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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아 Feb 01. 2022

#14. 고생해도 괜찮아, 즐거우니까

< 보통유튜버 이야기 > Chapter 2. 유튜버 이야기

My working routine #3. 촬영




비행기 안에서 한숨 푹 쉬고 나면 신나는 여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 여행지에 도착한 순간부터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카메라와 함께였다.


유튜버에 따라 각자 어느정도 정해진 제작 방식이 있는데, 집 또는 스튜디오에서 실내촬영을 하거나, 촬영지를 돌아다니며 야외촬영을 하거나,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며 해당 영상을 녹화하거나, 스크립트를 짜고 녹음을 한 뒤 이미지 파일 위에 얹기도 한다. 많은 성공한 유튜버들은 '쉽고 편한' 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언제든 효율적으로 촬영할 수 있어야 지치지 않고 자주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 유튜버는 어쩌면,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선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스튜디오를 벗어나 섭씨 40도의 더운 곳을 여행하기도 하고, 카메라나 핸드폰조차 방전되어버리는 영하 20도 추운 곳에서 촬영하기도 하니까. 게다가 대부분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촬영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고생이다. 


2019. white sand dune, Vietnam


나는 보통 세 대의 카메라를 챙기는데, 메인 카메라로 활용하는 DSLR 하나, 셀프카메라로 활용하는 화각이 넓은 작은 카메라 하나, 사진용 필름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 당연히 언제든 촬영이 가능한 핸드폰 카메라도 함께. 어쩌다 필요하다면 수중 카메라, 360도 VR 카메라 또는 드론을 추가로 가져가기도 한다. 여행지의 다양한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담기 위해서는 장비도 다양해질 수 밖에 없다. 사실 핸드폰 카메라만으로도 충분히 촬영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내 어깨가 조금 아플지언정 예쁜 이미지를 쉽사리 포기하기가 어렵다. 


아무래도 모델 일을 했었기 때문일까, 나는 브이로그 안에서도 예쁘고 멋있게 나와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카메라 렌즈 초점이 나가거나 노출 값을 맞추지 못해 밝은 부분이 날라가는 것을 견딜 수 없고, 화면이 덜컹덜컹 흔들리는 것도 참을 수 없다. 단조로운 앵글이나 화면구성도 견디지 못해, 혼자 여행할 때에는 계단 난간, 나무줄기, 돌 등 카메라를 올려둘 수 있는 모든 곳을 활용해 예쁜 그림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써왔다. 


예쁜 영상을 위해 가끔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다고 과한 보정을 하거나 불만족스러운 여행지를 허위 포장하는 건 아니다. 해피새아 채널을 보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실망하는 걸 원하지는 않으니까. 예쁜 곳이 조금더 예뻐보일 수 있도록 약간의 조미료를 가미하는 것이다. 잔디광장에 갈 때는 빈손으로 가는 대신 하얀 피크닉매트와 간식을 준비하는 것. 룸다이닝 호텔 조식을 소개할 때는 5cm 폭의 좁은 창틀에 엉덩이 반쯤 걸치고 스쿼트 자세를 하더라도, 창밖 뷰와 함께 담아 여행지의 모습이 돋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 딱 그 정도. 덕분에 '영상미가 좋다'는 칭찬을 많이 들어왔고, 다른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들도 해피새아 채널을 구독한다는 영광스러운 일들을 여럿 겪어왔다. 제작자로서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건 매우 뿌듯한 일이었다.  


2019, Macao. 단조로운 호텔룸 배경보다는 에펠뷰 창문 배경이 훨씬 낫지! 



그러나 언제나 예쁠 수만은 없는 게 여행이다. 여행 중에는 갑작스러운 변수가 생기는 일이 허다하다. 그리고 그게 여행 유튜브 채널의 묘미라면 묘미이다. 


모로코에서 타려던 비행기가 예정 시간보다 15분쯤 먼저 떠나버리는 불상사를 맞은 적이 있다. 심지어 신혼여행 중이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한 블로그에서 '모로코의 버스나 기차는 정해진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게 다반사인데, 늦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일찍 출발하기도 하니 꼭 30분 이상 여유를 가지라'는 후기를 읽었었는데, 버스와 기차를 탈 때에만 긴장했던 게 오산이었다. 비행기가 승객을 안 태우고 빨리 가버릴 줄이야. 


휴양지에서 폭풍우를 만나고, 일정이 꼬여버리고, 바가지를 당하고, 비행기가 사라지는 .. 일련의 '망한 여행'들. 이런 것들을 가끔 예쁜 것보다 더 훌륭한 콘텐츠가 된다. 누구나 한번쯤은 여행을 망쳐본 경험이 있으니까. 나도 이랬었지- 하며 공감하고 걱정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웃기지만 슬픈 추억이 하나 더 공유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유튜브였다. 


예쁜 것을 만들 때에도, 짠내나는 삶을 담아낼 때에도, 참 즐거운 고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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