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서러울 때

백수 엄마의 이력서

by 루니

"엄마, 목말라! 더워!"


6월 더위 속 투정 가득한 아이의 말에 "뭐 마실래? 뭐 사줄까?"라며 대답하고 지갑을 열고 있지만, 내 마음 한편에서는 계산기가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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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가족과 함께한 놀이동산은 웃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음료수, 아이스크림, 닭꼬치를 마음껏 사주며 예전처럼 신나게 지갑을 열었지요.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갚아야 할 카드값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안 돼"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사줄 때마다 밀려오는 뿌듯한 감정 때문이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내가 여전히 '해줄 수 있는 엄마'라는 느낌을 갖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현실은 남편의 잔소리와 함께 냉정하게 찾아왔습니다.

"왜 이리 돈을 많이 썼어? 너 돈 없잖아!"

"그러게 회사 귀한 줄 알아야지."

모아둔 돈이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잔소리만 늘어놓았고, 나는 결국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나는 회사 안 귀하니까! 너나 귀하게 생각하고 집에 들어오지 말고 일만 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고 나서, 지금 우리는 냉전 중입니다.

말싸움 후의 정적 속에서 나는 더욱 초라해진 내 처지를 직시해야 했습니다.



남편이 나에게 별도의 생활비를 주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나의 자발적 퇴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의 무언의 압박이자, 예전처럼 쓰다가 돈이 떨어지면 결국 다시 취업하리라는 계산이 깔려 있는 거죠.

그의 방식대로라면 나는 곧 항복하고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면접장에 앉을 때마다 가슴이 꽉 막혀옵니다. 기술적인 질문들은 모두 답할 수 있지만, 인성 면접에서는 항상 가슴이 답답해져 제대로 답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늘 최종 면접에서 탈락한 것 같습니다.


"지원 동기는 무엇인가요?"

"팀원과 경영진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리더십과 실무 중 어느 영역을 선호하시나요?"

답변이 정해진 질문들.

미리 준비한 모범답안을 읊조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또다시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삶이 떠올랐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경험도 없이,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어 나 자신을 갉아먹는 삶.


생각을 전환할 수 있다고 믿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의 풍족한 삶, 누구나 부러워할 복지, 대기업이라는 타이틀.

모든 것에 감사하며 더 열심히 내 가치를 증명하면 언젠가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가 본 하늘보다 더 넓은 세상에는 남들과 다르게 살면서도 더 행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아버린 이후,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충고가 더욱 무겁게 느껴집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없어!"

"회사가 제일 안정적이야. 너 말대로 하면 아무도 회사 안 다니지."

"원래 참고 다니는 거야. 나도 다니기 싫은데 계속 다니잖아."


이런 말들 속에 숨어 포기한 꿈들이, 40이라는 나이에 들어서니 오히려 더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언제까지 남을 위해 내 시간을 써야 할까? 온전히 내 시간을 나를 위해 쓴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는 틀 안에서 속여온 내 마음은 과연 괜찮은 걸까?


돈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살 수 없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잃는다는 뜻이었다.

아이들에게 "그래"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와, 나 자신에게도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잃는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럽습니다. 이제야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되었는데, 돈 때문에 취업 사이트를 뒤적이는 현실이 너무 서럽습니다.


오늘도 돈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서럽고, 돈 때문에 작아지는 내 마음이 서럽습니다.



지성인이라면 적을 사랑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친구를 미워할 수도 있어야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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