. 그러게, 처음부터 활동비 얘기를 해줬으면 음식 축제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잖아. 그랬다 하더라도 선생님들이 그건 빼고 썼어야지. 난 아이들에게 사실대로 말해줘야 한다고 봐. 어떤 방향으로 요리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은지 들어보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정리해 보고 끝내자.”
“얼마나 필요할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와~ 나는 교육원도 이해가 안 간다. 350만 원으로 음식 축제에 나가겠다는 이 터무니없는 계획서를 통과시켰다는 게.”
난 솔직히 교육원에서 아이들 계획서를 읽어봤을까 싶을 정도다.
프로젝트 사이트 들어가면 아이들 활동하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대부분이 돈이 안 들어가는 활동(유적지 답사, 환경 봉사활동, 지역스포츠센터를 이용한 운동, 유니크 플레이스 탐방, 음악 선생님에게 버스킹 배우기, 유튜브를 통해 K-pop 댄스 배우기 등)을 하거나 기존해 있는 인스트루먼트나 비싼 운동기구가 있는 동아리; 밴드, 골프, 국악 등을 이용해 활동하는 팀들이 많았다.
또한 프로젝트에 명시되어 있는 사항 중 하나가, 지원금으로 집기는 살 수 없다는 같은 것과 다른 기관에서 추가 보조를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그렇다면 오롯이 350만 원으로 집기를 사지 못하고 요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인데. 어떻게?
음식 축제에 나가려면 사용해야 하는 집기 및 음식 재료비 구매비용이 들어갈 것은 예상하지 않았다는 거다.
‘어머, 얘네는 이 돈으로 그런 것도 할 수 있나 봐.’라며 해내면 교육신문이나 잡지에 인터뷰 사진이 내보고, 우리가 적은 돈으로 아이들과 이런 일들을 해냅니다. 홍보하려나?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으면 생각이 좋았더라도 잘랐어야 하고, 통과를 시키고 싶었다면 추가 지원항목도 있었어야지.
“나도 그 생각에 동감하네. 몰라서 그랬어. 몰라서.”
가만히 듣고 있던 봉쌤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하나야. 추가 강습을 무료로 몇 번은 해 줄 수 있다는 거. 재료비는 학교에서 내고. 알았지.”
“음식 축제 나가려면 준비기간은 얼마나 걸려?”
“애들이 칼을 잡아 본 적이 없어서... 주전부리관 신청하고 통과되면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연습해야지. 여름방학 이후로 시작하면 되긴 할 건데... 신청을 6월경 받을걸.”
봉쌤이 팔짱을 끼고 다리를 쭉 뻗더니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고 입을 꼭 다물고 있다.
핸드폰 액정을 눌러 시간을 슬쩍 봤다.
“벌써 2시간이 넘게 흘렀어. 난 애들한테 갈껴. 그럼 안 하는 걸로 알고. 애들이랑 얘기 좀 할게.”
“아직 애들한테 안 한다고 말하지 말고 얘기만 하고 있어 봐.”
“빨리 와. 나도 가야혀.”
주섬주섬 가방에 핸드폰과 계획서를 넣고 볼펜을 만지작거리며 탕비실을 나왔다. 오른쪽으로 돌아 저 끝에 있는 기가실을 바라봤다.
사실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발길을 재촉해 기가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런데 조용하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 놈은 컴퓨터로 유튜버를 보고 있고 나머지 놈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게임 삼매경 중이다.
“자~ 모여 보세요.”
빠른 속도로 나범이가 다가오고 그 뒤를 따라 양준이가 헤헤거리며 내 옆에 서 있다. 1학년이었던 디엔이는 귀찮을 정도로 활달하고 말이 많던 아이가 3학년이 되더니 키가 갑자기 커져서 그런지 어슬렁어슬렁 건들거리며 다가온다. 내가 눈에 힘을 주고 치켜보자 얼른 다가와 의자에 털썩 앉는다.
문제아 3인방은 꼭 붙어 앉아서 자기들끼리 툭툭 치며 장난 중이다.
“계획서 1부씩 가지고 있지?”
“네~” “네.” “예.” “네에에” 대답도 가지각색으로 하면서 가방에 꼬깃꼬깃 구겨 넣은 계획서를 꺼낸다.
“볼펜이나 연필 들고.”
오만 잡동사니를 꺼내며 볼펜을 찾는 두 녀석에게 이름을 물어봤다.
“이름.”
“재범이요.”
“너는?”
“그리요.”
“니들 둘이 제일 친해?”
“어떻게 알아요.”
“넌 재범인 선생님 오른쪽, 그리는 선생님 왼쪽에 앉아.”
“왜요?”
“예뻐서 옆에 두려고.”
“선생님 저는요?” 1학년 양준이가 날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넌 내 맞은편에 앉을래? 계속 보게.”
“형 그럼 나는 여기. 여기.”라며 가방을 들고 디엔이에게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조르더니 결국 자리를 바꿔 앉았다.
“동아리 만들자고 제안한 사람이 나범이야?”
“아니요. 2학년이요.”
“오호~ 기특한데. 왜?”
“맛있는 거 먹고 싶어서요.”라고 재범이가 큰 소리로 말한다.
“그래! 맛있는 거. 재범이는 뭘 만들어 먹고 싶어?”
“초밥이요.”
“우와~ 회 뜨는 것도 배워야겠는데. 재범이는 초밥을 좋아해?”
“전에 목포에 있는 뷔페에서 초밥을 한번 먹어봤는데 또 먹고 싶어요.”
“다른 친구는?”
“저는 돈가스 많이 먹고 싶어요. 치즈 넣어서 만들 수도 있죠?"
“선생님 피자도 만들 수 있어요?”
“짜장면은요?”
“난 탕수육.”
“햄버거, 수제 햄버거 높게 만들어 먹어요?”
“닭꼬치도 만들어요?”
“후라이드치킨.”
"초콜릿 하고 크림 바른 와플."
너도나도 떠들고 있는데 밤송이머리를 한 녀석만 조용히 앉아있다.
“네가 래도지? 너는 어떤 요리를 해보고 싶어.”
“어. 어. 어. 저는. 느끼한 건 싫어하고요. 불고기, 닭볶음탕, 삼겹살 같은 거 좋아해요. 짜장보다 전 짬뽕을 만들어 먹었으면 좋겠어요.”
농사일로 바쁘고 나이 든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과 살아 밥 먹으러 읍으로 나가는 일이 흔치 않은 아이들은 만들고 싶은 요리가 아닌 먹고 싶은 요리를 나열하고 있다.
“그런데 선생님, 저희 음식 축제에 나갈 수 있어요?”
나범이는 요리를 배우기보다 음식축제에 나가고 싶은가 보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우리가 지역축제에서 음식을 팔아 돈을 벌 수 있어요?”라며 재범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