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youngjoo Oct 23. 2021

아이들에게만큼은 웃어주기

어른들에게 웃어주기보다는 쉽다


아이를 낳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하던데, 나에게 이 말은 와닿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정확히 실체를 알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내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알기에 다른 모든 사람들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설명이 저 말을 가장 잘 설명하는 기본타입같은데, 사람들이 저마다 모두 소중하다는 건 아이를 낳지 않았어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내 자식을 귀하게 여기느라 남들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오히려 줄어든 것 같은 시기조차 겪었기에 저 말이 구체적으로 와닿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를 낳고, 객관적이고도 확실하게 달라진 것은 있었다. 그건 어른들만 만나던 내 삶에 갑자기 어린 아이들이 한가득 들어왔다는 점이었다. 애 친구들을 내 친구들보다 더 많이 만나는 삶이 몇년이나 지속되었다. 아이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어린 아이들도 확실하게 성격과 특성이 제각각이고, 생각보다 어른인 나도 그 모든 성격들을 다 포용할 수 없다는 점을 느끼게 되어 좌절감이 들었었다.


오히려 평소같으면 포용하거나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것들도, 내 자식과 연관되면 문제가 커지는 느낌도 받았다. 아이가 유치원과 학교를 거치면서 당연히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유형의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서툴렀고, 당황했고, 분노했다. 고작 7,8세 남짓한 아이들을 욕하는 건 그래도 아니다 싶었는지 늘 내가 덧붙이는 레퍼토리는 비슷했다. “아니, 애를 왜 그렇게 키운대?”, “왜 그렇게 놔둔대?” 하면서 아이의 문제를 양육자의 탓으로 돌리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런 레퍼토리는 내 머릿속에서만 돌아가는 거였고, 입밖에 낸적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다 그 말을 입밖으로 냈던 어느 날, 나는 내가 내뱉은 목소리를 들으며 얼어붙어버렸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보였다.


아니, 유치원생을 못마땅해하면서 성격을 분석하고 있는 나 같은 엄마가 제일 이상한거 아니야?
                                                                                                                 


그때부터였다. 아이들의 성격분석(?)을 멈추고 무조건 웃어줘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이. 그들 엄마아빠의 양육방식을 논할 정도로 아이들이 엄마아빠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거라면, 나는 더욱더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정말 아이의 세상은 하루마다 달라질 수 있다. 한 어른의 미소가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나는 믿는다. 그 날의 깨달음 이후로, 아이들에게만은 웃어주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됐다. 물론 은근히 쉽지만은 않다. 여전히 가끔은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아이들도 마주친다. 다행히 나만 이런 어른은 아닌지 ‘요즘 애들은 애들 같지 않다’는 도 심심찮게 듣는 요즘이지만, 요즘 애들이 애들 같지 않은 것도 어쩌면 어른들로부터 받은 미소가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이를 낳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게, 어쩌면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을 말한 거였을까?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미소를 보여주며, 누군가 어쩌면 못마땅해보일지도 모를 내 아이에게도 미소를 보여줄 세상을 바라게 되는 것. 그동안 아이를 키우며,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미소와 이유없는 선행에 기대어왔는지 모른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낑낑 거릴 때 문을 잡아주던 모르는 학생들, 소아과에서 정신없이 접수하고 있을 때 우는 아이를 달래주던 모르는 할머니들, 놀이터에서 아이가 집에 있는 장난감을 찾아 난감할 때 잠깐 다녀오는 동안 아이를 봐줬던 결코 친하지 않던 이웃들. 나도 어떤 상황에서든, 적어도 아이들에게만큼은 미소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건 다른 이들이 보여줬던 이런 미소들 덕분이다.


물론 여전히 쉽지 않다. ‘착하게 보이면 얕잡아본다’, ‘요즘은 웃는 얼굴에 침뱉는다’ 같은 자조가 많이 나오는 세상이고 거기에 나도 적지않게 공감도 하지만, 적어도 사회전체적으로는 선행의 선순환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게 내 아이가 살게 될 세상의 미래를 향한 믿음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전 08화 사지마세요, 입양하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