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의 효과
나도 남도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 소중함으로 마주하고 싶다
졸업 후 거의 쉬지 않고 일했던 나는, 50대 중반을 바라보면서 몸도 마음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불현듯 지금 이 상태에서 죽으면 너무 불행한 삶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 대책 없이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오랜 시간 고민했던 답이 쉬면서 한순간에 풀렸다. 난 그냥 놀고 싶었던 거다. 쉬니까 낮에 집에서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고,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는 세상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 시간도 잠시, 경제적인 부분이 가방 속 숙제처럼 남아있었기에 시간이 갈수록 불안하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예전 하던 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나는,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 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됐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었다. 이렇게 우울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가, 지인의 소개로 전에 하던 일을 단기간, 다시 하게 됐다.
출근 기념이라며 언니가 내 SNS 글을 모 회사 생활 수필에 응모했고, 독자 코너에 실리게 됐다. 그러면서 언니가 한마디를 했다. "네 글은 진솔해서 좋은 거 같아." 그 말 때문일까? 아파트 계단을 올라가는데 지역 신문이 놓여 있었고, 독자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이 지역에 이사 온 지 1년이 되어가는 시점이어서 1년을 돌아보는 글을 써서 보냈고, 독자 코너에 실렸다.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언니의 말이, “나”에 대해 숱하게 고민하던 나에게는, 그래도 뭔가 잘하는 게 있다는 희망처럼 들렸나 보다. 직업 관련 신문을 보다가 문학 상을 공모한다는 광고를 봤다. 매년 나오는 광고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 걸 보면 칭찬의 효과가 분명하다. 주제를 고민하다가 내가 제일 잘 아는 것, “나”에 대해 쓰기로 했다. 직업과 연관되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사람들과 근무했던 곳을 적어보고, 나의 감정과 생각의 변화도 생각해 보고, 내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도 생각해 봤다. 글을 쓰면서 내 삶의 일부가 정리된 느낌이었고,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오랜만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같아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하나를 잃어버리거나 빼앗기면 다른 하나를 선물로 받는다는 것이다. 단순히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는 것과는 시선의 방향이 다르다. 또래 친구가 없어 외로웠던 직장에서는 친구와의 웃음 대신, 자연의 아름다움과 이치를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았고, 젊은 시절의 총명함과 활기를 잃은 대신, 초라함이 주는 진솔함을 알게 되었다.
삶이 버거워 작은 일에도 화를 냈던 사람은, 상대방의 행동을 보면서 그런 사람을 금방 알아차린다. 나도 그랬기에. 오랜 시간 풍랑에 의해 찌그러진 배처럼, 우리도 각자 삶의 풍랑으로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있고, 그것 때문에 서로 불협화음을 내기도 한다. 풍랑이 없는 삶은 없기에 그 누구도 우아하지 않다. 찌그러졌다면 찌그러진 대로 소중하다. 나도 남도 막무가내로 평가하지 않고, 소중함으로 마주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아직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고, 아직도 우울의 늪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언니의 그 칭찬 한마디 덕분에 글 쓰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