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녁 찬은 호박 짜글이.
난 외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호박 짜글이를 좋아한다.
섬마을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던 할머니는 항상 바쁜 나날을 보내셨다. 텃밭을 일구고, 젓갈을 담고, 고사리 끊어 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가만히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어부인 외할아버지가 잡아 온 물고기를 할머니가 다듬어 냉동실에 쟁여두고, 나에겐 멀쩡한 물괴기를 구워준 적 없다. 손발이 나와 척척 맞는 외할아버지가 이건 서진이 거라며 따로 챙겨 두어야만 생선조림도 나오고 생선구이도 나왔다.
우리 외갓집 정지엔 커다란 무쇠솥이 3개나 있는 아주 커다란 부엌이었다. 나무를 때야만 밥을 할 수 있고, 육지에서 싣고 오기 힘든 가스를 이용해야 하는 가스레인지는 아주 가끔 썼던 것 같다. 지금이야 모든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육지에서 물건 들여오는 게 쉽지만, 그 당시엔 통통배 타고 큰 섬에서 페리호를 타야 육지로 갈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할머니는 생선은 아궁이에서 구웠고, 짜글이는 가스레인지를 이용했다. 투박한 까만 냄비에 숭덩숭덩 썬 조선호박과 양파 그리고 냉동실에서 꺼낸 새우살을 넣어 고춧가루와 할머니가 담근 새우젓으로 양념한 뒤 툭툭 썬 파를 올려낸 호박 짜글이가 어린 내 입맛에도 달달하게 느껴졌었다, 이제는 내가 할머니를 위해 호박 짜글이를 해달라 조를 수도, 내가 해드릴 수도 없지만 물괴기와 호박을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
작년에 만든 텃밭에서 첫 호박으로 나에게 할머니가 그리운 음식인 짜글이를 끓여 저녁상으로 올렸었다. 푸르딩딩하고 녹색이 나는 음식 재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내 동생 두부가 달고 고소했는지, 올해도 작년 호박 짜글이를 떠올리며 저녁 찬으로 올려 달라고 요청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만들어 주지 못하다가 아침에 예쁜 호박을 두 개나 건져와 저녁 식탁에 올릴 셈이다.
먼저 텃밭에서 따온 동글동글한 조선호박을 사용한다. 우리 집 텃밭엔 길쭉한 애호박이 아닌 조선호박, 그러니까 둥근 호박이나 풋호박으로 불리는 호박을 심는다. 나의 견해로 다른 호박에 비해 단맛이 강하고 한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맛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텃밭에서 따온 호박을 텃밭 품앗이로 받은 단단하고 달큰한 양파와 껍질을 제거해 냉동해 둔 새우, 로컬마켓에서 사 온 당근 그리고 마늘, 새우젓을. 고명으로 텃밭에 아직 적응을 잘 못하는 쪽파를 더해 짜글이를 만든다.
호박 크기가 약간 큼직해서 사분에 일 쪽을 사용한다. 꼭지 쪽으로 세워 호박에 근육처럼 새겨진 줄이 가는 방향으로 칼을 세워 잘라준다. 그런 다음 꼭지와 밑동 단단한 부분을 자른다. 호박을 다시 길이로 썰고 나눠 큼직한 깍둑썰기하거나, 숭덩숭덩 칼이 가는 대로 썰어주어도 된다. 단 숭덩숭덩 썰 때는 크기를 어느 정도 맞추어야 덜 익어 단단하거나, 너무 익어 물러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양파도 같은 크기로 썰어주는 것이 좋지만, 너무 크다 싶으면 조금 작게 잘라 호박을 먼저 볶고 양파는 나중에 넣는 것으로 선택해 요리하면 된다. 당근은 길이로 반을 자르고 뉘어 통으로 반달 썰기를 한다. 이때에도 얇은 것보다 약간 큼직하게 썰어야 호박과 어울리는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쪽파도 숭덩숭덩 썰어 놓았다. 새우는 통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양념으로 마늘을 절구에 빻아 쓰기로 했다. 믹서에 마늘을 돌리면 너무 질척이고 푸드프로세서에 다지면 텁텁한 경향이 있으며 손으로 다지는 건 조금 귀찮다. 절구에 마늘 한 톨의 반만 한 생강을 같이 빻아 넣어주면 향긋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젠 재료가 준비됐으니 볶아야 할 차례다. 냄비가 아닌 웍을 사용하기로 하고 중간 불에 웍을 달군 후 약한 불로 줄여 들기름을 넣었다. 들기름이 따뜻해지면 찧어 놓은 마늘을 넣는다. 천천히 볶은 마늘의 아린 맛이 날아가면, 강한 불로 올리면서 호박을 넣어 재빨리 볶는다. 재빨리 볶지 않으면 들기름이 탈 수 있으므로, 처음 들기름을 넣을 때, 올리브유나 식물성 기름류를 들기름 양의 삼분에 일에서 사 분의 일 정도 넣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의 경우는 순수한 들기름 맛을 느끼고자, 강한 불에서 호박을 볶으며 나오는 수분과 약간의 기름 성분을 이용하고 웍질로 들기름이 타지 않게 조절한다.
여기에 새우젓을 통으로 넣어 호박에 젓갈의 간이 밸 정도로 볶다, 고춧가루로 색을 낸 뒤 조금 작게 썬 양파와 당근을 넣고 더 볶은 후 후추를 한 꼬집 넣는다. 잘 볶아진 호박에 끓여놓은 채수를 자작하게 붓고 짜글이가 바글바글거리며 익어갈 때쯤 새우를 넣어준다. 무르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상태의 호박이 되면 요리는 완성이다. 이때 썰어놓은 쪽파를 뿌려 뚜껑을 닫고 열을 세고 그릇에 담아낸다.
두부가 원하던 렌틸이 50%가 들어간 잡곡밥과 담아놓은 라임청으로 만든 소스에 버무린 해초무침 그리고 호박 짜글이로 상을 차린다.
내 단짝이었던 외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해드렸다면 맛있다, 맛없다는 군말 없이 국물까지 다 드셨을 텐데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