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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Aug 13. 2023

오전 내내 칙피 수프를 만든 기분. #5

글쓰기 연습

눈을 떴을 땐, 분주하지 않은 아침이었다. 07시 20분.


강아지 산책을 마친 동생이 출근하다 다시 들어온다. 07시 30분. 어제 기분 좋은 지인들과의 저녁 식사와 맥주 한잔으로 피로했던 한 주를 풀고, 그녀의 차를 식당 주차장에 두고 집에 온 걸 깜빡했다. 서둘러 나가, 내 차에 시동을 걸고 동생을 태워 식당으로 향하다 보니 뭔가 휑한 느낌! 잠옷을 입고 나왔다. 겨자색 원피스라 아무도 못 알아볼 거라며 나에게 주문을 건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식당 주차장에 동생을 내려주고 집에 돌아온  나를 우리 집 강아지가 며칠 못 본 것처럼 반긴다. 07시 45분.

다시 자리에 누웠다. 깨어진 루틴에 멍하다.     


보통의 아침은


어설픈 소리에 눈을 뜨고 부스스 일어나 문 쪽을 바라본다,

아침이면 강아지가 꼬리를 헬리콥터처럼 돌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타다다닥, 타다다닥 심란한 네발을 재촉하며 나를 봤다가 출근 준비하는 동생을 돌아보며 산책하러 가자고 채근하기 시작해야 한다. 07시 08분.

내가 시간이 되면 동생의 아침도 차려주고, 시간이 없을 땐 각자 해결한다. 가끔은 동생이 빵을 구워주는 날도 있다.

커피포트에 물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고 작동 버튼을 눌러 물을 데운다. 옆 냉장고에서 보리와 결명자를 끓인 물을 꺼내 컵에 따르고 커피포트에 데워진 물도 부어 섞는다. 미지근한 물 한 잔 마시고, 홍삼 팩 하나를 개봉해 팩에든 액체를 입에 주르륵 흘려 넣어준다.

팥, 호박 티백을 컵과 텀블러에 각각 넣고, 끓여 놓은 물을 붓는다. 밖으로 나와 마당을 한 바퀴 돌며 허리와 팔을 풀어주다가 고개를 돌리면, 푸르른 논길 사이에서 뛰어오는 강아지가 보여야 한다. 07시 20분. 동생이 강아지 밥과 약을 먹이고 나면 팥, 호박 차가 들어있는 텀블러를 들고 출근을 한다. 07시 35분.     

아침에 일이 있으면 서둘러 나갔겠지만 일이 없는 주말엔 핸드폰을 들고 이부자리에 다시 눕는다. 내 옆에 누은 강아지가, 내 팔에 자기 몸뚱이를 바짝 대고 다시 자기 시작한다. 이젠, 나보다 나이가 많아진 노견이 됐다. 잠시 휴대폰의 스크롤, 동서남북을 비롯한 화면 전체를 톡톡 끊기와 돌리기로 손가락의 근육을 풀어주며 SNS 속 뱅글뱅글 돌아가는 세상 구경 삼매경에 빠진다. 08시 00분. 내가 일어나면 강아지가 자기 집으로 들어가 나를 졸린 눈으로 바라보다 다시 잠이 든다. 노트북을 열어 철 지난 드라마를 틀어 놓고, 잃어버리고 있던 팥, 호박 차를 마신다.


가 평소의 루틴이다.

     

나는 커피포트를 열어 물의 양을 확인하고 작동 버튼을 눌렀다. 오늘은 타 놓은 차를 까먹지 않고 따뜻하게 마시겠다는 각오로, 티포트에 중국 홍차를 넣었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어 철 지난 드라마를 틀어 놓고 티포트에 물을 넣어, 한번 우려낸 찻물을 버리고 다시 부어 놓는다. 푸우가 그려진 잔에 차를 한 컵 가득 따라 향을 맡았다. 이제야 정신이 좀 돌아오더니, 드라마 대사가 귀에 들어온다. 화면을 보지 않아도 장면이 그려질 만큼 많이 틀어 놓은 코믹사극에서 나오는 대사가 웃음을 자아낸다. 09시 12분.      


냉장고를 열고 당근, 마늘 그리고 불려놓은 병아리콩을 꺼내 놓는다. 잘 불린 병아리콩을 손잡이가 있는 체망에 담아 물을 빼주고, 콩이 담겨있던 볼에 체망을 올려 남은 물이 마저 빠질 수 있게 한다. 양파를 가져오기 위해 창고처럼 쓰는 옆집으로 향했. 온 김에 제습기 물도 버리고, 집안 환기도 시킬 겸 창문을 열어준다. 적당한 양파 하나를 들고, 다시 주방문을 열고 들어가다 싱크에 올려놓은 푸우컵을 발견했다.


아! 홍차 향이 난다. 치매증상일까? 그럴 리 없다. 쓸데없는 생각은 손으로 날려 버린다.

