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3도 스트레스 받는다고요
믿길지 모르겠지만 2018년, 샌디에이고에 가게 되었다고 전한 나에게 우리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한 2초 정도 정적이 흐르고 옆에 있던 사촌언니가 빵 터지는 소리를 듣고서야 나도 상황파악을 마치고 한참을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샌디에이고는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연령대가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부족한 듯하나 사실 캘리포니아에서 두 번째, 미국 전역에서 여덟 번째로 큰 도시다.
동시에 미국의 대도시답지 않게 좋은 치안과 날씨로 유명해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백인 부자들이 은퇴하고 사는 휴양 도시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다. 한국에서 쭉 국제학교를 다니고 처음으로 혼자 미국에 가게 된 나로서는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도시에 가게 됐음에 만족했을 법 한데, 당시에는 웃으면서도 속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 정말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대학을 가는 건가? 내가?'
오만하기 짝이 없지만 그때는 스스로 평소 실력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대학을 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나는 재능파도, 노력파도 아닌 요령파였다. 선생님마다 원하시는 게 뭔지 파악하는 게 조금 빨랐을 뿐인 벼락치기 장인. 그렇기에 늘 공부에 치여 버둥대기보다는 시험 직전, 과제 제출 직전 같이 중요한 타이밍에 스퍼트를 내서 큰 어려움 없이 괜찮은 결과를 얻는 편이었다. 케이윌 노래 중 "못생긴 애들 중에 내가 제일 잘생긴 것 같대"라는 가사처럼 게으른 애들 중에 제일 잘하는데, 잘하는 애들 중에 제일 게으른 그런 아이였다.
문제는 나의 요령이 정작 중요한 대학 입시 때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판 수능인 SAT 점수도 나름 잘 받아놨겠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적당한 에세이 주제를 골라 나를 왜 뽑아야 하는지 적당히 설득하면 될 줄 알았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안중에도 없던 UC 샌디에이고(UCSD)를 제외한 모든 학교에서 대기 또는 불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은 것이다.
미국 대학교의 경우 대기 순번을 발표해 준다거나 하는 일도 없어서, 나는 9월 입학을 앞두고 7월까지 매일같이 5개가 넘는 학교 포털에 들어가 새로고침을 누르다 겨우 마음을 접고 이민가방과 캐리어에 짐을 쌌다.
사실 UCSD 합격 메일을 받았을 때는 나름 기뻤던 것 같다. 재수는 안 해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컸기 때문일까. 그도 그럴 것이 미국 대학교 입시판에서 재수는 사실상 없는 개념이다. 워낙에 학교가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지원만 똑바로 했다면 어디든 붙을 수밖에 없고, 심지어 대부분 내신 성적과 시험 점수가 좋은 아시아인 학생이라면 그것이 더욱 당연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만약 UCSD마저 붙지 않았다면 정말 눈앞이 깜깜 했을 텐데, 그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대기 걸린 학교들에 보낼 어필 레터를 작성하던 중 내 멘탈을 제대로 흔드는 일이 따로 벌어지고 만다. 당시 미국사를 가르치시던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마다 최고 학년인 12학년 학생들에게 입시 준비가 어떻게 돼 가는지 물으시고는 위로 또는 축하를 건네기 좋아하셨는데, 한 번은 나를 격려하다 말고 이렇게 물어보셨다.
"What is the average acceptance rate of the schools you applied to?"
"네가 지원한 학교들 평균 합격률이 어떻게 되니?"
"Around 10? Ranging from 5 to 15."
"10퍼센트 정도요. 5퍼센트부터 15퍼센트까지 있어요."
이 대답을 들으신 선생님께서 11학년 수업에 들어가 말씀하시기를,
"So you guys may know Jin, she's a senior... She's the perfect example to warn you against applying up, only to the ivy-leagues and top-tens, cause that is why she's getting so many rejections right now. Choose your schools wisely next year, kids."
"너희 윗학년에 Jin이라고 아니? 지금 상향지원 했다가 다 떨어지고 있잖아. 무작정 아이비리그, 탑 10 학교에만 지원해서는 안된다는 걸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란다. 내년에 지원 학교 신중하게들 고르렴."
와... 심지어 이 이야기를 듣게 된 것도 별로 친하지도 않던 후배가 내 친구한테 "언니, Jin 언니 대학 결과가 많이 안 좋아요?"하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속이 상했는데, 또 너무 창피해서 그 선생님을 찾아가 따지거나 하지도 못했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국제학교 등록금부터 사교육비에 이르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신 부모님께 보답하지 못한 것 같아 죄스럽고 눈치가 보였다. 그렇게 속으로 끙끙 앓던 시기에는 샤워할 때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머리가 빠졌다.
하지만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게, 이 최악에 가까운 입시 썰도 나중에는 나로 하여금 교육계에 종사하며 유학생 친구들이 단순한 랭킹이나 인지도를 넘어 정말로 본인에게 맞는 대학을 찾고,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챙길 수 있게 돕는 교직원이자 상담가가 되고 싶다 결심하게 한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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