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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11. 2024

폐교 위기 학교를 살린 초등학생 꽃할매 5인방

5.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색 바랜 청색 얇은 잠바를 손에 들고 꼬질꼬질 늘어진 티셔츠에 복숭아뼈 위로 살짝 걸쳐진 짤막하고 무릎 나온 츄리닝 바지를 입은 아이가 자기보다 큰 가방을 짊어지고 뒤꿈치를 들었다 놨다 하며 나와 눈을 마주치려 애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서류를 다시 한번 보고 “네가 1학년 양준이구나.”라며 반겨줬다.

“넌 전학 왔나 보네.”     

“에이~ 선생님이 우리 학교 애들 다 알아요?”라며 디엔이가 삐따닥하게 의자에 앉아 삐따닥 한 말투로 내 말을 내뱉듯 말을 한다.

“응, 네가 너무 말이 많아서 선생님이 손으로 디엔이 입을 틀어막았던 건 기억하지.”

아이들이 디엔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깔깔깔 웃기 시작한다.     


“문제아 3인방 6학년 때 4명, 5학년 1명이었는데 할머니 학생님들 포함 총 23명이었잖아. 양준이가 중학교 1학년이면 그땐 5학년이었지? 그때 그 아이가 아닌데. 걔는 안경 썼었고 얼굴이 길쭉하고, 너희랑 한 테이블에서 요리했지 아마. 얜 얼굴이 작고 동글동글하잖아.”           

문제아 3인방 중 밤송이머리를 한 녀석이 “오호~ 선생님 그걸 다 기억해요?”라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날 쳐다본다.

“으응, 네가 열심히 한다고 눈에 힘주고 썰다가 칼에 묻은 양파 쓸어내리다 살짝 베인 것도 기억나. 이름만 모르지.”

“그래 맞아. 나 손 베여서 피가 찔끔 났었어.”


밤송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양준이가 껴들어 “저는 작년에 경기도에서 전학을 왔어요.”라며 손을 들고 얘기한다.     


“선생님 나도 알아요.”

나를 헤벌쭉 조용히 쳐다보던 문제아 3인방 중 동글동글하고 살이 더 찐 아이가 물어본다.

“응 네가 마늘을 한참 쳐다보다가 정말 천천히 다졌었지. 너 끝날 때까지 다지지 않았냐?”라는 말에 환하게 웃는다.     


“저는요?”라고 손을 들고 3인 방중 마지막 콧수염이 거뭇거뭇하고 까무잡잡한 녀석이 ‘나도 기억한다고 해줘요.’라는 얼굴로 날 바라본다.

“넌 계속 내 눈치만 봐서 네 손을 잡고 칼질하는 거 도와준 거 기억나지?”

동글이와 툭툭 치며 ‘나도 아나 봐.’라며 키득거린다.     


“선생님 천재예요? 2년 전 일이 다 기억나요.”

“너희도 선생님만큼 요리하면 다 기억해. 할머님들은 잘 계시니?”

“그럴껄요.”     


2019년 마을에 사는 60대 젊은 할머니들부터 최고 연장자였던 지팡이 짚은 대장부 90세에 할머니까지 다섯 꽃 할머니들이 책가방을 들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해 입학생은 1명 총재학생 수는 입학생을 포함해 20명이 안 되는 인원이었다.


1922년부터 문을 열어 2022년 100살이라는 나이를 목전에 두고 폐교 위기에 놓여있는 학교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백 년을 바라보는 소나무 숲과 각양각색의 나무들이 어울려 작은 숲이 있는 초등학교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 초등학교의 앞날을 걱정하며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것이 할머니 입학생이었다.  

   

2020년 할머니들이 2학년이던 겨울, 나는 요리사 진로 체험 선생님으로 요리 수업에서 할머니들을 만났다.

평생을 정지에서 커다란 솥에 음식을 만드셨던 분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요리를 자분자분 배우실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었다.


“할머니 얇게 잘 썰어 놓으셨네요. 조금 있다가 아이들 썬 양파랑 같이 한 프라이팬에 넣고 볶을게요이.”라고 난 분명히 말하고 다른 테이블로 지나갔는데 철이 부딪치는 소리와 휴대용 사스 레인지의 타닥타닥 손잡이를 돌려 불을 붙이는 소리가 났다.


