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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애 Dec 05. 2023

내일과 내 일이 아닌 일(2)

산? 웬 산? 무슨 산? 진짜 산?

    엄마와 아빠는 효진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이혼했다. 함께 운영하던 식당이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던 때였다. 이혼했다고 회사를 그만두지 않듯, 두 사람은 동업자로서 관계를 이어 나갔는데 그게 효진의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였는지 독립을 선언하곤 방을 얻어 나갔다. 나 또한 부모님의 이혼과 그 이후 두 사람의 관계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효진처럼 집을 박차고 나갈 수는 없었다. 아빠에게는 새로운 사람이 생긴 듯 보였고 그럼 엄마 혼자 남겨지게 되는 거니까.

    효진이 결혼할 남자가 있다는 소식을 알려 오면서부터, 엄마와 아빠는 담백하게 역할을 분담하며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 또한 번번이 미끄러지던 취업에 성공하며 수습 기간을 지내게 된 때라, 효진의 결혼 준비에 기꺼운 마음으로 동참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사위 될 사람이 복덩이인 것 같다고 엄마가 좋아했는데, 나는 그저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던 취준 생활이 끝났다는 게 좋았을 뿐. 효진의 결혼 상대에겐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았다. 효진이 좋다면 뭐라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혼곤한 잠 속으로 빠져들기 직전 휴대폰 진동에 잠에서 깼다. 효진의 이름이 짙은 어둠 속 일부를 환히 밝혀 눈을 반쯤 감은 채 전화를 받았다. “언니” 하고 부르는 효진의 명랑한 목소리에 순간 꿈인 줄 알았다. 6년의 터울에도 효진이 나를 ‘언니’라고 부른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효진이는 내게 자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잠들기 직전이었다고 하니, 몇 시인데 벌써 잠을 자느냐면서 내일 별일 있는 게 아니라면 산에 가자고 했다.

    “산?”

    “응.”

    “산? 웬 산? 무슨 산? 진짜 산?”

    “응, 산!”

    “너 오늘 결혼하지 않았나?”

    나는 꿈같은 대화에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도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효진은 해돋이 보러 산에 가자는 말만 반복했고 나는 조금씩 현실감각을 회복한 뒤 “신혼여행은?” 하고 물었다. 효진은 남편이 운영하는 센터에 문제가 생겨서 급히 가 봐야 하는데, 신혼여행을 혼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미뤘다는 얘기를 덤덤히 전했다. 그러곤 자신이 알고 있는 해돋이 포인트가 있는데, 거기에 가고 싶다고. 혼자 가도 되긴 한데 아무래도 혼자 새벽 산행은 무서울 것 같아서,라고 했다가 언니랑 가고 싶어서, 하고 덧붙였다. 갑작스러운 효진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언제 있겠나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것엔 분명 거역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새벽 5시 30분. 등산로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야 화장도 지우지 않은 채 누워 있다 잠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쩍쩍 갈라질 것 같은 얼굴로 안방에 가 보니 엄마는 이미 얕은 코골이까지 하며 잠들어 있었다. 클렌징 워터를 듬뿍 적신 화장솜으로 피부를 긁어내듯 세안하고, 딱딱해진 머리칼까지 충분히 불려 감아 샤워까지 마치니 한밤이었다. 영화를 한 편 볼까 하다가 내일 산에 가야 하니까. 알람을 맞추고 일찍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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