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연금술
'시작하는 여러분에게 희소식이 하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천부적인 질문자라는 사실이다. 제대로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왜?"를 비롯해서 온갖 의문문을 쏟아 낸다. 아이들이 매일 뭔가를 확인하고 증명하려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다. 성인이 되어서 효과적으로 질문하는 법을 배울 때는 어린 시절의 그 끈덕지고 편견없는 호기심을 회복해야 한다. 하지만 효과적인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호기심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_ 제임스 파일 외 [질문의 힘]
2010년 서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 폐막식에 섰다.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주겠다고 했다. 침묵이 길어졌으나 한국기자들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통역이 준비되어 있음에도 질문하는 기자가 없었다. 질문이 사라진 교실의 문제를 다룬 EBS다큐에서 방영되어 다시한번 이슈화 되었다. 당시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기자는 “그 자리에서 질문을 던지면 한국 모든 기자를 대표해서 던지는 질문이 될 텐데, 내 질문이 그런 것인지 고민하다가 결국 손을 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적절한 질문, 적절하지 못한 질문이 따로 있고 적절한 질문만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오히려 질문을 막는 꼴이 됐다고 분석한 기자도 있었다.
학생들이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회사에서 질문이 사라져간다고 한다. 초중고 교사 뿐 아니라, 대학교수님들까지도 질문 잘 하는 법을 물어온다. '어떻게 하면 질문을 잘 할 수 있는가?'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다. 서로 질문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진지하게 대화나눌 수 있는 장을 열어주면 질문을 통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일상의 사유와 대화는 질문을 바탕으로 일어난다. 인간은 누구나 질문을 하며 살아간다. 질문하는 법을 모른다기 보다는, 질문을 더 잘하고 싶다는 것이다. 질문하는 것이 꺼려지는 분위기, 꺼려지는 상황이 있다. 질문하는 것이 점점 더 불편해지고 어려워지기도 한다.
어린시절엔 아이들이 묻고 부모나 교사 등 어른들이 답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어른들의 질문이 더 많아졌고, 학생들의 질문은 점점 더 줄어들기 시작했다. 묻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상사가 묻고, 부하직원은 답하는 문화가 익숙해졌다. 역할과 지위에 따라 질문하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이 따로 따로 나뉘기 시작한다. 질문하는 능력은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무엇이 질문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가? 천부적인 질문능력을 되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천부적인 질문능력들이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Q1. 질문하는 것을 왜 그토록 어려워 하는가?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중 좋은 질문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이끌어 내고 상대와 친밀한 관계를 쌓을 수 있도록 돕지만, 나쁜 질문은 관계를 악화시키고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좋은 질문은 무엇일까? _ 제임스 파일, 메리앤 커린치 [질문의 힘]
인간은 특별히 생각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라는 말은 슬기로운 인류를 뜻한다. 그저 충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을 뛰어넘어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갖췄다.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그 무엇'을 인간이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자기 자신의 생각 뿐 아니라, 동료의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생각을 공유하는 힘을 갖춘 것이 현생 인류다.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그 무엇!', 우리는 이것을 '질문'이라 부른다.
질문하는 이들은 능동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되고, 또한 타인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사유하는 인간이며, 소통하는 인간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타인과 어울려 살면서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질문'을 활용한다. 질문은 인간을 다른 종들과 차이를 만드는 활동이다. 이 활동을 통해 인류는 발전해왔으며, 새로운 문제들을 남다른 방식으로 풀어내었다.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며,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까지도 변화시킨다.
우리 모두에겐 '타고난 질문하는 능력'이 있다. 나쁜 소식은 교육과 문화의 제약으로 이 능력이 업악되고 퇴보하였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 제도화된 학교교육은 질문하는 능력보다 올바르게 답하는 능력을 신장시키기에 바빴다. 더불어 무엇인가를 지키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변화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조직의 경직된 문화는 질문을 기득권을 쥔 이들에게만 허용하고, 질문하는 활동을 억압하곤 하였다.
