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 교육상담 대학원생의 일기
오전 7시, 대체로 알람 없이도 떠지는 눈꺼풀을 몇 번 비비고 핸드폰을 확인한다.
그러고는 주방으로 걸음을 옮겨 물 한 잔과 바나나, 식사빵이나 디저트, 단백질 셰이크 등으로 아침을 챙긴다.
7시 반에 샤워하고 8시 반까지는 준비를 마친 후 집을 나서야 9시까지 무사히 출근할 수 있다.
아침 샤워 파가 아니라면 좋으련만, 쓸데없이 얇은 머리카락은 고작 몇 시간 베개에 눌린다고 납작하게 이리저리 휘어 선택지가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일하는 공대 건물이 버스 정류장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쪽문에서 건물에 도착하기까지 걷는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밤새 스프링클러가 뿌린 물에 젖어 촉촉한 잔디나 햇빛이 스며 투명해진 나뭇잎, 8시 수업을 마치고 나와 재잘재잘 떠드는 학생들을 눈에 담는다. 그러다 보면 짧은 순간에도 산 정상에 올라 맑은 공기로 폐를 빵빵하게 채울 때처럼 기합이 들어간다.
건물에 도착해 2층까지 계단을 올라 오피스 문을 열고 불을 켜고 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현재 있는 오피스에서 나는 Graduate Assistant (GA), 한국으로 치면 조교 포지션을 맡고 있다.
다른 직원분들과 학생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고, 이메일 인박스를 확인하고 그날의 해야 할 일을 정리한 후에 주로 11시쯤 잡히는 미팅을 하나 마치고 나면 점심시간이다. 12시부터 1시까지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먹고, 커피 한 잔 사들고 산책하거나 책을 읽고 나면 그 후로는 업무 시간도 금방 흐른다. 어차피 2시 이후로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오후의 나는 혼자서 이메일을 작성하거나 엑셀 함수를 수정하거나,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과제를 처리하기도 한다.
"Are you leaving soon? We can talk about it tomorrow then."
"곧 퇴근해? 그럼 내일 마저 얘기하지 뭐."
과제라 함은 말 그대로 수업에서 교수님이 내주시는 과제다.
GA가 내포하는 또 다른 의미는 내가 Graduate Student, 즉 대학원생이라는 것이다.
우리 프로그램은 대학교 취업이나 관련 상담분야 종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맞추어져 있고, 논문보다 실습을 중요한 졸업 요건으로 포함하기 때문에 가장 이른 수업을 4시에 진행한다. 다들 그전까지 나처럼 GA 등의 업무를 소화하고 오도록 하는 거다.
거기다 각 수업이 일주일에 한 번씩밖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세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수업이 두 개 있는 날은 결국 출근시간인 오전 9시부터 마지막 수업이 끝나는 오후 10시까지 학교에 발이 묶인다고 보면 된다.
직장인의 피로와 학생의 한계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석사생의 삶이랄까?
그래도 미국 고등교육의 역사부터 집단상담, 교육상담과 같은 상담 이론, 성별이나 인종뿐만 아니라 나이, 장애 유무 등을 포함한 다양성 등을 주제로 하는 수업을 듣다 보면 나 자신과 타인, 나아가 사회에 대해 깊이 고찰해 보게 된다. 물론 그러한 고찰이 곧바로 어떠한 깨달음으로 이어지지 않아 그저 피곤하기만 한 날이면 언제든 눈앞에 닥친 페이퍼 따위에 대해 함께 가볍게 툴툴거릴 친구들이 있어 더 잘 버틸 수 있는 것이기는 하다.
사실, 이렇게 나름 안정적인 루틴이 끝을 앞두고 있다.
일주일에 최소 4일을 반복되는 출퇴근과 수업에 쓰느라 바삐 지냈더니 어느새 막학기에 접어든 것이다.
취직도 대학교 교직원으로 해서 학교에 오래 머무르고 싶고, 실제로 아마 그럴 것 같기는 하지만 이제껏 휴학 한 번 하지 않고 쭉 학생 신분으로 지낸 나에게 사회인으로의 변신이 정확히 어떤 모습을 할지, 어떻게 느껴질지 알 수 없어서 반은 두렵고 반은 설레는 심정이다.
다만 학생으로 사는 동안에도 알 수 있던 것은 이런 변화의 시기에 지난 추억과 배운 것을 되새기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글쓰기 만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곳은 당분간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일기장인 동시에 혹시라도 미국 대학교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는 데에 관심이 있으실지 모를 분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기록을 남기는 공간이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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