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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10. 2024

수업 못 한다고 꼭! 말할 거야

4.재넘이가 나에게 벚꽃 잎을 한 아름 날려주었다. 좋은 일이 생기려나

주말 동안, 너무 부지런히 움직였다.


허브를 심을 텃밭에서 작은 돌멩이까지 걷어내고 로즈마리와 라벤더 묘목을 심고 근처에 있는 지인 댁에서 타임 캐다가 심어 놓았다. 씨를 심어 모종으로 키운 딜, 오레가노, 파슬리, 차이브, 그린빈도 심었다. 텃밭 가장자리에 줄 맞추어 심어 놓은 마가렛이 하얗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텃밭 옆 비탈진 곳에 심은 꽃잔디가 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    

 

집 벽에 기다란 왕대를 기대어 주고서 심은 오이, 거름을 잔뜩 넣어 심어 놓은 호박, 고추 두 그루, 가지 두 그루, 방울토마토 두 그루, 싹이 돋았느냐는 상추와 쌈채들이 아침마다 나와 동생을 부지런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텃밭에 물을 주고 있는 나에게 동생이 다가온다.

“언니, 못한다고 꼭 말해야 해. 또 애들 보고 짠하다고 그냥 해주면 절대 안 돼.”하며 “갔다 올게.”라며 차 문을 열다 말고 “언니, 한다고 얘기하면 언니 말대로 일 년 동안 고생한다.”라며 날 빤히 쳐다본다.

“알았어. 이 일은 내가 봐도 불가능해. 애들한테 쓸데없는 희망은 안 되지. 잘 갔다 와.”

동생이 차 안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쳐다보다가 차를 움직여 회사로 출발했다.

    

그날 오후,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학교로 출발했다.

햇볕은 따사롭고 봄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굽이굽이 벚꽃이 지고 있는 벚나무길을 지나 재넘이와 함께 재를 넘었다. 재넘이가 가다 말고 눈 같은 벚꽃 잎을 한 아름 나에게 날려주고 사라졌다.

오늘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     


학교 주차장에서 봉쌤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디?’

이 사람 묵묵부답이다.

봉쌤에게 전화했다.

“왔어요?”

“지금 들어갈라고.”


탕비실로 들어가니 봉쌤이 나에게 줄 차를 타고 있다.

“뭔  있었소? 얼굴이 왜.”

까맣냐고? 요즘 텃밭 만들어서 남는 시간은 밖에서 살아.”     

"텃밭을 왜 만들어? 별 걸 다하네."

"월매나 잼있다고요. 뭘 몰라."


이 봉쌤으로 말하자면, 2년 전날 처음 윤산중학교에 불러준 선생님이다.

그때는 진로 담당 선생님이었고, 진로 체험처에서 날 소개받았다며 전화를 했었다.

봉쌤의 요구 조건은 하나였다.

“오래 걸려도 좋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순서대로 제대로 알려주세요.”


아무래도 나범이가 얘기하는 ‘제대로 배우고 싶어요.’라는 말은 요 선생님 말버릇은 배운 듯하다.


지금은 살을 빼고 양복바지에 셔츠를 입고 다니지만, 처음 학교를 방문한 날 생활 한복을 입고 부채를 들고 나타난 봉쌤과 나는 누가 보아도 전혀 안 맞을 것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둘 다 눈치도 없고 입에 번지르르하게 침 바르는 걸 좋아하지 않으며 말투도 투박해 남들이 우리의 대화를 들으면 싸우는 줄 알 정도라고 해야 할까.  


학생 수가 적고 거리가 멀어 윤산중 수업을 꺼리는 강사들이 많은데 군말 없이 와줘서인지 고맙다며 나를 좋은 사람으로 봐줬다.

그런 나에게 효자 아들 봉쌤은 암에 걸린 어머님 음식 조언을 받으려 여러 번 찾아왔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격식 없는 친구 사이가 됐다.      


그 덕에 그놈의 규격이나 정도가 불분명한 4시간 ‘제대로’ 수업을 여러 번에 걸쳐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어머님은?”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이지.”

“먹는 건?”

“고기를 워낙 좋아하시니까. 못 참아.”

“아프고 괴롭게 오래 사느니 어머님이 좋아하는 일만 해줘. 당신도 이제 알잖아. 때가 된 거.”

“알지. 그런데 안 되네.”

“그 맘 나도 이해혀.”라며 우린 씁쓸하게 차를 마셨다.    

 

“그나저나 그 계획서는 어느 선생님이 작성한겨?”

“난 아니라네.”

“그걸 자랑이라고 말해요. 상관했어야지. 어른들 계획서여?”

“나도 난중에 알았다니까.”

“아구 속 터져. 난 안 할겨.”

“안 되는디. 어트게 아아 드려요?”

난 고개를 까딱거리며 손을 까딱거리며 빨리 타라고 신호를 보냈다.

     

학교 종이 울렸다.

아이들이 내려오겠지. 뭐라고 말하지?


따다다닥 따다다닥 소리가 나더니 탕비실 유리에 시커먼 물체들이 하나 그리고 하나 또 하나 점점 시커먼 물체가 커지고 있었다.

소곤소곤 속닥속닥 우왕좌왕 투두두둑 퍽퍽 툭툭 온갖 잡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내가 만약 탕비실 문을 연다면 저 밖에 있는 검은 물체가 우르르 쏟아질 것처럼 문이 흔들거리고 있다.   

   

똑똑

“들어와.”라고 봉쌤이 말하자 문이 열리며 아이들이 날 쳐다본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떨군다.

그래, 나도 알아 내가 좀 딱딱하게 생겼지.


헤죽헤죽 웃으며 “안녕하세요. 선생님.”하고 들어오는 디엔이. 정말 많이 컸다.

“이 자식 왜 이렇게 많이 컸어. 이리 와봐 안아보게.”

정이 그리운 디엔이를 꼭 안아주었다.    

 

눈동자에 기운이 없고 눈치를 보며 거뭇거뭇한 아이 셋이 고개만 까닥거리며 들어온다.

“너넨 인사 안 하냐? 너희 나 기억 안 나?”

자리에 앉던 아이들이 엉거주춤 일어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본다.

“인사.”

“안녕하세요.” 세 명이 모기보다 못한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이고 다시 날 쳐다보다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니들 지금, 선생님이 니들 맘대로 안될 것 같아 실망했지?”

“아니요.”라고 말하지만 늘어지는 말속에 ‘네 맞아요.’가 들어있었다.

“너네 나 몰라? 너희 6학년 때 바게트 샌드위치.”

“아. 아. 아아아아. 그 선생님.” 이제야 목소리가 커진다.

“그래, 너희 그 문제아 3인방 맞지?”

“허허 그럴걸요.”     


나범이가 반갑게 인사한다.

“선생님 계획서 보셨어요?”

“응.”


그런데 저기 삐쭉거리며 기웃대는 조그만 녀석이 있다.     

“넌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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