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회 딸들을 만났다. 그날은 유난히 덥고, 비도 내리고, 새벽부터 여러 일정으로 긴 하루였지만 딸들을 보는 것만으로 기쁨과 감사가 밀려왔다.
20대 중반이 되었지만, 중학생 시절의 그 고운 마음과 예쁜 모습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이 글은 나와 딸들이 생각나는 대로 열거한 단어들로 만든 글이다. 색다름, 편안함, 힐링, 귀한 만남, 상큼함, 추억, 비, 우산, 애어른, 길라잡이 등.
딸들 중 한 명은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고, 다른 한 명은 그 친구를 수호천사처럼 보호해 주었다. 당시 괴롭힘을 일삼던 아이가 교회에 다른 친구들까지 데리고 오기도 했지만, 난 교사였음에도 그 사실을 몰랐다. 그 아이 또한 사랑받아야 한다는 마음에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속이 깊은 딸들이다.
그날 처음으로 그 이야기를 나눴다. 딸이 이제야 당시 그 아이를 마주하면 이유를 물을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생기면 어른에게 말하고 지혜를 구하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만약 그때 어른들에게 이야기했더라면 어른들은 어떻게 했을까? 나의 딸들은 스스로 그 깊은 고통을 안고 사랑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어른들은 그 깊이까지 미처 따라가지 못했을 거다.
만약 딸들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면, 또는 나에게 이번 여름이 없었다면?
이번 여름이 없었다면 난 누군가의 고통을 그토록 깊이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그 고통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상상조차 못 했을 테니까. 앞으로 난, 어떤 상황에서도 '그래도 사랑해야 하지 않겠니?'라는 말은 하지 않을 거다. 위로는 공감이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고, 그 이후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딸들을 보며 '내 삶의 흔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키운 건 아니지만 그들의 따스함 한 조각이 내 삶의 흔적이라면, 그래도 잘 살아온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난 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고 싶다. 그래서 딸들은 나의 길라잡이다. 난 나의 자랑스러운 딸들과 함께 사랑의 불씨를 나누며 이 땅의 삶을 잘 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