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퇴근하면서 엄마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전화를 했었다. 엄마는 진이 빠진 목소리로 하루 종일 아빠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저러고 있다고 푸념을 하셨다. 퇴근하고 가보니 아빠는 씻고 나와서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채 소파에 멍하니 앉아계셨다. 하루 종일 밥 먹는 걸로 실랑이를 하셨고 아빠가 식사를 안 하시는 바람에 엄마도 같이 굶고 계셨다.
내가 이 얘기 저 얘기를 해도 아빠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그대로 앉아계셨다. 그 사이 아빠는 그 상태로 대변을 보셨다. 냄새가 나는대도 아빠는 그대로 계셨고 일어날 의지가 없는 아빠는 바위처럼 무거워서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빠를 그 상태로 두고 엄마와 나는 밥을 먹었다. 엄마는 일하고 와서 배고플 딸을 위해, 난 하루 종일 굶은 엄마를 위해. 아빠가 좋아해서 포장해 온 동태찌개를 우린 각자의 입에 욱여넣었다.
밥 먹지 말라는 엄마의 말 때문인지 지쳐서인지 아빠는 엄마의 부축에 일어나셨고 침대로 가셨다. 아빠는 우리가 기저귀를 갈 때는 협조적으로 무릎도 세우고 우리가 요구한 대로 몸도 움직인다. 그런데 언젠가 엄마가 갈 때 보니 널브러진 채 그대로 계셨다. 그 모습을 봤던 나는 식탁을 치우고 엄마가 기저귀 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다. 역시나 아빠는 널브러진 모습이다. 아빠는 왜 엄마에게 협조적이지 않을까? 무의식적으로 투정을 부리는 걸까?
난 이전 글에서 아빠에게 마지막까지 사랑이고 싶다고 썼었다. 타인에게 강냉이 같은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도 썼었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과연 뭘까? 난 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을까?
나의 하찮은 사랑에 좌절 이모티콘을 사용할뻔했다. 난 시린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출근을 하지 않는 토요일이라 난 아침에 다시 아빠를 보러 갔다. 다행히 아빠는 밤새 잘 주무셨나 보다. 약을 챙겨드리고 시아버님 댁으로 향했다. 80대 중반의 나이는 누구도 괜찮지 않다. 아버님은 위태위태한 모습이시지만 그 가운데서 웃음을 찾고 일상을 누리신다. 아버님과 전원일기를 보며 이른 점심을 먹었다. 복길이의 노랑머리 때문에 우리는 같이 웃으면서.
다시 아빠를 보러 갔을 때, 아빠는 엄마랑 언니와 함께 식탁에 앉아 점심을 드시고 계셨다.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언니가 안 일어나는 아빠를 일으켜 식탁에 앉혔다고 한다. 어느새 순한 양이 되어 언니의 말을 듣는 아빠를 보니 웃음이 났다.
목요일, 금요일 언니는 지방에 가야 했고 나에게 부탁을 하고 갔었다. 힘들어도 퇴근하고 들르라고. 난 걱정하지 말고 가 있는 동안 여긴 잊으라고 했지만 엄마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 언니에게 여러 번 전화를 했다고 한다. 언니가 오니 뭔가 제자리를 찾는 거 같다. 언니는 내 하찮은 사랑 이야기를 듣고 웃으며 말했다. 치매 환자는 그렇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고. 그냥 ㅇㅇ님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너 같이 생각하면 간병을 못한다고.
우린 넷이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처럼 수다를 떨며 토요일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금요일 저녁의 악몽으로 이 평범한 일상은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요즘 교회는 추수감사절 행사 준비로 바쁘다. 아빠가 편찮으시고부터 우린 주일예배 외에 다른 예배에 참여하지 못한다. 우린 시간이 나면 되도록 아빠를 보러 간다. 예배 후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하고 아빠를 보러 갔더니 엄마 혼자 아빠를 씻기시느라 한 시간을 쩔쩔매셨나 보다. 우리가 들어가니 이제 끝났다고.
우린 각자의 일을 찾아서 했고 난 오늘 처음으로 혼자 웃옷에까지 변이 묻은 아빠의 기저귀를 빼고 씻기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은 도와주는 역할이었는데 오늘 아빠는 아주 협조적이었고 난 새 옷을 입히는 거 까지 가뿐히 해냈다.
아빠가 주무시는 동안 티브이로 본 영화, 김을 재느라 풍긴 참기름 냄새, 저녁으로 먹은 떡국. 명절 같다. 저녁 약을 먹고 주무시는 아빠를 보고 난 집으로 먼저 왔다.
이렇게 좌절과 희망의 2박 3일을 보냈다. 2박 3일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다. 힘들었지만 좋았던 여행.
2주 연속 수요일마다 우린 여행을 가는 마음으로 병원을 갔었다. 병원이 강동이어서 안 밀려도 1시간 반, 밀리면 2시간 이상이 걸린다. 채혈을 하고 몇 시간을 기다렸다가 진료를 보기 때문에 하루 종일이 걸린다. 우린 설렘으로 여행을 계획하듯 전주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다음 예약을 준비한다. 몸은 등산을 다녀온 듯 피곤하기도 하다. 그래도 우린 오가는 동안 끊임없는 수다와 웃음으로 지칠 줄 모르고, 기사 역할인 나는 진료를 보는 동안 주위 사진을 찍으며 가을을 만끽한다.
엄마, 아빠와의 동행이 집에서건 집을 나서건 내겐 여행 같다. 나가면 고생이라고 여행은 힘들다. 그래도 가고 싶고 그 안에 즐거움이 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 언니와 함께여서 가능한 여행. 그래서 감사하다.
이 글을 쓰는 게 어떤 의미일까? 아빠가 이 글을 보면 어떤 마음일까? 난 아빠를 사랑한다. 내 사랑이 작아 하찮을지라도 이불로 덮어 유지하고 싶을 만큼. 훗날 이 글이 사랑을 전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나의 시행착오를 다른 사람은 겪지 않기 바라는 마음이다. 치매환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극단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정상적으로 보이고 할 수 있을 거 같아 보이기도 한다. 환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한 순간에 전화할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인가~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