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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Aug 13. 2023

단아한 엄마가 몰래 보던 UFC. #6

아빠, 엄마 골프채널 싫어해.

맛깔난 브런치 시간, 많은 글엔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겨 즐거움, 행복함, 따뜻함 또한 안타까운 마음도 전해주더군요.


우리들의 일상적인 글 속엔 가족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과 지내는 소소한 일상이 빠질 수가 없겠죠. 저도 같이 사는 동생 두부가 치매라는 단어도 틀린다고 창피해해도, 길동이가 밥을 안 먹어 속상해도, 노랭이가 가까이 오지 않아도 나의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이유일 겁니다.


요즘 들어 안타까운 글을 자주 읽게 되더군요. 고인이 된 초등학교 선생님 이야기부터 학교에서 일어나는 기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들로 웅성대더니, 새만금 잼버리 이야기로 뒤숭숭해졌죠. 나라 망신이다. 그러니 전라도엔 사업을 주면 안 된다. 도대체 어디에 돈을 쓴 거냐. 등등 많고 많은 이야기가 연일 지속되고 있습니다.


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지상정’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그렇고 앞으로 우리나라 관광에 큰 손님이 될 나이 어린 외국 아이들을 초대해, 미리 발길을 끊어준 건 이해가 안 가네요.

현재 진행되는 잼버리 이야기를 들어보니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 있다더군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았겠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막아야 하지요? 그럼 우리나라 배꼽이 배보다 더 커졌겠네요.     

사실 이런저런 어떤 이슈에도 관심이 없는 제가 잼버리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나, 도대체 어떻게 생긴 곳인지 들러보다, 깜짝 놀랄 지역을 발견했지요.

군산! 우리 어머니 고향은, 군산에서 여객선 타고, 선유도에서 내려, 다시 외할아버지 통통배를 타고 들어가는 조그만 섬입니다. 부모님 같았던 외조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잘 가지 않았지만 변해도 정말 많이 변했네요.

고군산 군도는 섬에 들어오는 낚시꾼들도 많고 해변을 찾는 관광객과 갯벌에서 벌어드리는 수익이 적지 않은 곳입니다. 둑을 막고도 건재한지 걱정됩니다. 언제 한번 이모님 댁에 다녀와야겠어요.     


각설하고, 사실 제 어머니 이야기를 하려다 새만금으로 빠졌네요.


제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아주 뛰어나십니다. 한번 맛본 음식은 척척 만들어 내는 분입니다.

섬 처녀였던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 고생이 많으셨죠. 지금은 접으셨지만, 아버지가 운수업을 아주 오랫동안 했더랬어요. 그런 저의 아버지 회사에 딸린 조그만 부엌에서 어머니는 직원들 밥을 해 먹였고요.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기사 삼촌들이 내 또래의 동생이나 언니·오빠를 자주 데리고 놀러 왔었습니다. 그 당시엔 인지상정이라는 말이 진짜로 존재했었는지, 저희 부모님이 장가를 안 간, 기사 삼촌들의 월급통장을 관리하셨어요.


그리고 삼촌들은 회사에서 생활하면서 어머니 음식을 먹고, 본집으로 싸가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자친구가 생기고 장가갈 때쯤이면, 아버지가 삼촌들에게 통장을 내주던걸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이제는 그 삼촌들이  할아버지가 되어 부인과 같이 명절이면 꼭 찾아옵니다.


김장 날이면 삼촌들의 모든 식구가 와서, 같이 산더미로 쌓인 배추를 다듬어 절이고, 양념을 만들어 김장한 김치를 회사 산밑 땅에 묻은 독에 넣어 보관했어요. 그땐 김치 냉장고가 없었거든요. 저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 이 고된 노동에 동참했었죠.


이런 이유인지,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어머니가 병원을 자주 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수술도 받았습니다. 제 나이 20대 초반에 어머니의 병세 악화로, 그 당시 죽거나 살아서 나온다는 서울대학병원에 수술 날짜를 받아 놓으셨었습니다.

