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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다섯 번째 장비 약

by 하루달 Mar 20. 2025

 사람들이 나에게 건강하게, 안 아프고, 무사히, 잘 다녀오라고 한다.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건강이다. 순례길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서 제일 먼저 운동을 한 것처럼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 내 몸을 이렇게 꼼꼼하게 챙기기는 처음이다. 방치하던 내성발톱을 치료하니 방치하던 어깨가 생각이 났다. 생각이 났다기보다 왼쪽 손이 저리기 때문에 알아차렸다. 정형외과에 가니 3개월 만에 왔다고 한다. 저린 것은 팔이 아니라 목이 아프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깨는 석회 때문에 아프다. 석회가 안 생기게 하기 위해 비타민 k2를 먹고 있지만 크기가 큰 석회는 사라지지 않고 언제든지 아플 수 있다고 한다. 어깨와 목 주사를 맞고도 잘 낫지 않은 것 같아 며칠 후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부항을 뜨고 약침을 맞았다. 한의원에서는 3년 만에 왔다고 한다. 나는 빨리 나을 것을 미루다가 병을 키우는 스타일이다. 이번 기회에 모든 병을 고치고 있다. 소염제와 근육이완제는 정형외과에서 처방을 받는 약이 좋다고 한다. 많이 걸으면 아플 수 있기 때문에 챙겼다.

 머리가 아프고 자주 토하는 것은 위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한약을 먹고 가면 좋다고 한다. 증상을 설명하고 받은 한약을 보름 가량 먹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약을 먹은 것은 출산 이후이다. 그전에는 감히 딸인 나에게 한약의 순서는 오지 않았다. 아빠가 드시거나 오빠가 먹었다. 출산이라는 신체의 큰 변화 앞에서 나에게도 한약의 순서가 왔다. 그리고는 한약을 먹지 않다가 갱년기라는 신체의 변화가 오고 또 한 번 먹을 기회가 생겼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한약 먹는 것은 왜 이리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일까.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만 먹을 수 있는 숭고한 약인 것 같다. 그럼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나? 엄마처럼 가족에게만 희생하고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나도 똑같은 길을 걸은 것 같다.어쨌든 나는 세 번째 한약을 먹었다. 위가 튼튼해졌길 바란다. 이제는 나도 달라질 것이다.

멘소라담을 다이소에서 산 작은 용기에 담았다. 바셀린도 제일 작은 것으로 챙겼다. 발가락 사이사이 바셀린을 바르고 양말을 신으면 물집이 생기지 않는다. 만약 물집이 생기면 바늘로 터뜨리면 안 된다. 약사가 기겁을 한다. 바늘과 실이 소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차감염이 생긴다며 가위로 잘라서 쓸 수 있는 스킨가드를 주었다. 물집은 스스로 없애질때까지 2, 3일 기다려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줄 수 있어서 넉넉하게 챙겼다. 스포츠테이프는 무릎이 아플 때 또는 발바닥에 붙이면 물집이 안 생긴다고 해서 챙겼다.

 다음으로 걱정되는 것은 베드버그이다. 침대에 작은 검은 흔적을 잘 살펴봐야 한다. 순례자들이 묵는 알베르게는 베개커버와 침대커버를 준다. 잘 덮은 후 혹시 걱정이 되면 디펜스벅스 더블 약을 뿌린다. 만약 벌레에 물리면 써버쿨을 바르고 항히스티민지 악을 먹으면 된다. 그밖에 알보칠, 지사제, 타이레놀, 종합감기약, 정로환, 안약을 챙겼다. 더 이상 가져가면 종합병원이 될 것 같다. 짐을 줄여야 하는데 비타민을 가져갈까 말까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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