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임 Feb 12. 2024

내가 내 무덤을 파고 있는겨

8. 같이 가다보면 아이들이 왜  돈을 벌고 싶은지 알 수 있을까

범이는 음식 축제에 나가서 돈 벌고 싶어?”

“거기 가면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사 먹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머리가 덥수룩하고 앞머리로 눈을 가린 녀석이 눈을 어디에 둘 줄 몰라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며 이젠 머리까지 흔들어댄다.

“그럼 진짜 열심히 요리를 배워야겠는데.”


“애들은 그런데 오면 안 된다던데.”라며 디엔이가 빈정거린다.

“애들은 왜 축제에 가면 안 돼?”

“어른들 술 먹고 놀잖아요. 애들이 어른들 노는데 가는 거 아니래요. 난 술 마시는 어른이 싫어요.”     


디엔이는 놀이방에 들어가기 전에 부모님이 이혼해서 아빠 차를 타고 바닷가 앞에 사는 조부모님 댁으로 누나와 같이 왔다. 부모와 떨어진 디엔이가 어려서 얼마나 울고 다녔는지 동네 어르신들이 ‘아직도 우냐?’라고 물어볼 정도다.

힘든 바닷일과 농사로 피곤한 하루를 술로 푸는 할아버지와 바지런하고 억척스러운 할머니와 살면서 살가운 손을 그리워하던 아이였다.

어찌 된 일인지 눈을 마주치며 졸졸졸 따라다니던 개구쟁이 녀석이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만 바라보며 귀찮다는 듯 앉아서 모든 말에 구시렁대는 중이다.   

  

“그런데 선생님, 축제에 나가면 돈 벌어요?”

언제나 한 박자 늦게 행동하고 대답하는 그리가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우린 뭘 팔아야 할까요?”라며 계획서에 볼펜으로 ‘판매할 요리’라고 적고 있다.

“축제에 나가서 음식을 팔면 돈은 벌  있지. 그러면 그 음식은 누가 만들어야 해?”

난 아이들의 얼굴 한명 한명에게 눈을 맞추며 바라보려 했지만 눈을 맞춰주는 놈이 나범이 한 녀석 뿐이다.

“선생님이 도와주거나 사 와서 팔아야지요.”


뭐 애들이니까 모르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축제엔 누가 나가는데?”라고 물어봤다.

아이들이 우물쭈물하더니 “저희요.”라고 대답한다.

“그래 너희 동아리가 나가는 거야. 나범이는 아이들과 충분히 상의하고 계획서 작성한 거니?”

나범이는 본인이 의도한 생각과는 먼 이야기들이 오가자 허탈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둘러보다 고개를 떨군다.     


“자 이제 선생님이 설명해 줄 거야.”라며 집게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 조용히 해보라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동아리는 너희가 자발적으로 만든 동아리야. 요리고 싶어서건 먹고 싶어서건 너희 동아리라는 거지. 선생님에게 요청이 온건 ‘도와주세요.’라는 말이었어. 그래서 선생님은 도와줄 거야. 선생님이 할 수 있는 만큼. 나머지는 너희들이 해야 해.”

“그럼 선생님이 우리를 가르쳐주지 않아요?”

아이들끼리 수군대며 나를 봤다 자기들끼리 바라봤다 어수선하다.

아무래도 아이들의 최종 결론은 ‘음식 축제에 나가서 돈을 벌자’였던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상황으로는 음식 축제에 나갈 수가 없어.”

“왜요?”

난 잠시 숨을 고르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너희는 요리를 배우겠다는 것보다 돈을 벌고 싶은 것 같아서 안 되고.”

갑자기 나범이가 삐죽삐죽 정리가 안 된 앞머리에 가려진 눈을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물건을 사다 팔기엔 너희가 받은 예산이 너무 적고.”

래도가 “350만 원이면 할 수 있지 않아요?”라며 우리도 돈 있다고 외친다.


“누가 칠판 앞에 나가볼래.”

나범이가 잽싸게 일어나 펜을 들고 화이트보드 앞에 선다.

“음... 3,000원짜리 빵을 팔아보자. 나범아 3,000원이라고 적어야지.”

보드에 3,000원이라고 적는다.

“그럼 적어도 하루에 200개는 팔아야 하는데, 축제에서는 많은 이윤을 붙일 수 없으니 원가 2,000원짜리 빵을 사자. 그럼 2,000원 곱하기 200은 40만 원이지? 빵만 팔 수 없으니 1,000원짜리 음료를 납품받아 팔자. 그럼 20만 원 하루에 60만 원이 필요하지. 주말이라 수익금으로 물건을 납품받지 못해. 그러니 3일 동안 팔아야 하는 양을 사야겠지. 그럼 얼마야?”