저는 부랴부랴 가방 하나 들고 영국에서 귀국하게 되고, 들고 온 가방 다시 싸서 서울대학병원에 있는 어머니 간병을 했었어요. 그러곤 영영 영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죠. 어머니는 지금까지 사소한 시술 빼고 외과 4번, 내과 2번 정도 수술받으셨어요.


제가 요리사가 된 이유 중 하나가 우리 어머님 때문입니다.


입맛 까다로우신 어머니는 파출부 아주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드시지 못했어요. 아마 제가 수술 후 앓아누워있는 어머니를 위해 하얀 쌀죽을 끓였을 때가 저 초 3.4 때였나 봅니다. 엄마가 그때를 생각하시며 자주 말씀하셨죠. 입안이 까끌까끌해 임금님이 먹는 음식을 줘도 못 먹을 판에, 대글대글 굴러다니는 쌀을 씹으려니 너무 힘들었답니다.

쌀 한번 씻어 본 적 없는 내가 파출부 아주머니께 물어 죽을 끓여주는데, 앞에 앉아 걱정하며 바라보는 4남매를 눈을 보니 안 먹을 수 없었다네요.


몸이 안 좋은 제 어머니는 음식을 가려 드셔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제가 요리를 하게 되고, 사상의학 같은 건강 음식 공부를 하다, 요리까지 배우며 요리사가 됐죠.


아버지 사업 도우시느라 고생하던 현모양처, 우리 어머니는 오랜 세월 고생하시고도 부엌이 좋다고 하십니다. 그녀의 유일한 특기가 요리고, 취미가 요리고, 일상이 요리거든요. 저는 제 어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가 봐요. ‘네 엄마 뱃속에서 너같이 괄괄한 애가 나왔다는 게 신기해.’라고 말씀들 하십니다. 저희 어머니 엄청나게 단정하고 고우세요.


그런 우리 어머니의 색다른 취미를 알게 된 건 제 나이 30대 후반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시드니에 살고 있었거든요. 눈을 보고 싶어, 일하던 레스토랑 크리스마스와 새해 시즌을 마치고, 한국에 한 달의 긴 휴가를 왔었습니다. 어느 날, 반가운 친구와 점심만 간단히 하고, 집에서  나간 지 한 시간 만에 다시 들어갔더랬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어머니가 깜짝 놀라면서 TV 리모컨을 들고 달려 나오시는 거예요.

음.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본 것 같은데, 몰래 불륜남과 팔짱 끼고 모텔에 들어가려다, 길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마주친 표정이랄까?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얼른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가 TV를 보고 나오는 웃음을 참았습니다. 가방을 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무슨 일인데?’라는 표정으로 방에서 나와 소파에 앉았죠.


어머니가 계속 리모컨을 만지작대면서 안절부절못하시다, 리모컨을 내게 건네주시 “너 보고 싶은 거 봐.”라고 하시더니, 내 얼굴을 살피시더라고요.

“엄마, 요즘은 TV에서 레슬링 안 하고 UFC만 하나 봐?”하고 화면만 보고 있었어요.

“레슬링도 하지, 여기는 격투기만 해.”라며 채널 설명을 하시더라고요.

“UFC도 보니까 재밌네.”라고 제가 말을 툭 던지니, 우와~ 저희 어머니 UFC 광팬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아버지와 있을 땐 골프 채널이나 뉴스를 봐야 하니, 아무도 없는 시간에 즐기셨나 봅니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TV에서 보여주던 김일 아저씨 레슬링 프로를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셨던 것 같네요. 제가 그 꿀 같은 어머니 시간을 방해했었나 봐요.


“엄마 저거 보고 연습해서 아빠 말 안 들으면 한 대 때려.”라고 제가 때리는 제스처를 보이자 어머니도 따라 하는 거 있죠. 그동안 얼마나 한이 많았겠습니까! 어머니 맘 같아선 미운 놈 한방 먹이고 싶지 않을까요?


그 후 제가 시드니로 돌아갈 때까지 엄마의 UFC 사랑은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당연히 76세이신 어머니가 지금도 좋아하십니다. UFC이야기만 나오면 눈에 힘이 들어가십니다.


우리 엄마의 가슴은 이미 UFC 챔피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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