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저 랩미팅 끼워주세요"
제목을 보고 의아한 마음이 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연구 조교? 학부생이?'
그럴만하다. 학부생은 애초에 대학원생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연구 경험과 지식 등을 이유로 랩에 도움 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학부생이 랩에 발조차 들이지 못한다면 대학원에는 누가 가겠는가, 경력직 신입 뽑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운 학문이라 하더라도 관심이 생겼다면 교수님께 랩미팅 참관이라도 할 수 있냐고 컨택드려 볼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나로 얘기하자면, 나는 중학교 때부터 사람들과 속얘기를 나누는 것이 참 좋았다. 특히 지나친 공부량, 부모님의 등쌀, 대학 입시에 대한 이른 스트레스 등을 이유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위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남이 힘들어하는 얘기 듣다 보면 덩달아 기분이 안 좋아지지 않냐고들 묻지만, 나는 세 시간을 눈물 닦아주며 떠드는 데에 쏟고도 마지막에 상대의 "진짜 네가 말한 대로인 것 같아", "그래도 너랑 얘기하니까 속이 풀린다", "의지가 된다" 같은 말들을 듣고 오히려 힘을 얻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거기다가 직접 입시의 고충을 겪고 나니 자연스레 심리, 교육 쪽 공부를 하면서 더 많은 학생 신분의 친구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 마음은 여러 전공을 거쳐 임상 심리 (Clinical Psychology) 전공을 택하는 결정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UCSD에서 임상 심리는 이과 전공으로 분류되기에 졸업하기 위해서는 연구 관련 수업을 듣거나 랩에서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2크레딧을 충족하고 연구 페이퍼까지 작성해야 했고, 나는 후자를 택하기 위해 떨리는 마음으로 첫 컨택 이메일을 돌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침 코로나가 터져 한국에 들어와 있던 때에 임상 심리로 마음을 굳힌 터라 한국에서 첫 RA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보통 자대 학생이 아니면 잘 받아주지 않는 데다 당시에 거의 모든 랩이 코로나로 연구 활동과 재정 지원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컸지만, 무작정 국내 심리학 교수님들 몇 분의 웹사이트에 방문해 얻은 랩 연락처에 이메일을 보내 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나는 국내 대학교의 한 랩에서 여름 방학 기간 동안 우울증, 불안 증세를 보이는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게임 앱 디자인, 그리고 번역 업무를 도울 수 있었다.
그 후 미국에 4학년으로 돌아와서는 비슷한 형식이지만 조금 더 발전한 이메일을 보내고 바로 새로운 랩에서 실험 보조(실험 참가자 안내, 실험 진행, 수집 결과 코딩)를 담당한 끝에 한 학기 만에 페이퍼를 제출하고 졸업할 수 있었다.
미국, 특히 UC 계열의 큰 학교들에서는 학부생들에게 전공 교수, 지도 교수가 따로 붙지 않기 때문에 처음 이메일을 보낼 때부터 RA로 랩에 들어간 후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교수님께 계속해서 자기소개를 하고 관심사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소위 말하는 대가 랩에 들어간다면 교수님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교수님이 아니라면 연구 책임자인 PI (Principal Investigator)나 하다못해 대학원생 아무에게라도 "눈에 띄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차피 학부생 추천서는 교수님이 직접 안 쓰실 확률 높음
나는 주별로 진행된 랩미팅 때마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질문을 하고,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했다. 해당 랩의 연구 주제 자체가 하나 이상의 문화권에 익숙한 사람들이 겪는 차별과 혼란이라는 감정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학생으로서 얘기할 거리가 더 많았던 것도 있다. 보다 끼기 어려운, 기술적인 측면이 있는 연구 주제에 연구 과제로 다들 바빠 보이는 랩에 있다면, 그냥 관련 논문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고 그나마 조금 한가한 분위기일 때에 말이라도 꺼내보기를 추천한다. 그러면 적어도 열심히 하는 애, 해당 분야에 정말로 관심 있는 애라는 인식을 심어둘 수 있다. 나도 결국 그렇게 한 덕에 대학원 지원 의사를 결정하고 지원 과정에 필요한 추천서를 얻는 데에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미국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도 많다. 교수님이 MBTI 대문자 E 같은 분이시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할로윈 때 교수님 댁에 놀러 가서 고양이 귀 머리띠를 쓰고 교수님의 Freudian Slip 의상에 대한 찬사를 보내드렸고, 내 친구 중 한 명은 땡스기빙 때 마찬가지로 교수님 댁에 저녁 먹으러 가서 교수님 아드님의 바이올린 실력을 극찬했다.
아무튼 다들… 모쪼록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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