차를 마실까 말까 고민 중이다. 미지근한 차를 마시느니 시원한 아이스티를 준비하기로 했다. 얼음을 꺼내 커다란 텀블러에 넣고 차를 부었다. 모자란다. 커피포트에 전원 버튼을 누르고 다시 물을 데우기 시작한다. 09시 30분     


양파와 당근은 껍질을 벗기고, 껍질이 벗겨진 마늘의 꼭지를 따, 물로 깨끗이 씻어 준다. 물기를 닦고 양파와 당근을 아주아주 작은 사이즈로 깍둑썰기하고, 마늘은 양파와 당근 사이즈보다 작게 다지듯 썰어준다. 중간 크기의 냄비를 스토브 위에 올려놓고 불을 켜 중간 불로 데워준다. 올리브오일을 넣어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시원한 차를 마신다. 싱겁다. 어! 물을 데워 차를 더 만든다는 걸 잃어버렸다. 치매는 아닐 거다. 나이가 있는데... 하긴 요즘은 50대에도 치매가 온다던데, 조심해야겠다.


오일이 따뜻해지면 마늘이 타지 않게 약불로 줄인다. 마늘을 넣어 아린 맛이 날아갈 때까지 볶듯 저어준다. 마늘에서 단내가 나기 시작하면 양파를 넣는다. 양파가 투명해지고 마늘처럼 단내가 날 때까지 볶듯 저어준다. 다시 당근을 넣어준다. 이젠 냄비에 들어있는 재료가 무를 때까지 볶듯 저어준다.


손에 잡고 계속 젓고 있는 긴 나무스푼을 보니 다시 멍해진다. 어설프게 깨어버린 잠에서 정신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노트북에서 흘러나오는 웃긴 대사를 찾으려 귀를 쫑긋거리며 아이스 홍차를 마셔도 돌아가는 긴 나무스푼이 최면술사의 회중시계 같다. 그 와중에 재료가 잘 물러졌는지 나무 주걱으로 눌러본다.

이젠 병아리콩을 넣을 차례, 콩을 냄비에 넣어 다시 볶기 반복한다. 그냥 넣어서 끓여도 되지만 당근, 양파 그리고 마늘에서 나온 채소즙이 콩과 함께 어우러지게 도와주는 기름이 분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는 중이다. 10시 00분.


음. 냄비에 들어있는 재료들이 잘 어우러진 느낌이다. 중불로 올려 냄비 온도를 올리고, 준비해 둔 채수를 조금 넣어 섞어준다. 따뜻해지면 다시 부어주기를 반복해서 채수의 양이 재료에 두 배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채수도 따뜻해졌다. 냄비의 뚜껑을 덮고 가만히 들여다보며 '향신료도 조금 넣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가끔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을 싫어하는 동생을 위해 생각을 접었다. 10시 20분.


식탁에 놓인 그린그린한 사과를 꺼내 물에 씻어, 한입 베어 물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2주 뒤에 있을 아이들 첫 수업 정리와 오늘의 글감 고민이 정리되기도 전에, 내 뇌의 셀프 작동 버튼이 가동을 시작했다. 두 개의 일로 머리가 복잡해지기 전에 오늘의 글감으로 아침부터 일어난 일을 쓰기로 결정했다. 드라마를 내보내는 스크린 오른쪽 위 끝에 엑스를 눌렀다. 그리고 한글 2020을 눌러 깨끗한 네모난 화면을 바라보며 고뇌를 시작했다.      


시작의 말.

아! 콩. 콩이 잘 익을 때까지 중간중간 저어줘야 한다. 다시 식탁에 앉았다. 화장실! 다시 돌아와 식탁에 앉았다. 손가락을 자판에 올려, 신중하게 한자씩 적어 나가려 노력했다. 중간중간 나의 타이핑하는 내 손가락이 더뎌지지만, 나의 형편없음을 인정하고 더 노력하고 있다. 10시 50분.


저장 버튼을 누르고 콩이 익어가는 냄비 앞으로 갔다. 얼마나 잘 익었는지 살짝 눌러도 포실포실하고, 둥둥 뜨는 기름이 없다. 파워 믹서기, 컵에 병아리콩을 넣어 아주 아주 곱게 갈아 고운 채에 걸러주었다. 껍질까지 갈았는데도 부드럽다.


다시 냄비에 넣어 약불에 올려놓고, 눋지 않게 계속 젓는다. 남은 채수를 조금씩 넣어가며 농도를 맞춘다. 조금만 더 저어주면 끝난다. 후추와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다. 나는 다시, 나무 주걱같이 생긴 회중시계를 보고 있는 것인가? 신나는 음악이라도 틀어 놓을 걸 그랬다. 조금만 더 저으면 된다. 난 무념무상의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제 끝이 났다. 11시 20분.


오늘 저녁 땡볕에서 일하고 돌아온 동생 저녁으로 시원한 병아리콩 수프에 우무국수를 넣어줄 생각이다.

곁들이로 구운 스테이크를 갈아 넣은 모닝글로리 볶음과 카프레제가 어떨까?  

   

오후엔 바질하고 모닝글로리 따러 텃밭에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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