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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May 11. 2024

'뚱뚱한 공룡'은 날았을까

난다는 게 뭘까?

유치원생처럼 사람을 그려놓고, 아이들에게 이 그림(왼쪽) 어떠냐고 물어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되어간다. 난 내가 못하는 것에 기대치가 엄청 낮아서 행복한 타입이다. 그땐 내가 그렇게라도 그림을 그렸다는 것에 흐뭇했었다.

오른쪽은 가장 최근 아이들에게 보낸 그림이다. 아마 지금도 사람을 그리라면 전처럼 그릴지도 모른다. 그 사이 얻어온 오일파스텔을 사용하게 되고, 아들이 사 온 아크릴 펜 덕분에 아크릴 물감도 사용하게 되면서 그림을 그리는 폭이 좀 넓어졌다.


내 그림은 처음 시작할 때 의도가 없기 때문에 맘에 들 때까지 몇 번을 뒤엎는다. 하나의 그림이지만 몇 개의 그림이 겹쳐져있는 샘이다. 적당히 형태를 갖추면 멈추는데 이제 제법 맘에 드는 것도 생겼다. 이젠 선으로 그린 그림에 색을 칠하는 시도도 하고 있다.

2년 전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다.   




뚱뚱한 공룡 날다


불편함에  순응하며

개척정신이라고는

1도 없는 너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처럼

마냥 하룻강아지인 너


불필요한 생각과

정리되지 않은 지식으로

길을 잃은


계획 없이 흘러간 시간이

눈덩이 굴리듯

너를 굴려서


도태된 공룡처럼,

뚱뚱한 공룡처럼

만들었구나


느지막이

한줄기 빛처럼 다가온

희망을 잡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살금살금

변화를 시도하자


꿈을 날개 삼아

뚱뚱함을 털어내고

사뿐히 날자


시도하고 기대하며

그날을 보자

뚱뚱한 공룡 나는 그날을


2년 전, 난 나를 뚱뚱한 공룡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언젠가 날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

그때 내가 생각하는 '난다'는 자유로움이고 그냥 꿈을 마음껏 실천하는 거였다.

글로, 그림으로 마음껏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 지금 모습은 나는 게 아닐까?


그럼 난 어떻게 날게 됐을까?




"아가야,

네가 원하는 대로 날개를 달아줄게.

어때? 예쁘지?

그런데 아가야,

너에게 날개는 필요 없어.

떨어질 일이 없으니까.

지금처럼 그렇게 걸아가면 돼.

네 앞에 절벽 따윈 없어.

네 날개는

누군가의 추위를 덮어주는 데 사용하렴."


"그런데 날고 싶으면요?

제가 날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날려면 벼랑 끝에 서야 하는데 괜찮겠어?

날개는 그곳을 벗어날 때 필요하거든."


"그래도 제가 못날 거라고 비웃은 사람들에게

당당히 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시간이 흐름)


"괜찮아?"


"그런 거 같아요.

근데 제게 진짜 날개가 있다는 걸 왜 말씀 안 하셨어요?"


"그건 말할 수 없어.

진짜 날개가 있어도 못 펴는 사람도 많거든.

잘했어."


"이 모습인데요?

전 제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는데요."


"아니야. 충분히 잘했어."


날고 싶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뭔가를 해내고 싶은 마음. 내가 할 수 없을 거 같은 일을 나도 모르게 해내는 날개가 있어도 결국 만신창이가 될 거다. 내 모든 걸 쏟아부어도 부족한 모습일 테니까.

그것이 선한 마음, 사랑을 전하는 일이라면 더욱더 상처받고 포기하게 될 거다.

그래도 그 사랑은 없어지지 않고 어딘가를 여린 빛으로 비추고 있을 거다.




공룡이 날기 바라는 글을 쓰면서 난 끝에 이렇게 썼었다.


난 내가 뚱뚱한 공룡으로 남아 있길 원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뚱뚱함을 털고 나만의 독특한 개성을 추구할 거다. 뚱뚱한 공룡은 내 삶의 증인처럼 남아서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게 될 거다. 이런 감정들을 지나 지금의 나로 왔노라고. 지금 그 모습이어도 괜찮다고. 느린 걸음이어도 괜찮다고.


아마도 공룡이 난 거라면 신이 이런 마음을 아시기 때문 일거다. 타인을 위한 사랑의 마음. 그 마음을 전하라고.


그리고 아주 작은 불씨지만 놓치지 않고 소중히 여긴 마음 때문일 거다.


"네 글은 진솔한 거 같아."

"너 창의적이니까 그림 한번 그려봐."


내가 잘하는 걸 찾길, 나의 존재 가치를 알길 갈망했던 마음이 이 말들을 붙잡았다.

난 글 덕분에 아빠 삶의 마지막 1년을 기록하며 죽음을 다른 이들과 함께 생각했고, 요즘 그림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마음을 전한다.


공룡 같은 내가 지나온 삶의 과정이 누군가에 위로가 되길 소망한다.

"지금 그 모습이어도 괜찮아. 느려도 괜찮아. 나는 더 했는데. 유치원생이라 생각하고 네가 관심 가는 거 하면 돼."


그리고 내 삶 전체를 통해 알려주고 싶다.

"신이 널 아주 많이 사랑해~"


신은 누구에게나 고유의 재능을 주셨다. 간절함으로 찾을 때 누군가의 말이 희망이 되고 날개가 될 거다.

무능함도 무기력함도 털고 무언가 시도하기 바란다. 다른 이들과 따스함을 나눌 무언가를.


나는 새로운 의미로 날고 싶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날다의 의미는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더 멀리 가다.'다.




아빠가 없는 첫 어버이날을 보냈다. 조금은 슬픈 마음이었는데, 아들 여자친구에게 받은 꽃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종류의 꽃들로 채워진 바구니다. 꽃들의 종류만큼 세심하게 신경 썼을 아이의 마음. 그 마음 담은 바구니를 보면서 우스운 생각을 했다.

아빠의 빈자리를 그 아이로 채워야겠다고~^^

누군가를 보내고 누군가를 맞는다는 건 이런 건가 보다. 나의 마음도 더 넓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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