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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Aug 12. 2023

편식하는 개와 고양이. #4

글쓰기 연습

아침부터 부엌 바깥문에 앉아, 고양이와 나는 눈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눈씨름이라기보다 신경전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 이 녀석이 언제부턴가 사료 몇 알씩 남기기 시작했어요. 사료량을 줄여도 봤고, 맛난 생선도 같이 넣어줘도 소용이 없네요. 이젠 참다못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릴 작정입니다.

고양이를 한번 째려주고 집 안으로 들어오니 우리 강아지가 얼른 달려옵니다. 역시 고양이보다 개가 낫구나 싶은 순간이었어요. 식탁에 털썩 앉아 오이를 씹고 있는 나를 갸우뚱거리며 살피더니 다시 가버립니다.

꼬리를 치는 것이 나를 반기는 줄 알았는데 오이를 씻고 남은 쓰레기 치우며 바스락대던 소리가 제 간식이 나오는 줄 알았나 봅니다. 흔들어 대던 꼬리를 멈추더니 자기 집으로 들어가 버리네요.

     

우리 집엔 길에서 살다 들어온 10년 차 강아지 ‘길동이’와 3년 차 고양이 ‘노랭이’가 있습니다. 내가 귀촌하기 전부터 내 동생 두부가 키우던 길동이는 두부 결혼식 날 따라 들어와 그녀가 던진 돌멩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버티다 안방을 차지했습니다. 지금은 돌을 던지던 그녀가 우리 집 서열 3순위가 되었답니다. 말하자면 대장은 나고 길동이가 서열 2위, 마지막이 두부입니다.      

우리 길동이가 서열 2위가 된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순위는 확실해 보입니다.  이 강아지의 만행을 고발하자면, 대소변을 가리는 길동이가  뒷간이 급하면 신호를 보냅니다. 동생가슴 위에 두 발로 집고 서서 지그 시 밟아 누르기 시작합니다. 자다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분명 길동이가 발로 저리 가라고 그녀를 밀었거나, 두부의 베개를 뺏어 베고 이부자리 한가운데에 똬리를 틀고 자기 시작한 겁니다. 아무래도 두부는 그전에 던진 무수한 돌이 마음에 걸려, 져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쯤이야 둘만의 일이니 모른 척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 밥을 먹이는 게 가장 어렵네요. 네, 편식합니다. 길동이가 길에서 자라온 탓인지 사료만 먹다가도 갑자기 끼니를 끊기 시작합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천둥소리로, 나중엔 노란 물까지 토해도 밥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옆에서 보는 견주는 애타죠.

사실 이 증상은 한동안 강아지 몸 줄 하네스를 두르고 산책을 잘 다녔다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 제가 사는 동네 대부분이 들판이라 동네 강아지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자유를 만끽하라고, 길동이를 종종 풀어줬습니다.

그럴 땐 그리운 짬밥 뷔페를 실컷 먹고 오는지 온몸에 고춧가루 범벅을 하고 들어오는 날도 있고, 입에서 퇴비 냄새가 나는 날도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구토를 시작해 새벽에 큰 도시 응급실도 다녀온 적어도 있었어요. 뱃속에 뼈처럼 생긴 커다란 게 들어 있더라고요. 길동이는 식도 중간이 좁게 태어나, 큰 덩어리 음식은 잘 못 삼키는데, 억지로 삼켰던 모양입니다. 아마 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그동안 쌓인 짬밥의 역사로 길동이의 간은 망가져 갔고, 그리운 짬밥을 못 잊는 길동이는 우리와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길동이 나이 벌써 13살 정도로 추정이 됩니다. 다 커서 들어왔거든요. 그럼, 사람 나이로 79살 정도인데요. 그 정도 나이면 입맛이 변하겠습니까?