낡은 정답보다 새로운 질문이 필요한 시대다. 아이들의 잠재 능력을 이끌어 내려면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질문이 필요하다. _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좋은 소식도 있다. 능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몇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아이를 생각해보자. 그가 자라는 과정에서 수년 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더라도 자전거를 타는 능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본인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망각해도 마찬가지다. 다시 기회만 주어진다면, 어렵지 않게 능력을 발휘해 자전거를 탈 수 있다. 질문하는 능력도 마찬가지다. 우리 안에 숨어 잠들어 있을 뿐이다. '질문하는 능력'은 새롭게 배워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다시 일깨우고 가다듬고,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외발자전거타기를 시도하고 싶다면, 새로운 훈련이 필요하다. 질문을 통해 생각하고, 배우고, 소통하는 것을 넘어선 무엇을 하려한다면 이 역시 새로운 훈련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타고난 질문하는 능력을 되살려, 자신과 우리의 삶을 위해 활용할 수 있을까? 질문하는 능력을 일깨우고, 단련하고, 능숙하게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떠올리는 능력, 시간과 공간의 틀에서 벗어난 추상적인 생각을 해보는 능력, 서로 관련이 없거나 낯설어 보이는 것들끼리 서로 조합해보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몽상을 할 때도, 추측을 할 때도, 심지어 거짓말을 할 때도 그런 능력을 사용한다. _ 윌 콤퍼츠 [발칙한 예술가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겐 질문하는 능력이 없다고, 혹은 질문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믿어버린다는 것이다. 질문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그래서는 안 된다. '자기에 대한 의심'을 극복하고 '자기에 대한 신뢰'를 샇아야 한다.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로 태어났다. 보다 적극적으로 질문을 활용함으로써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거듭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질문을 '잘'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자. '잘'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리고 질문을 하자. 멈추지 않고 질문하고, 조금 더 질문에 민감해지자. '잘' 하려고 하다간, '못'하게 되기 쉽다. 질문하는 능력은 하면서 키워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새롭게 배워야 하는 능력이 아니다. 질문하고, 다시 질문하고, 다르게 질문하다보면 더 좋은 질문을 하고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질문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Q2. 당신은 왜 질문하는 능력을 키우려 하는가?
질문은 본디 인간의 '능동'적인 행위다.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묻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능동성은 스킬이라기 보다는 태도에 가깝다. 자주 활용하다보면 스킬로 발전한다. 묻고자 하는 태도가 없다면 묻는 능력은 저절로 향상되지 않는다. 능력을 자주 사용하다보면, 기술이 생기고, 스킬이 된다. 스킬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 반복적으로 하다보니 스킬이 생기는 것이다.
기술이 남다른 경지에 이르면 우리는 '예술'이라 부른다. 질문하는 능력을 자주 활용하고 가다듬어 예술의 경지에 이른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예술의 목적은 모방이 아니라 창조에 있다. 질문의 목적이 기존의 지식을 습득하는데 그쳐서는 예술이라 할 수 없다. 창조적인 활동을 위해서 질문을 활용하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야말로 온전한 '질문예술가'이리라.
타고난 역량도 자주 활용하지 않으면 녹이 쓴다.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은 탁월함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역량이 쓰일 기회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해야 기회가 올 때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질문하는 능력을 타고난 종이다. 타고 난 능력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능숙하게 할용하는 것은 아니다. 연습을 통해 연마해야 기술이 되고, 그 기술을 제대로 창조적으로 활용할 때 예술이된다.
질문하는 능력을 가다듬어 예술이 되게 하는 것, 질문을 더 효과적으로 하기위한 훈련을 '질문의 연금술'이라 부르고자 한다. 일반적인 금속을 제련하고 연마해서 금을 얻으려는 시도를 연금술이라 불렀다. 돌덩이를 금덩이로 바꾸는 기술이 연금술이다. 우리는 더 좋은 질문을 통해 단편적인 생각, 습관적인 사유를 변화시킬 수 있다.
질문의 연금술이 향상되면 사고력을 향상하고, 의사소통을 활성화하고, 이전에는 풀지 못했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자신을 위해서 질문을 활용할 수 있고, 타인과 세상을 위해서도 활용할 수 있다. [질문의 힘]의 저자 제임스 파일은 '효과적인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호기심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했다. 다르게 질문하면, 관찰하는 것도 달라지고, 느끼는 것도 달라지며, 생각하는 것도 달라진다. 타인과의 소통도 달라지며, 행동과 결과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
연금술은 세상이 가치없다고 여기는 것들을 가치있는 것들로 변혁시키려는 시도다. 질문하는 타고난 능력, 잠재된 능력을 사용하고, 연마하면 질문의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 기술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면 가치있는 것을 탄생시키는 예술이 된다. 질문의 연금술을 갈고 닦는다는 것은 질문을 통해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의미다.
다르게 질문하는 법을 갈고 닦는 훈련법 - '질문의 연금술'을 정리해 보려 한다.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하나씩 정리해보려고 한다. 돌덩이 같은 삶이 질문을 통해 금덩이 같이 가치있는 삶으로 변혁되는 것을 보고 싶다. '질문의 연금술'을 함께 탐구하고 훈련할 준비가 되었는가?
Q3. 질문하는 능력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2016. 6. 15. 질문술사
[덧붙이는 글] 질문디자인연구소라는 이름을 걸어두고, 질문을 공부하고 활용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다른 사람들의 질문능력을 향상시키기에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함께 훈련해 나간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질문하는 힘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 다르게 질문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몇 가지 안내해 보려고 합니다. 항상 부족한 글을 읽고 응원해 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