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에게 사랑이고 싶다

언젠가 맞을 죽음 앞에서

by HAN

너와의 이별은 얼마나 남았을까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희미해진 기억 안을 헤매는 너


젊은 시절 모진 말들이

아직도 귀에 맴도는데

내 손에 의탁해야만 하는 너


너의 손발이 될 때마다

난 나를 조금씩 떼어주고

내 삶의 시간을 줄여간다


난 너를 얼마나 사랑할까

이 나이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새삼 낯설지만

지난 시간의 아픔도

앞으로의 두려움도 잊고

난 너에게 사랑이고 싶다


보석같이 빛나는 자식들을

이 땅에 선물로 남겨놓고 가는

너를


삶의 끝을 향해 가고 있는 아빠를 보며 엄마는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며 쓴 글이다.

당신 몸도 안 좋으신데 아빠를 잘 간병하다 보내고 싶다는 엄마. 평소 비위가 약하신데 아빠의 대소변을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하신다. 우리네 엄마들이 그렇듯 남편과 좋은 기억만 있지는 않을 텐데.




아빠가 춥다고 겨울이불을 덮고, 거의 못 먹는다는 내용의 카톡을 받았던 것이 한 달 전이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며칠 사이 황달이 심해졌고 급하게 입원해서 담도를 여는 시술을 받았다.

간암 환자인 아빠는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계셨다. 4월 말 검사 결과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는데 그사이 담관 주변에 문제가 생겼다.

열흘 정도 입원하고 퇴원한 지 2주가 됐다. 처음에는 기운이 없어서 거동조차 못하시다가 지금은 천천히 거동을 하신다. 아직도 황달이 남아 있고 며칠 전부터는 치매 증상을 보이신다.

딸이 다섯이어도 간병은 엄마 차지다. 다들 일을 하고 있어서 딸들이 할 수 있는 건 수시로 음식을 보내주고 시간 될 때 얼굴을 보러 가는 게 전부다. 그래도 우린 엄마의 호출에 기사와 비서가 돼서 두 분이 하고 싶은 걸 해드린다.


어제저녁 아빠는 강변북로 아라뱃길에 가서 쌍화차를 마시고 싶다고 하셨다. 음...

우린 무작정 아라뱃길로 출발했고 난 수다를 떨다가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우린 재빨리 쌍화차로 방향을 바꿨고 연곳을 검색을 해서 찾아갔지만 가보니 폐업이었다.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아라뱃길 전망대로 향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깜깜한 전망대 앞에서 우린 허무함의 웃음을 터뜨렸다. 우린 2시간 반을 그렇게 헤매고 다니다가 아무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기사를 자처하지만 똘똘하지 못한 난 이러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우린 웃으며 돌아온다. 집을 벗어나서 함께 어딘가를 향한다는 것, 그게 여행이니까.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는 정해진 게 아니다. 목적을 이루지 못한 여행도 행복하다는 걸 우린 잘 안다. 우린 어제 그렇게 잠깐의 여행을 했다.


오늘은 시술 후 2주가 되는 날이고 병원에 가는 날이다. 우린 어제와 다른 또 다른 여행을 다녀올 거다.




난 요즘 두 가지를 생각한다.

하나는, 난 너에게 사랑이고 싶다는 마음이다. 항암은 시작도 못했고 치매도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다. 엄마가 간병하면서 얼마나 버틸지, 경제적인 부분이 얼마나 우리의 발목을 잡을지 우린 다 알 수없다. 그래도 난 우리가 아빠의 마지막 날까지 아빠에게 사랑이면 좋겠다.

또 하나는, 선물을 주고 가는 아빠다. 아빠는 우리에게 물려줄 유산이 없다. 그래도 이 땅에 작지만 따뜻한 마음이 담긴 선물 다섯 개를 주고 가실 거다. 그 선물들은 크고 화려하지 않다. 어쩌면 예쁜 상자에 담긴 강냉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빠의 딸들인 우린, 외롭고 힘겨운 누군가에게 소박하지만 따스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어른들로 성장했다. 우리를 이 땅에 선물로 주고 가시는 거다. 래서 우린 아빠가 이 땅에 남긴 선물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갈 거다.


어느새 감성적인 사람이 된 나는 이성적인 사람의 눈으로 보면 한심하고 뜬 구름 잡는 사람이다. 항상 붙어 다니는 언니조차 농담 삼아 내게 그랬다. 코도 낮은데 왜 코앞을 못 보냐고.

앞으로 내 생각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난 지금의 내 마음을 글로 남겨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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