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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13. 2024

나는 발등을 찍고, 너희는 고생문이 열리고

9. 선생님 아이들에게 안된다고 하지 마세요. 나만 할 거야

환하게 웃고 있는 봉쌤이 엄지를 치켜들며 “잘했지?”라고 물어본다.

“진즉 애 좀 쓰지. 그럼 더 이뻤지. 이따 봐.”    

 

몸을 돌리다 말고 아이들의 행동에 웃어버릴 뻔했다. 봉쌤과 나의 대화를 안 들은  척, 얼굴은 돌리고 귀가 쫑긋쫑긋 움직이며 나를 향해 있다.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할 타이밍이라 웃지 못하고  다시 아이들이 모여 앉아있는 테이블 위에 손바닥을 대고 서있었다. “얘들아, 모여봐.”라며 재범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질문을 할 거야. 솔직하게 대답해 줘.”

머뭇거리던 아이들이 “네”하고 기운 없이 대답한다.


“축제에 나가서 돈을 벌겠다는 목적으로 요리를 배우겠다면 선생님은 NO. 너희가 계획서에 썼듯 제대로, 선생님이 알려주는 순서대로 차근차근 배우겠다면 YES.”

나범이가 고개를 들어 비에서 희로 표정이 바뀌더니 환한 미소를 띠며 날 바라본다. 녀석의 얼굴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YES라고 대답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아이들이 내 앞으로 쏟아져 내릴 듯 다가오며 너도나도 소리를 내어 물어보기 시작한다.

“선생님에게 요리 배우면 음식 축제에 나갈 수 있어요?”

아이들이 음식 축제에 관한 관심이 사그라지지 않은 듯하다. 이 일을 어쩔꼬.

“배우면 나갈 수 있지만, 축제에 나갈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겠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손만 만지작거리던 그리가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그럼 돈가스 만들어 먹어요?”라고 물어보는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음 가능하다면 만들어 먹는 것도 좋겠지.”     


양손을 들어 손을 흔들며 “자. 자.” 그리고 손가락을 입에 대고 한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이들이 조용해 지기를 기다렸다.

“너희도 익히 알겠지만, 선생님 무섭다.”

“예, 그렇게 보여요.”라고 말하지만 이미 날 무서워하지 않는데.

“그런데 선생님하고 같이하고 싶다니 신기하네.”

“수학 쌤하고 과학 쌤이 선생님은 목소리만 무서운 거래요.”

“서진쌤 진짜 무서운데.”하고 디엔이가 두 손을 흔들며 도망가는 시늉을 하고 있다.

“너 일루 와 시끼야.”

“왜 이러세요. 선생님. 제가 쌤 좋아하는 거 알죠.”라며 하트를 날려 준다.   

  

“언제부터 시작할까?”

가만히 있던 나범이가 “선생님, 이번 주부터 하면 안 돼요?”라고 물어본다.

“봉쌤하고 윤 선생님하고 상의해 보고. 전해 줄게. 나범아 단톡방 만들어 놓고. 알았지?”

“네.”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그럼 다음 시간에 봅시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참. 너희 유튜브나 인스타에 올린 사진이랑 동영상 찍으려면 친구 한 명 섭외해야 한다.”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교실을 빠져나오려는데 누군가 내 팔을 잡는다. 팔을 잡고 있는 아이는 1학년 양준이다.

“우리 누나가 기다렸다가 저랑 같이 가야 하거든요.”

“응.”

“우리 누나가 사진 찍으면 안 돼요?”

“그럼 다음에 누나 데려와 볼래?”

양준이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더니 형들에게 뛰어가 “누나 다음에 데려오래.”라며 방방 뛰며 좋아하고 다.     


다시 탕비실로 들어가니 봉쌤과 윤선생님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봉쌤을 처음 만난 2년 전, 그는 아이들의 진로 학습과 아이들의 정서 교육에 적극적인 선생님이었다.

작년 봄, 격투기 경기장 앞에서 만났던 봉쌤.

“오오. 웬일이야?”

봉쌤이 손가락으로 건물 2층을 가리켰다.

“격투기?”

“무도인의 자세를 한번 배워보라고.”

“2학년? 걔들은 딱 선빈데. 쌤도 같이 올라가야지. 같이 구르고, 뛰고, 다리도 찢어보고 말이야. 선생이 부채만 들고 서 있지만 말고 모범을 보여야지?”


“여긴 웬일로 행차를.” 말 돌리는 봉쌤.

“수업 끝나고 선생님들이랑 밥 먹으러.”라며 1층을 가리키며 헤어졌었다.

이때만 해도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열성을 보였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이들 정서 교육에 관해선 손을 완전히 떼고 수업에만 열중하는 분위기였다.   

“요즘은 애들한테 전혀 신경을 안 쓰네.”

시원한 커피를 만들며 봉쌤을 툭 쳤다.

“재미없어.”

“재미로 하나. 나 보고는 애들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그렇게 침을 튀기며 말하더니.”


얼음이 동동 띄운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한잔 더 만들어 테이블에 앉았다.

“교장 선생님이 2학기에 요리반 만들어도 된대?”

“학교에 비상 예산도 있고, 군에서 보조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역시 진심으로 아이들을 생각하는 베테랑 교사, 봉쌤의 의견은 교장 선생님도 거절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교장 선생님이 군수님이랑 교육장님이랑 친구지?”

“어떻게 알아?”

“다 듣고 왔지. 교육장님은 내가 하는 수업에 관심 많으셨는데, 이럴 줄 알았음 지난번 만났을 때 친해졌어야 하는데. 내가 그런 걸 못해가지고.”  

   

윤 선생님은 앉아서 봉쌤과 내가 하는 대화만 다소 편안해진 얼굴을 돌려가며 듣고 있다.

“윤선생님도 마음이 놓이죠?”

“네, 아이들이 실망할까 봐.”

윤 선생님과 나는 손을 맞잡고 살며시 웃었다.

     

“어쨌든 내가 하겠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한 건, 계획서대로 한다는 조건입니다. 노력해 보고 안 되는 건 접는 거고요. 모든 과정은 아이들 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거지만요. 선생들이 먼저 아이들에게 ‘안돼’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선생님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기가 선생님은 그대로지요?”

“기가쌤은 왜?”

“기물 부탁하려고. 우리 돈 없잖아. 밥 지어야 하는데 솥은 무슨 돈으로 사려고?”

“솥에다 밥 하게?”

“그럼 쌀이 이렇게 많이 나는 동네에서 지역 농산물로 요리한다는 녀석들이 가마솥에 밥을 못 하면 되것어. 안 되것어?”

“서진 쌤 대박.”

봉쌤이 부채를 연신 움직이며 허허 웃는다.   

  

“윤 선생님 아이들 수업은 무슨 요일이 좋을까요?”

“목요일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다음 주 목요일부터 시작할게요.”

“사 와야 할 요리 재료는 없나요?”

“없어요. 주방 기구 청소할 거라서요. 참 세제랑 수세미요. 행주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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