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꿈이 없는 줄 알았다. 잘 생각해보니까 난 꿈이 없는 게 아니다. 내 꿈은 누군가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삶이다. 내 글에 눈물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 건 내 시선이 눈물 머금은 이에게 가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면 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지만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서 지금 나이에 일을 해야 하지만 투정을 부릴 수 있는 평범한 남편과 갈수록 소중함을 느끼는 자랑스러운 두 명의 아들이 있다.
난 나를 위해 울기도 하지만 다른 이의 마음이 느껴져 울기도 한다. 어쩌면 내 눈은 항상 울 준비를 하고 있는 거 같기도 하다. 누군가를 위해 운다는 것, 이것이 위로가 아닐까? 물론 당사자가 모르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다. 일상적인 일정을 제외하면 난 게을러서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가 생각나면 같이 만나서 논다. 지금껏 그냥 평범하게 흘러갔던 그런 시간들이 나의 꿈을 채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 비추어 보면 뚱뚱한 공룡이 되어버린 나. 나를 돌아보며 그런 건 필요 없다고 옆에 팽개쳐 두었던 것들이 다시 보인다. 그런 게 내 꿈이었는데.
뚱뚱한 공룡은 왜 날아야 할까? 난다는 건 성취가 아니다. 자유로움이다. 그냥 꿈을 마음껏 실천하는 거다.
난 습작 같은 글이지만 글을 쓰면서 뭔가 희망을 봤다. 꿈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 같은. 거기에 더하여 선 하나로 그리는 유치원생 수준의 그림을 그리며 난 너무 행복하다. 나에게는 그것조차 새로운 시도다. 그냥 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가도 괜찮다. 나도 소중하니까.
난 내가 뚱뚱한 공룡으로 남아 있길 원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뚱뚱함을 털고 나만의 독특한 개성을 추구할 거다. 뚱뚱한 공룡은 내 삶의 증인처럼 남아서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게 될 거다. 이런 감정들을 지나 지금의 나로 왔노라고. 지금 그 모습이어도 괜찮다고. 느린 걸음이어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