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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Jun 10. 2024

미국에서 졸업, 또 졸업

2022년과 2024년의 나

온기 부메랑

코로나가 심했던 기간 동안 한국에서 잘 먹고, 잘 놀고, 잘 일한 나날을 뒤로하고 미국에 돌아가 졸업할 채비를 할 때였다. 당시 나는 '온기우편함'이라는 비영리단체에서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름 모르시는 분들이 적어주신 고민편지에 답장을 하는 내용이었다.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이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처럼 말이다.

다른 봉사자 분들과 삼삼오오 모여 열심히 답장을 적고 헤어지기 전에는 각자 고른 고민편지와 답장 내용을 간략히 나누었는데, 자리를 함께하신 분들의 따뜻한 답장을 듣는 것도 너무 좋고 그분들께서 반대로 나를 칭찬을 해 주시는 경우도 제법 돼서 여러모로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다만 절대 익명을 원칙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정작 답장을 받으신 분께서는 조금이라도 위로나 도움이 됐다고 느끼셨을지 잘 알 수 없어 늘 조금의 궁금증이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온기우편함 블로그를 확인하던 중 다음 댓글을 확인하게 된다.

보자마자 심장이 쿵 하고 빠르게 뛰었다.

내가 적은 답장 편지를 받으신 분이 분명했다. 취업 준비로 힘들어하시는 내용에 나도 어디선가 들은 말이 어렴풋이 기억나, 당장 서류에서, 면접에서 떨어진다 한들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보다 그저 '아, 이번에는 나사를 뽑는 자리에 내가 못으로 갔나 보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멋진 공구야' 하고 생각하는 편이 좋겠다고 쓴 편지였다. 그러고는 편지 마지막 장 하단에 본인에게 맞는 꽃길을 찾아 걸으시면 하는 바람에 꽃 테이프를 붙여 드렸는데, 덕분에 위로가 되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콕 집어 말씀해 주신 게 너무 감사했다. 이제는 조급함을 덜고 여름방학을 즐기고 계신다는 좋은 소식도 들려주셔서 마음 한구석이 안도감으로 따뜻하게 젖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획대로 미국에 돌아간 나도 이전 화에 적었듯이 졸업 후 대학원이라는 나만의 길을 설정하고 걷게 되었다.


학교라는 안전망

대학원 입시 기간 동안에도 스트레스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교육/심리 계열 학과의 석사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학부나 박사 프로그램에 비해 합격률이 높은 편이어서 학부 입시 때만큼 압박이 심하지는 않았다. 나는 원하는 프로그램과 석사를 하려는 목적이 꽤 분명했기 때문에 나에게 어울리는 프로그램만 추리고 나니 애초에 지원할 생각이 드는 학교도 많지 않았다. USC에 최종 진학하기로 결정한 후에는 대학 가기 전과 비슷한 마음으로, 그저 나에게 허락된 자유시간을 하고 싶은 것에 할애했다. 잠깐이지만 좋아하던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해 보고, 그러다 뒤늦게 합격한 인턴십도 해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강을 그렇게 들락날락거렸더랬다.

미국에 돌아오고서도 USC가 위치한 엘에이는 UCSD가 위치한 샌디에이고와 그리 멀지 않아서, 너무 다행스럽게도 학부 친구들과 간간이 만나며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첫 GA 출근을 시작하고서부터는 모든 것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9시에 출근해서 3시에 퇴근하기까지, 하루에 다섯 시간은 긴 것 같아도 그렇게 월요일부터 금요일을 꾸준하게 살다 보면 한 달, 6개월, 일 년은 금방 금방 흘렀다. 비록 실무 중심 프로그램인 만큼 일에 더 신경이 많이 쓰이기는 했지만 학생의 본분도 지켜보겠다고 세미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국제 학생들을 위한 교육 공동체 연구를 시작하고, 감사한 기회가 찾아와 처음으로 학회에서 발표도 해 보았다.

그리고 또 다른 학생의 본분을 지키는 의미에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다. 시간이 훅훅 가는 와중에도 계절은 제대로 느껴보겠다고 봄에는 꽃구경을 가고 여름에는 물놀이를 하고 가을에는 단풍을 밟고 겨울에는 한국에 돌아가서 눈을 맞았다. 2022년 8월부터 2024년 5월까지, 그 사계절조차 두 번을 채 돌기 전에 다시 졸업이 찾아왔다.


이제는 학생이 아니야

나름 열심히 산 표식과 같게 느껴진 작은 상과 졸업장을 받고 단상 위를 걸은 지 막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 나는 인생 처음으로 입시가 아닌 취업 준비를 시작해 한껏 막막해하는 중이다.

미국의 고등교육, 즉 대학교에서 일할 때 몇 안되게 두드러지는 단점 중 한 가지는 HR 부서를 거쳐야 하는 행정 처리가 굉장히 느리다는 것이다. 1차 서류를 걸러내는 데에 한참, 면접 연락을 취하는 데에 한참, 오피스에 따라 면접을 여러 차례 볼 경우 최종 면접까지 진행하는 데에 한참, 레퍼런스 체크하는 데에 한참, 최종 결과를 공지하는 데에 한참... 그러니 교수님 중 한 분께선 아예 채용공고가 올라온 시점부터 채용 프로세스가 완료되기까지 두세 달은 기본으로 기다릴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해 주셨다.

새롭게 지원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5월에 지원한 오피스들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지금, 빈둥대는 것을 즐기다가도 문득 불안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OPT 기간 동안에는 90일 이상 미취업 상태로 있을 수 없는데, 설마 그전까지는 취업이 되겠지? 아직 내 진로 계획상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아닌데, 어떻게든 엘에이에 남아야 하는데...'

그러다 얼마 전, 갤러리를 정리하다 온기우편함 봉사 활동 시절 받은 위 블로그 댓글을 발견했다.

'그래 맞아, 나는 꽤 괜찮은 공구야! 내가 못이라면 못을 원하는 곳에서, 나사라면 나사를 원하는 곳에서 어련히 알아봐 줄 거야.'

'슬기로운 유학생활' 시리즈는 여기서 마치지만 '슬기로운 미국생활'은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늘 그랬듯이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당장의 실망에 연연하기보다 당장의 기쁨을 빼놓지 않고 취하면서, 언젠가는 그 실망조차 나를 예상치 못한 더 큰 기쁨으로 이끌어 준 첫 단계였음을 돌아볼 수 있게.

게다가 그렇게 열심히 할 힘을 내게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은 지금도 곁에 너무나 많으니까. 보랏빛의 예쁜 캘리포니아 노을, 그동안 학기가 바빠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가끔 한국에 계신 부모님, 친구들과 주고받는 전화, 카페에서 한창 이력서를 고치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귀여운 강아지들.

언젠가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띄운 편지와 답장.

예전의 내가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했던 말에 지금의 내가 위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생을 더 오래오래 제대로 살아보고 싶게끔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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