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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애 Dec 05. 2023

내일과 내 일이 아닌 일(5)

해, 꼭 보고 싶었는데.

    일출 시간대가 가까워지자 하나둘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등산 장비까지 제대로 갖춰 올라온 사람들 틈에 효진과 나는 비교적 가벼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자리를 잡고 서서 조금씩 여명이 밝아 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왜 해가 안 뜨지?”

    효진이 물었다. 나는 초콜릿 껍질을 구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함께 일출을 기다리던 등산객들도 동요하는 듯 술렁였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서울의 일출 예정 시간을 검색해 보고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칠 분이나 지났네…, 구름이 많아서 그런가?”

    “해, 꼭 보고 싶었는데.”

    효진이 잔뜩 실망한 기색을 내비쳐 마치 구름을 내가 부른 것처럼 마음이 불편해진 그때. 효진의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 효진은 화면을 확인하곤 진동을 꺼트린 뒤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슬쩍 보기에 제부 같아, 싸웠나? 싶었지만…. 어차피 물어도 곧이곧대로 말해 줄 효진이 아니니까. 그저 모르는 척 멀리서 붉을 듯 말 듯 흐릿한 하늘을 바라보며 다 식은 커피를 홀짝였다. 얼마 못 가 효진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제부 아니야? 받아 봐.”

    효진은 이내 내키지 않는 얼굴로, 전화 좀 받고 오겠다며 사람들이 없는 뒤편 너럭바위 옆 비탈로 내려갔다.

  

    정식으로 제부를 소개 받기로 한 날이었다. 엄마는 큰 이모에게 고급 식기 세트까지 빌려 진수성찬을 차려 냈는데, 그렇게까지 준비해 사람을 맞이한다는 것이 나는 왠지 부끄러웠다.

    “사진 보니까 나이처럼은 안 보이던데. 어려서 물정 모르고 번지르르 겉멋만 든 애들보다야 삶의 경험도 풍부하고 자기 일 확실한 남자가 낫지. 안 그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치?”

엄마는 내게 물으면서도 그저 자기 말만 하기 바빴다.

    “효진이는 또래에 비해 성숙해 보이는 편이잖아. 요즘은 사십 대도 다 삼십 대 같고 그러니까.”

엄마는 효진이 초등학생이던 시절부터 성숙한 외모 탓에 성인으로 오해받았던 일화를 덧붙였다. 가족끼리 식당에 가면 종업원이 꼭 효진 앞에 술잔을 놔주더라는 등의 얘기를 늘어놓으면서 내게는 옷을 좀 성숙하게 입고 다녀라, 옷 방에 있는 후드 티를 싹 갖다 버리겠다며 갑자기 엄포를 놓아 혼란스러웠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나이 차가 아주 대수롭지는 않은 모양이겠지. 하지만 어쩌겠나, 효진의 선택인 걸 싶었다.

    “나이가 뭐가 중요해. 그리고 얘기 들어보니까 그 사람이 원래 비혼주의였대. 아마 남자 쪽에서는 우리 효진이 업고 다니고 싶을걸.”

    나는 효진에게 들었던 말에 조금 더 살을 붙여 엄마에게 전했다. 엄마는 달뜬 표정으로 “그으래?” 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도 정직원 전환되면 바로 시집갈 생각해. 발이 넓어 그런가, 네 큰 이모 쪽으로 선 자리가 들어오는 모양이더라.”

    엄마는 얇게 포 떠 구운 소고기와 색색의 파프리카, 팽이버섯, 무순을 한데 모아 쌈무에 돌돌 예쁘게 말며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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