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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Apr 15. 2024

미국 대학교에 다니는 모두가 처음으로 공부하는 사람

그건 바로 멀리 집을 떠나온 나 자신

사회학이 뭔지 잘 몰랐던 사회학도

지금껏 올린 포스트의 대부분이 임상심리학으로 최종 전과를 마치고 진로를 찾는 데에 집중한 얘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사실 대학에서 내 첫 전공은 Sociology(사회학)였다. 늘 심리학, 교육학을 공부하고 싶던 마음이랑 별개로 입시 시즌에 접어들어 활동란에 적어낼 만한 것들은 주로 역사 과목 우수 학생으로 뽑혔다든지, National History Day 대회에 페이퍼를 제출했다든지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좀 더 포괄적인 성격의 문과 전공으로 지원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도 입시 실패 요인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듯하다; 근거가 부족해도 정말 원하는 전공을 골라 자기소개서에서 열정을 어필해 볼걸 그랬다)

하여튼 그래서 부끄럽게도 첫 학기가 시작되기까지 누군가 "Sociology는 뭐 하는 전공인데?" 물으면 이렇다 할 답을 내놓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특히 입국심사를 거칠 때에 같은 질문을 받고 "그냥, 뭐, 사회에 관해 공부하는 학문이에요~" 답하자, 공항 직원분께서 전혀 도움이 안 됐다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시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뭐 어쩌겠는가. 지금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사회학은 말 그대로 사회에 관해 공부하는 학문이다. 그렇지만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안에 포함되는 많은 조직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조직, 조직과 조직이 각각 어떻게 유기적으로 교류하는지 배우는 과목이다.

대학교 1학년, 첫 학기 첫 수업으로 들은 Introduction to Sociology라는 수업에서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존칭을 쓰며 허리를 숙여 인사하거나, 동의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고 동의하지 않을 때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것. 이런 사소한 행위에 담긴 의미부터 동성 결혼의 제도적 허용이나 현대미술의 가치, 정신과적 상담의 중요성 같은 다양한 사회 토픽에 대해 내가 가지는 의견 중 어느 것도 사실 완벽하게 자연적이거나 개인적일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고. 이러한 깨달음은 곧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의 정당성을 피력하기 전에 나 자신으로 하여금 그러한 말이나 행동이 자연스럽다, 또는 옳다고 느끼게끔 한 사회적 배경과 경험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한국인'으로서의 나 v. '나'로서의 나

자세한 예를 들어보겠다. 나는 고등교육, 나아가 정규교육의 중요성을 신봉한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나의 대표적인 정체성은 다음과 같다:

만 24세 / 한국인 / 여성 / 비장애인 / 이성애자

한국이라는 단일민족국가에서 한국인으로, 비장애인으로, 이성애자로 자라면서 나는 사실 정규교육이 가르치는 이념이나 사상에 크게 반대할 일이 없었다. 더군다나 부모님의 높은 교육열을 이유로 내가 이제껏 다닌 학교들은 감사하게도 전부  괜찮은 시설에 학풍을 갖춘 기관들이었다. 따라서 나에게 있어 교육은 대부분의 날을 깨끗한 교실에서 나와 비슷하게 생긴 친구들과 어울리며 큰 생각 없이 공부하고, 이따금 체육대회나 수련회 같은 기회를 통해 어린 날의 양식과 추억을 잔뜩 쌓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내가 한 가지라도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떨까?

만 24세 - 건강, 재정상의 이유 등으로 또래보다 늦은 나이에 학교에 입학했다면?

한국인 -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자랐거나 외국에서 한국인으로 자라 제2외국어로 교육받았다면?

여성 - 여학생들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 문화권에서 자랐다면?

비장애인 -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전용 자동문 출입구, 전용 화장실 같은 편의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학교에 다녀야 했다면?

이성애자 - 다른 성적 정체성을 가진 입장에서 '결혼은 두 성인 남녀가 정식으로 가족을 이루는 행위'라고 적은 사회 교과서를 군말 없이 읽고 삼켜야 했다면?

어느 것에도 쉽게 답을 내놓을 수 없지만 적어도 사회학이라는 학문은 나에게 처음으로 이런 가정을 세워보게 하고, 그 결과 나와는 판이한 사고나 언행을 보이는 타인에게도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해 보려는 마음을 길러주었다. 동시에 그런데도 양보하기 힘든 것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은 잘게 구분한 나의 정체성 하나하나에 따로 영향받거나 부여되는 게 아니라 그저 그러한 정체성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이루는 '나'라는 사람의 일부일 뿐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도와주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누군가 고등교육에 대한 나의 선호도에 대한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나의 정체성,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자란 배경에 중점을 둔 답을 내놓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연애관의 특정 부분에 대해 물으며 그것도 한국에서 자라서 그런 거냐고 묻는다면, 아예 영향이 없었다곤 할 수 없어도 나라는 개인의 경험, 성격, 애착유형 등에 더 집중해서 답을 하려 할 것이다.


'진경'과 'Jin'의 행방불명

어느 애니메이션 영화에서처럼 이름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미국이라는 커다란 나라에서
나 자신의 눈에도, 다른 사람의 눈에도
그저 한 명의 젊은 여성 한국인으로 뭉뚱그려지지 않으려면
스스로 '나'에게 고유한 것들이 무엇인지
자주 들여다보고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나 또한 어느 사람을 그들의 가장 대표적인 정체성으로 뭉뚱그려 버리지 않도록 명심해야 한다.

특히 학생들을 대할 때 늘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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