오메~ 뒤돌자마자 프라이팬에 채 친 양파를 넣고 기름을 볶을 준비를 하고 계셨다.

나는 얼른 아이들이 썰어 놓은 양파를 모아 할머니에게 달려가듯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제가 도와 드릴게요.”라고 하니 “볶는 건 우리도 할 줄 안당께요.”라며 프라이팬을 놓지 않으셨다.

“그럼 볶아서 조리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그제야 프라이팬을 놓으셨다.


“자 보세요. 프라이팬에 들어있던 양파를 접시에 덜어내고, 불을 켭니다. 뜨겁게 달궈지면 기름을 넣어요. 이젠 불을 약한 불로 줄일게요. 이젠 양파를 넣고요. 잘 섞어주세요. 이젠 요걸 넣어야 해요. 설탕. 설탕을 넣고 잘 섞어서 타지 않도록 조심조심 잘 저어주세요.”


“씨게 볶는 게 아니구먼.”이라며 숟가락으로 살살 저어가며 “이거슨 뭐가 다른겨?”라며 날 바라봤다.

“캐러멜라이징이라고 빵 위에 올려 먹는 건데요. 설탕을 넣어 투명하게 조리는 거예요.”

“볶는 것이 아니고 조리는 거여.”

“할머니들이 아이들이 양파 다 썰면 아들 것도 할머니들이 도와주세요.”

“그라제. 평생 부엌서 솥뚜껑 운전을 혔는디. 우리가 쟈들보다 낮제.”라며 아이들 양파도 모아 살짝 태운 캐러멜라이징 양파를 만들어 주셨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재료를 빵 위에 올려 먹을 거예요.”

빵 위에 버터를 바르고 채소를 올리고 치즈를 올리라고 말하고 캐러멜라이징 양파를 올리고라고 하던 중.


“우리는 요거 하나 더 주야것는디.”

“네. 치즈요?”

“요것도.”

“햄이요?”

“요 할마씨가 뭔 맛이 나는지 궁금혔는가 먹어버렸다네.”라며 먼 산을 바라보신다.
 “자네도 처묵어 놓고. 왜 나만 묵었다고 그런댜.”


항상 이런 일이 아이들에게도 생기는지라 여유분을 들고 가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지만, 할머니들은 벌써 빵 안에 모든 재료를 넣고 썰어서 선생님들과 나눠 드시고 있었다.     

“저 여기 햄 하고 치즈요.”

“맛나네. 저 설탕 넣은 양파가 들어가니께 달달하니 맛나구먼. 치즈하고 햄은 더 없는가?”

“저 소스도 넣으셔야 하는데.”

옆에 계신 선생님을 툭툭 치시더니 “선상님 우리 소스 더 쥬쑈.”라고 한다.

“아아 벌써 넣으셨군요. 뭐~ 맛있게 드시면 되죠. 순서가 중요하겠어요.”     

할머니들 덕에 어수선했지만 재미있는 시간이기도 했었다.


한글을 몰라, 학교를 다니지 못해 창피해하고 숨기는 어르신들이 있다는 걸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용감하게 초등학생이 되어 증손자뻘 되는 아이들과 학교를 다니는 할머니들에게 경의를 표할 뿐이다.


“그런데 얘들아 그 할머니네 반 아이는 어떻게 됐어?”

할머니와 수업하기 싫다고 징징대던 녀석이 궁금했다.

“읍으로 전학 갔어요.”


나 같으면 할머니들에게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편들어주는 어른이 있어 좋았을 것 같은데, 그날 그 수업 시간에도 늦게 오고 얼굴에 불만이 많아 다른 아이들과 수업을 시켰었다.


“할머니들이 서운했겠네.”


그 아이는 많이 힘들었을까? 하긴 나도 2학년 학생이라 말하지 않고 할머니네 반 아이라고 말하고 있구나.     


“그나저나 너희 계획서 말이야. 누가 작성한 거야? 너희는 아니지?”

선생님들은 눈을 크게 뜨고 날 쳐다보고 나범이 마저 우물쭈물 말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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