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왕이 될 수 있는 필수 조건. #7
글쓰기 연습
저는 가끔 지인들을 집에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걸 좋아합니다.
제가 차린 상 위엔 부족한 찬이 전부지만, 식당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간적 여유를 부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왁자지껄 떠들어도 옆 손님들 눈치를 안 보아도 되니, 편안한 식사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죠.
식사 중, 적지 않은 손님들이 저에게 식당을 하지 않는 이유에 관해서 물어보십니다. 요리사라는 직업을 오래 가지고 있었지만, 한 번도 식당을 오픈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글쎄요.’입니다. 어쩌면 ‘글쎄요.’라기보다 식당을 할 자신이 없다고 말을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제가 20년 넘는 날을 식음료 판매 업장에서 요리사로 일을 해봤음에도 ‘글쎄요.’라고 말을 하거나 ‘자신이 없다.’는 대답에, 질문을 했던 많은 분이 답답해하셨습니다. 그렇다며 손님에게 ‘왜 나에게 식당을 창업하기를 원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자, 혹자는 ‘당신이 해준 밥을 먹고 싶다.’나, ‘요즘은 갈만한 식당이 없다.’ 또는 ‘예전 단골 집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거기서 거기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제가 만약 식당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위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초청인 입장에서 제공할 음식을 선택할 때 지키는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손님의 음식 취향을 고려합니다. 둘째, 그 사람의 심리 상태나 건강 상태를 체크합니다. 셋째, 제철 재료를 최대한 이용합니다. 넷째, 약속 시간, 조식·중식·석식 메뉴에 따라 조리와 플레이팅을 달리합니다. 다섯째, 성별과 나이에 맞는 분위기를 결정합니다. 이상의 원칙을 지키면 별 탈 없이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더군요.
하지만 제가 요식업에 종사한다면 모든 손님께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음식을 차려드릴 수 있을지 저도 궁금합니다. 아마도 셋째는 지킬 수 있을 것 같네요. 넷째와 다섯째는 예약을 하신 손님이라면 가능하겠습니다.
제가 읽었던 요식업 서비스와 손님의 요구 사항을 질문한 기사 중 ‘식당 방문 시, 집에서 받지 못했던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답한 분들이 많다고 쓰여있더군요. 식당을 찾으시는 많은 분의 요구 사항, 퀄리티가 대단합니다. 그런데 저는 ‘제대로 된 서비스’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집에서 받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더 궁금합니다. 각자 집안의 풍습이나 식습관 등 많은 차이가 개인의 취향을 만들어 냅니다. ‘집에서 받지 못한 것’이 받고 싶은 분들을 위해 일반 식당 방문보다 취향 저격 출장 요리를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서비스는 어떻게 발전했을까요?
70년대 경부터 술을 파는 식당형에서 한정식으로 일반화되었다가, IMF로 고가였던 한정식은 쇠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저렴하고 대중화된 한정식이 다시 부흥하고, 사찰 음식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으며, 건강한 음식을 위해 천연 조미료가 유행한 적이 있었죠. 한 20년 전이었는데요. 그 당시 IMF를 이겨내고 다시 부흥하던 서민 저격 한정식은 마케팅을 위해 한식의 유래를 찾기 시작했고, 손님들에게 홍보성 슬로건으로 ‘손님이 왕이다.’라는 글귀를 선보였습니다. 이후 요식업 협회나 외식업 중앙회 등의 단체에서 개선된 음식 서비스나 친절 교육을 요식업장에 권고하기 시작했고 고객의 불만을 기탄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 '손님이 왕이라며?' 하는 질문과 함께 갑질의 역사가 한층 발전하였습니다.
사실 '손님이 왕이다.'라는 말은 세자르 리치가 왕들과 귀족들이 묵었던 리츠호텔을 확장과 동시에 일반인 손님을 받아들이며, 호텔에 내놓은 슬로건인 ‘모든 손님을 왕처럼 대접하라.’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리츠는 왕과 귀족들을 모셔봤기에 돈을 낸다면 모든 사람이 왕이 되는 경험을 주겠다고 했답니다. 그러나 리츠는 ‘손님이 왕이다.’라고 말은 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손님이 왕이다.’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손님이 왕이다.'는 뒤떨어진 서비스를 개선하고자 만들어진 슬로건이자, 손님에게 왕처럼 대우해 줄 테니 우리 식당에 오라는 상업적 마케팅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사람도 왕을 대우하듯 서비스하는 기술은 배우지 못했고, 왕이 되는 법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왕을 모셔본 적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지요.
한정식은 왕이 아닌 일반인에게 최고의 요리였습니다. 한정식의 유래는 궁에서 일하던 대령숙수가 왕과 같은 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양반이나 돈이 많았던 중인을 위해 판매하던 음식이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다른 설에 따르면 사대부에서 먹던 음식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또는 숙박업을 하던 중인이 일제 강점기에 쫓겨난 대령숙수를 고용해 만들어졌다고도 하고요. 우리나라 최고의 요리인 궁중 요리를 엇비슷하게 흉내를 낸 음식은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 되었든 왕이 먹었던 음식이 아닌 왕을 동경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왕이 없어진 지금은 부유층이 그 대상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왕이 먹던 음식을 먹고 싶은 것인가? 왕이 되고 싶은 것인가?