그래서 미역국도 끓여 줘 보고, 북엇국도 끓여주고, 달걀, 밤 호박 같은 채소도 삶아 곱게 으깨줬는데 연달아 2번 이상은 드시지 않습니다. 매 끼니를 달리해드려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해줘도 우리 식탁에 고기반찬이라도 올라올 것 같은 냄새가 나는 날이면 이 강아지 식음을 전폐합니다.

그동안은 두부가 몰래 치즈도 주고 고기도 줬는데 이제 겨우 떨어뜨린 길동이의 간 수치를 유지하려면 사료만 먹어야 합니다. 강아지 주인은 안타까워서 아직도 몰래 주려 하지만 녀석이 더 괴로울 것 같습니다. 길동이와 같이 오래 살아가려면 싫어하는 사료만 주고, 녀석의 행복을 위해선 된장국에 밥을 말아줘야 합니다. 어느 것이 좋을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죠.


그런데 고양이 ‘노랭이’는 참 이상하게도 생선이나 고기 같은 짬밥보다 사료를 더 좋아합니다. 원래 노랭이가 태어나서 손바닥만 했을 때, 우리 집 창고 좁은 틈으로 들어와 사료 얻어먹다, 엄마 고양이랑 형제자매 따라 사라졌었거든요. 그때는 다른 아이들보다 작아서 걱정했는데, 어느 날 다 커서 돌아왔습니다.

밥을 줘야 할까? 말까? 고민하며 밥을 주고 있었는데, 우리 옆집 마당에서 고양이 무리에게 맞고 있는 노랭이를 구출해 줬지요. 그 후 우리 집에서 쭉 살고 있습니다.

거지꼴로 돌아온 노랭이에게 고기도 주고, 생선, 달걀 같은 단백질 덩어리를 주는데, 이 녀석도 한번 먹으면 안 먹습니다. 뭐 이런 개·고양이가 있는지. 통통하고 부드럽게 삶은 멸치가 있는데도 사료를 달라고 합니다. 역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고양이와 강아지에게도 해당되나 봐요.

      

우리 집엔 편식에 달인이 한 명 더 있습니다. 바로 내 동생 두부입니다. 이분은 가공식품 마니아입니다. 대학 때 편의점에서 알바를 해서인지 편의점 음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편의점 음식이 다 나쁘다는 건 아니고, 다른 것도 같이 섭취해야 하는데, 원픽이 참치마요, 그다음이 라면, 떡볶이, 스파게티, 고기가 들어있는 도시락 순입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햄버거를 드셔야 합니다.

한동안 역류성식도염으로 제가 만든 자연 요리만 먹다가, 의사 선생님이 좋아졌다는 말 한마디에 기뻐해야 하는데, 갑자기 우울해지더니 밥을 안 먹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늦게 끝날 것 같았던 수업을 일찍 마치고 돌아오니, 집에 편의점 봉지가 나뒹굴더라고요. 깜짝 놀라 일어나는 그녀가 ‘왜 일찍 온 거야?’라고 물어보는데, 그동안 어떻게 참고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 주말에 햄버거도 먹을 겸, 도시로 나들이 갔었습니다.


 갓난아기도 모유만 먹던 아기는 분유를 거부하고 분유를 먹던 아기는 모유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아이도 분유를 안 먹어, 저와 아이  둘 다 고생했거든요. 그때는 모유와 분유를 같이 먹는 아기를 보면 부러워했었어요. 이렇게 입맛이라는 것이 까다롭네요.

아무리 몸에 좋으니 건강 요리를 먹으라고 온종일 부엌에서 종종걸음을 치며 조리를 해도 입에 안 맞으면 안 먹을 수 있죠. 옷 스타일은 유행에 따라 변할 수 있어도 입맛은 변하지 않습니다.

유행하는 음식을 선호한다는 사람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비슷한 양념들로 버무리고, 새로운 토핑이나 양념을 첨가해서 만든 것이 대부분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우리 식구들, 두부 그리고 길동이, 노랭이에게 몸에 좋은 것만 먹으라고 재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입맛은 바뀌기 쉽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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