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을 못쓰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결국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로 시작하는 글 발행 안내 알림을 받았다. 쓰는 근육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글에 동의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닌데 안 쓰다 보니 쓰는 것에 머뭇거려진다. 만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막상 만나면 무엇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그래서 오늘은 글을 꼭 쓰려고 작정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무슨 말을 먼저 할까?
바쁘기도 했지만 내 글이 혹시나 너무 힘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에 글쓰기가 머뭇거려졌다. 이해와 허용에 썼던 누군가에 대한 아픈 마음이 얼마나 큰지. 크로키북을선물 받고 제일 첫 장에 생각 없이 쓴 글이 이거다.
별이 운다
거리를 걸었어
아무 생각 없이
아니야 생각이 너무 많아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걷다가 네 생각이 났어
사실 널 봐도
아무 말도 못 했을 거야
젊은 시절의 넌 이제 없으니까
지금의 넌 많은 것을 포기했을 텐데
예쁜 눈, 긴 머리, 환한 미소
되돌릴 수 없을 텐데
미안하다는 말이 미안해
하늘에 별이 유난히 빛나
금세 터질 거처럼
별이 잔뜩 담고 있는 건
슬픔인가 봐
별의 눈물이 고운빛 되어
내 마음에 떨어져
모두 별을 보고 꿈꾸는데
별이 이렇게 슬퍼도 될까
별의 슬픔과 눈물도 사랑이기에 또다시 꿈꾸게 하기에 다시 글을 쓴다.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몇 달 전까지, 나의 한쪽 송곳니는 유치(乳齒)였다. 영구치는 위쪽 잇몸 아래 자리 잡고 있어서 만져질 만큼 솟아있었다. 영구치가 잇몸을 뚫고 나올 가능성도 있고 그러면 큰 병원을 가야 한다고 해서 그 잇몸을 볼 때마다 두려움이 있었다.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할 거 같은 유치를 뽑고, 잇몸 속 영구치를 제거하고 임플란트를 했다. 그 과정이 5개월쯤 걸렸고 마무리를 한지 얼마되지 않는다.
그 유치의 버팀과, 그 영구치의 작은 위협이 사라진 나.
내가 늦되다고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는 버티고 있던 유치 때문이었을 거다. 임플란트가 마무리된 후, 난 아직 많은 것을 시도해보지 못한 어린 나에게 말했다.
"자, 넌 이제 유치가 빠졌어. 느려도 괜찮아. 너 하고 싶은 거 해."
그리고 손이 움직이고 싶은 대로 그린 그림을 보고, 좋은 엄마처럼 의미를 부여해 준다.
그래서 바빴다. 이거 하느라~^^
글 제목에 있는 그림은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선물한 그림이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실 선물이랄 것도 없다. 검은색 네임펜의 흔적 담은 A4용지일 뿐이다. 다만 검은색 네임펜의 흔적에 내 마음과 생각이 담겨있기에 내겐 주고 싶은 선물이었다.
그림의 제목은 '삶 담은 얼굴'이다. 이것도 처음부터 이런 걸 그리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다. 뭐 그리고 싶냐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이것, 저것 생각나는 대로 그렸다. 처음 시작은 물고기 모양이었는데 안에 동그라미를 넣었다가 눈이 되는 그런 식이다.
눈처럼 보이는 부분의 맨 위는 주름, 아래는 눈썹이고, 눈동자 안에는 반짝이는 것들은 삶의 경험과 사랑이다. 그 아래는 나이 들었음과 그동안 봐왔던 것을 표현한 거고 그 아래는 입이다. 오른쪽 길게 늘어진 건 아직 못다 한 말들이다. 그리고 그 아래는 턱선. 그 안에도 많은 것들을 닮고 있다. 오가며 만났던 많은 사람들과 예쁘게 살기를 갈망해서 만들어가던 곡선. 눈 옆에 있는 게 코다. 코 옆에 점도 있다. 이건 개성이다.
반대쪽에는 나무로 한쪽 눈을 대신 표현했다. 혼자 살면 자유로웠을 삶이 가족이나 공동체에 메여 똑바로 자라지 못하고 한쪽으로 잡아당겨져 갇혔다. 별처럼 표시된 부분은 꿈이다. 꿈꾸던 것들을 내려놓고 화려하고 예쁜 꽃을 피우고 싶었지만 보이는 건 다 검은 꽃이다. 위에는 막혀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초록잎들이 조금씩 보인다. 그리고 이 그림의 핵심은 그 끝의 두 개의 잎이다. 색은 없지만 그건 연둣빛이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허무한 삶이라고 느껴지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지만 생명이 뻗어나간다. 그 생명은 사랑이고 희망이다.
이 그림은 내 삶의 얼굴이기도, 그분 삶의 얼굴이기도, 이 글을 읽는 분들 삶의 얼굴이기도 하다.
허무하기만 한 삶은 없다. 난 힘든 시기를 보내는 그분께 연둣빛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좌절과 상처로 깎이며 각자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져 간다. 때론 너무 힘들어서 '살려주세요'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스스로에게 스스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따스한 엄마가 되어주면 좋겠다.
또 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는 건 너무 느리고 때로 멈춰 서야 한다. 그래도 함께 가야 함께 웃을 수 있다. 웃다의 ㅅ이 깨져서 운다가 된다. 서로의 애씀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깨진 ㅅ의 조각을 함께 찾고 함께 웃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