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애 Dec 05. 2023

내일과 내 일이 아닌 일(1)

아빠 같은 남편이라도?

    연분홍 치마 밑단을 따라 놓인 꽃 자수 아래로 엄마의 흰 버선코가 빼꼼 드러났다. 나는 그 앞에 앉아 발을 살폈다. 길들이지 않은 구두를 신고 아침부터 종종거렸더니 발바닥이 욱신거렸는데, 역시나 앞꿈치와 아킬레스건 아래 물집이 부풀어 있었다. 얇은 살갗에 바늘 끝을 신중히 찔러 넣었다. 물풍선에 미세한 구멍을 낸 듯 표면에 맑은 물이 맺혔다. 물이 빠져 헐거워진 살갗을 지그시 누르고 그 위에 노란색 뽀로로 밴드를 붙였다.

    “효진이도 가고. 이제 너랑 나 둘이네.”

    갑작스런 엄마의 푸념에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거보라고. 나까지 결혼했으면 엄마 혼자 이렇게 앉아 있었을 텐데, 쓸쓸해서 어쩔 뻔했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네 외할머니가 고추장 보낸 거 있어. 밥이나 비벼 먹자.”

엄마가 말하며 피곤한 미소를 지었다.


    커다란 볼에 냉장고 속 묵은 나물 반찬과 밥, 고추장, 참기름을 한데 넣어 쓱쓱 비비곤 깊은 허기의 밑바닥부터 채우는 마음으로 비빔밥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엄마는 진짜 내가 결혼했으면 좋겠어?”

    “그걸 말이라고 해?”

    엄마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하면서 암팡지게 밥숟가락을 놀렸다.

    “왜?”

    “왜긴. 남편은 있어야지.”

    “아빠 같은 남편이라도?”

    나도 모르게 엄마까지 싸잡아 후려친 건가 싶어 아차 했는데, 엄마는 네 아빠 없었으면 혼주석에 달랑 앉아 있을 뻔했다며. ‘그거’라도 있는 게 다행이지 않느냐고 말한 뒤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밥을 꼭꼭 씹으며 오늘 본 아빠를 떠올렸다. 제법 아빠 같은 모양새이긴 했지. 상냥히 하객을 맞이하던 아빠. 인자한 표정으로 효진의 신랑을, 그러니까 제부를 그러안고 등을 두드려 주던 손길 같은 것…. 물론 식이 끝나자마자 효진에게 잘 살라고 말한 뒤 훌쩍 떠나버려 야속한 마음도 들었지만 말이다. 오늘따라 유독 조그매 보이는 엄마를 보니 나도 모르게 짠함이 밀려들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