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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Feb 26. 2024

미국 대학생이 스펙 쌓는 법 - ② 심리상담센터 인턴

심리학과는 전공을 어디까지 살릴 수 있을까

진로 설정은 소거법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

앞선 포스팅에서는 내가 진작부터 심리, 교육학과 관련한 진로를 확실하게 설정하고 걸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는 것과 그것을 직업에까지 연관 짓기로 마음먹는 데에는 큰 차이가 있다. 연관을 짓는다 해도 가장 먼저 떠오를법한 옵션은 마케팅이나 HR 관련 직무로 취업하는 거지, 나도 솔직히 대학원 1학년 때까지 내가 회사가 아닌 학교에서 일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힐 줄 몰랐다.

특히 학부 때는 코로나 기간에 오래 한국에 머무르기도 했고, 부모님은 물론이고 서로 진로 고민 상담을 할 만큼 친한 친구, 선배들이 다 한국인이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대기업 취직'을 최고로 치는 근시안적인 사고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사람들, 그중에서도 학생들과 진심 섞인 이야기를 나누며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마음 한편에 있었지만 그건 제대로 된 계획보다 로망에 가까웠을 뿐, 아예 심리상담사를 꿈꿔버리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과 의사가 아닌 상담사의 입지가 어떻게 되는지, 주로 어떤 기관에 취직해서 돈을 얼마나 받는지 제대로 된 정보를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찾더라도 상당히 부정적인 인사이트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인터넷에는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상담학회나 한국 상담심리학회에서 공신력 있는 민간 자격증을 따고도 여러 상담센터를 전전하며 월 200 안되게 버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희한하게 회사 생활과 관련해서든, 심리상담과 관련해서든 남이 적은 정보를 더 많이 접하면 접할수록 생각이 흐려졌다. 회사는 영혼 없는 전쟁터고 상담센터는 배곯는 지름길 같았다. 그래서 그냥 생각을 관두고 둘 다 직접 부딪혀보기로 했다. 결국, A, B, C, D 중에 명확한 정답인 C를 고르기보다 A, B, C, D를 다 해 보고 종합 점수를 매겨봐야 그중 제일 높은 C를 고를 수 있겠더라.


나의 첫 '직장', S 심리상담센터

S 심리상담센터에 대해 알게 된 경로는 인터넷 서치를 통해서였다. 한국상담학회의 채용정보 게시판에 접속해서 '인턴직'만 필터 하면 주르륵 뜨는 공고 중에 S 심리상담센터도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S 심리상담센터를 알게 되자마자 꽂힌 가장 큰 이유는 나처럼 미국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졸업한 다음 미국, 한국, 또는 두 개의 나라 전부에서 자격증을 따고 활동하시는 상담사분들이 많이 계셨다는 것이다. 영어로도 상담이 가능하니 자연스레 외국인, 미군, 국제학교 교사나 학생을 주로 상대하시는 듯해 보였다. 아무래도 외국에선 심리상담이 요구하는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더 높고 미국의 경우 건강보험 적용도 많이들 해 줘서 그런 건지, 센터 웹사이트에 공지된 세션당 비용도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내가 어렴풋이 상상한 미래의 이상적인 버전을 살고 계신 분들처럼 보여서 너무 신기하고 멋졌다. 심지어 지도에서 찾아보니 우리 집에서 도보 15분 정도 되는 거리에 서울 지점이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이 '옛다, 가져가라' 하고 짜맞춰진 기회 같았다.

바로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던 인턴 지원 관련 설문 폼을 작성하고 센터장님께도 따로 이메일을 보내 면접을 본 결과는 합격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한 첫날, 나는 조금 예상치 못하게도 바로 프런트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기존 프런트 행정 직원분들께서 모두 자리를 비우셨던 터라 다른 직원분께 대강의 인수인계를 받고 바로 전화를 받고, 내담자분들을 안내하고 결제를 도와드렸다. 맨 처음에 카드 결제를 어떻게 할지 몰라 허둥지둥 댄 것, 영수증 빌지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고장 낸 걸로 착각해서 멘붕 왔던 순간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무사히 업무를 마쳤던 것 같다. 그다음부터 새로운 프런트 직원분을 뽑기 전까지 열심히 자리를 메우며 마감까지 혼자 해치우던 나는 어느새 '아, 이건 무급으로 일해도 되는 정도가 아닌데?' 마음먹고 인사 관련 직원분과 센터장님께 이메일로 유급 인턴 전환 요청을 드릴 정도로 씩씩하게 자랐다.

돈을 받기 시작하고부터는 책잡히지 않도록 더 열심히 일했다. 프런트 직원분이 들어오시고 본격적으로 다른 행정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자 처음으로 상담 관련 문의를 하시는 내담자분들과 더욱 많은 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에 빠져드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간단한 상담 신청 이유를 적는란에 토해내듯이 힘든 이야기를 구구절절 적으신 분들을 보면 마음이 아팠고, 그만큼 잘 맞는 상담사분들께 바로 연결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사히 첫 상담 예약을 잡아드리기 전에 이메일이나 유선상으로 이어지던 연락이 끊어지면 걱정이 됐다. 몰입해서 일한 만큼 인턴 기간이 끝날 때쯤 새롭게 얻은 스킬과 인사이트도 많은, 실로 유의미한 경험이었다.

퇴사날 받은 꽃다발
S 심리상담센터에서 일하고 얻은 것들:

1. 커뮤니케이션 스킬 (★★★★☆)
비록 직접 상담을 진행한 것은 아니지만 행정 처리에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친절한 말투로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다. 비용 관련해서는 경쟁 센터나 보험사가 내담자인 척 문의하는 경우를 대비해 '일반적으로는 ~ 하지만 원하시는 상담 서비스와 상담사에 따라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다'라는 식으로 더욱 방어적인 답변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2. 오피스 툴 활용 스킬 (★★★☆☆)
답장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담자분들 입장에서 용기가 사그라들기 쉽다는 생각에서 최대한 빨리 답장을 드리기 위해 모든 문의 연락을 기록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노란색, 빨간색 등으로 컬러 코딩이 되는 엑셀 함수를 배웠다. 상담사분들께도 최대한 고르게 매칭해 드리기 위해 각각이 맡으신 내담자 수와 관련 데이터를 따로 정리한 문서를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했다.

3. 사람들 (★★★★★)
워낙 특수한 환경이다 보니 센터장님, 상담사분들뿐만 아니라 행정 직원분들, 인턴분들까지 전부 외국에서 심리학 관련 자격증을 보유하거나 전공으로 공부하신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진로 관련해서 자잘한 질문이 생기거나 전반적인 인간 심리나 행동이 궁금할 때 언제든 같이 얘기할 사람이 있었다. 그때 만난 사람 중 세 명이 현재 함께 엘에이에서 대학원 공부나 연구를 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한 명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룸메이트가 되어 주었으니 제일 큰 수확은 무조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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