제가 볼 때는 음식보다는 왕이 되고 싶은 손님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K-아이돌을 따라 한국의 K-푸드 글로벌 진출을 부르짖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 2023년 1분기 요식업 매출액 지수 현황을 보면 '기타 외국식 음식점업'이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국적 음식의 한국 유입이 다소 많이 늦어져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왕이 되고 싶다면 그 나라의 고유 역사와 전통은 지키며 받아들여야 한다고 소심한 저의 생각을 얻어봅니다. 왕이나 왕족이 되기 위해선 갖춰야 하는 기품이 있습니다. 아랫사람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 배려, 관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예전이든, 지금이든 못된 통치자가 있긴 하지만, 국민을 위하는 자애로운 통치자를 원하는 건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당연할 겁니다.
그럼 지금 왕의 대우를 받고 싶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2008년에 비해 2023년 손님의 폭언은 62%, 성희롱성 언어와 행동은 14% 증가했다고 합니다. 어린 아르바이트생 중, 10에 8명이 손님에게 갑질을 받아봤다는 이야기 합니다. '손님이 왕이다.' 탄생 이후로 15년 동안 우리의 손님들이 대단한 발전을 이루었지요. 그리고 많은 사람이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린 왕 같은 대접은 못 받고 있죠.
여기에 제 이야기를 더하자면, 2000년 초반에 한정식에서 일할 때였는데요. 그때가 천연 조미료가 요리사들 사이에서 대성황이었습니다. 요리사 대부분이 우후죽순 격으로 천연 조미료를 연구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만큼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을 시기였습니다. 아무런 문제 없이 요리들이 나가고 있었습니다. 탕이 나가고 얼마 안 돼, 싱겁다는 컴플레인으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간을 약간 강하게 조리해 음식을 보냈습니다. 다시 돌아오더군요. 그리고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탕의 주인이었습니다. ‘이딴 식으로밖에 요리를 못해!’하는 말들이 오고 갔었습니다.
저희 주방 식구들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매니저가 무언가를 들고 들어오더군요.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나에게 내밀었습니다. 마트에서 파는 조미료였습니다. ‘한 스푼만 넣어 보세요.’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처음엔 대답을 못 했었습니다.
고민은 되었지만 하얀 가루를 반 스푼 넣어서 음식을 다시 내보내자,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컴플레인을 한 손님이 여긴 탕은 먹으러 올 곳이 못 된다며 소리소리 지르고 가셨습니다. 다른 손님들도 계시는데 말이죠. 저에겐 탕 빼고는 다 괜찮았다는 소리로 들려, 90점은 했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 손님의 입맛을 타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손님과 업장의 대화가 불가능할 때가 많은 경우 때문에 말씀드리는 걸 확실히 짚고 싶어서입니다. 매니저는 저희가 요리하는 방향을 충분히 이해를 시켜드렸고, 요구 사항을 여쭤봤음에도 너희가 알아서 해 달라는 행동뿐이었습니다. 다른 원하는 음식을 말씀하셨다면, 다른 음식 제공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아무리 기술 좋은 요리사라도 처음 본 손님들의 취향과 기호를 알아맞히는 기술은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여러 요리사님에겐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요식업에서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술 한잔하라고 권하시는 분들이 계신다고 들었고 보았습니다. 반말은 기본으로 들어갑니다. 만약 손님의 요구를 거절했을 때 벌어지는 해프닝은 여러분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나는 요식업이라는 업종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갈수록 손님이 무서울 뿐입니다.
아직 한국 요식업의 서비스 기준과 손님들의 태도에 의문점이 많아, 제 식당을 시작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고 말할 수 있죠. 그렇다고 제가 장사 경험이 없어서 두려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20대에 백화점에서 고가 특정 상표 전문 매장을 운영해 최고 매출도 올려 보고, 타이어 대리점도 해 보았지만, 유독 요식업종에 나타나는 손님들의 갑질이 쎄보이는 건 무엇일까요?
저는 손님을 무조건 왕으로 대우하기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제 음식을 왕에게 대접하는 듯 모시고 싶은 마음은 누구 못지않습니다.
리츠가 말했습니다. ‘돈을 낸다면 모든 사람에게 왕이 되는 경험을 주겠다.’ 왕이 되고 싶다면 그만한 가치를 지급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왕이 되는 경험엔 품위와 인격도 들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제가 식당을 열지 못하는 이유를 객관적이 아닌 주관적인 견해로 일부분 서술해 봤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서, '제가 식당을 운영하게 된다면, 더는 여러분에게 다섯 가지 원칙 지키며 음식을 서비스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몇 분이 긍정적인 답을 할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