“180만 원이요. 우린 350만 원 있잖아요.”

“빵은 어디에 넣어서 줄 거야? 봉투도 사야지. 그래 좋다. 이래저래 최소 200만 원이 들었다고 합시다.”

아이들이 150만 원이나 남네라며 숙덕거린다.


“그 전에 너희들이 해야 하는 31번 요리 수업은? 수업마다 사진을 찍어 프로젝트 사이트에 올려야 하던데.”

나범이가 뽁뽁뽁 소리를 내며 계산을 하는데 저 녀석 글씨는 정말 악필이다.

“6명이 4만 8천 원으로 매회 하면 되고, 견학하고 봉사활동은?”

아이들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물건을 사다 파는 음식도 좋은 걸 가져다 판매해야 팔리는 거야. 너희 같으면 맛없는 걸 3일 내내 사 먹겠니? 더군다나 벌써 요령만 피우려는 녀석들이 파는 건 난 안 먹으련다.”

아이들 어깨가 축 처져있다.

왜 이 아이들은 돈을 벌고 싶을까?     


“자. 자. 이런저런 이야기 다 빼고, 축제에 참여하려면 참가 조건이 있어. 지역 농수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거야.”

아이들이 이건 무슨 말이냐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범이 이리와 앉아.”

나범이가 돌아와 의자에 앉기를 기다렸다.


“선생님이 나범이에게 처음 꺼낸 의견이 뭐였지?”

“지역 농수산물을 이용한 요리요.”

“그래, 너희가 이 지역에 특화상품으로 등록되었거나 재배하는 음식 재료로 요리를 한다면 나갈 수 있다고 한 거야.”

그제야 나범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은 눈만 끔뻑끔뻑하고 허탈한 표정이다.


“그래도 누가 알아? 너희들끼리 배추로 음식을 만들다 보면 상상 이상의 맛을 내는 음식이 나올지. 고구마로 손이 절로 가는 간식을 만들 수도 있다고. 해 봐야 아는 거야.”     

나범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아이들은 아직도 허탈한 표정으로 어깨를 떨구고 앉아있다.

“힘내! 너희는 할 수 있어.”


“나범이 형 빼고 우리는 공부도 못하고요.”

“공부하고 요리하고 무슨 상관인데? 너희 요리사 되려고?”

“그건 아닌데요. 저희 머리가 나쁘다는데 우리끼리 요리를 할 수 있을까요?”

이건 뭐지. 아이들하고 대화하다 보면 희망이 생기고 꿈에 부푼 아이들의 기운을 못 이겨, 나까지 쿵덕 쿵더쿵 들떠 ‘얘들아,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다 해 줄게’라는 말이 튀어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기운이 쭉쭉 빨려 땅속으로 꺼지는 느낌이다.     


“너희가 머리가 나쁘다고 여기는 거야? 아니면 누가 너희보고 머리가 나쁘다고 한 거야?”

“다들 그래요. 머리 나빠서 공부 못한다고.”

이제 중학생인데 아직 다 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너는 ㅇㅇ이 나쁘다’라고 말할 수 있지.

“선생님도 고등학교 때 꼴찌 했었는데. 외국에서 대학원 졸업장까지 받았는걸. 그리고 요리도 하잖아.”

“머리 나빠도 요리 할 수 있어요?”

“아직 너희가 머리가 나쁜 줄은 모르겠고, 좀 심란하기는 해. 공부 못해도 요리는 할 수 있어.”  

   

한참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양준이가 힐끔힐끔 기가실 출입문을 보고 있다. “왜?”라고 조용히 물어보니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킨다.

봉쌤 머리가 기가실 문 윗부분에 있는 유리 너머로 오르락내리락 발꿈치를 들고 교실 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얼른 기가실 문을 열고 봉쌤을 바라봤다.

“왜?”

“애들한테 못한다고 했어요?”

“아직 이야기 중인데.”

“2학기에 요리반을 하나 만들면 어때?”

“진짜?”

봉쌤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내 무덤을 파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날 ‘진짜?’하고 기뻐했던 나를 미워하는 날이 많아질 줄은 몰랐다.     


                    

이전 08화 봉쌤이 도와달라며, 당신이 책임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