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쓸데없는 연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고등학생 때, 대형보습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고 탔던 마을버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술에 거나하게 취한 할아버지 한분이 올라탔다. 그는 승객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뭔가 기억나지 않는 안 좋은 소리를 했던 것 같다. 자리에 앉으라는 기사의 말도 무시한 채 한참을 떠들던 그 할아버지는, 버스가 다음 정거장에 멈춰설 때 몸의 균형을 잃고 쓰러지면서, 버스뒷문에 이어진 야트막한 계단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고, 언뜻 피가 홍건하게 고이는 게 보였다. 너무 무서워서, 나는 버스 앞문으로 도망치듯 내려 남은 거리는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그 할아버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소문으로도 들은 바가 없으니까. 아마 버스에 있던 많은 승객 중 누군가가 할아버지를 도와드렸겠지. 하고 말 뿐이었지만, 그냥 도망이나 간 주제에 내 마음 속에는 꽤 오래 그날의 잔상이 남아 나를 괴롭혔다.
거의 20년이 지나고나서, 나는 또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다. 한낮에 도로를 건너고 있을 때였는데, 날개가 부러진듯한 비둘기가 도로 한 가운데에 떨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둘 멈춰서기 시작했다. 안타까움에 질린 사람들과 달리 차들은 -보이지가 않았을테니- 쌩쌩 달리고 있었고 비둘기는 정말 위험해보였다.
119에 전화라도 해야하나 생각하면서 비둘기를 쳐다보고 있을 때, 근처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 세명이 함께 도로 사이로 뛰어들어 그 비둘기를 구출했다. 학생들은 옆에 서 있던 어른인 나를 보며 뭔가 도움을 바라는 눈빛을 보냈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나는 아이를 데리러 가던 길이었고, 길동물을 구출했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여전히 마을버스안에 있던 그때처럼 그저 허둥댈 뿐이었다. 내 흔들리는 눈을 잠깐동안 들여다보던 그 학생들은 이내 눈길을 거두고 자기들끼리 어디론가 향했다.
마을버스 사건을 돌이켜볼때마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다고 합리화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문제집 위에 비둘기를 조심스레 얹어가던 그 학생들을 보며 그런 변명의 여지도 사라졌다. 스스로가 싫어졌다.
백수린의 <여름의빌라>라는 단편소설집을 읽게됐다. 그 중 <고요한사건>이라는 챕터에서, 동네 집값을 위해 길고양이를 독살하는 어른들과, 결국 길고양이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묻어주지도 못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때렸다.
고양이를 수건 따위로 감싸서 공터 옆 화단에 묻어주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고,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런데 현관 앞에 서자 갑자기 한기개 느껴졌다. 문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고양이가 아직 그대로 있긴 한 건가. 옷을 너무 얇게 입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누군가 벌써 치워버렸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 구겨진 신발 위에, 양말도 없이, 까치발을 한 채로.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한 장면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는 평생 이렇게, 나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104)
창밖을 기웃거리기만 하는 보잘것 없는 주인공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치 거울을 보는듯 마음이 시렸다.창밖을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하는 그 ‘착할 뻔했던’ 마음들은 어디로 가버리는걸까.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선한 마음은 우주 어디쯤에 머무는 걸까.
물론 어중간하게 착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들이, 아예 의미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마음이 동했다면 꼭 아주 작은 것이라도 행동으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추운날 길동물이 너무 마음 쓰이면 혼자 ‘안타까워…….’하고 있는 게 아니라 바깥에 얼어버린 물통에 따뜻한 물이라도 새로 부어준다. 새 모이와 고양이 먹을 것도 가끔이라도 나눠주고, 강아지 보호소 사진을 보다가 안타까우면 큰 기부는 못해도 배변패드라도 보낸다. 어려운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에는 돈을 모아 내지는 못하더라도 이미 모여있는 네이버 콩이라도 기부한다.
‘선행’ 이라는 단어 자체가 ‘착하고 어진 행실’이다. 착한 마음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행실이 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행실이 따르지 않는 착한 마음은, 스스로에게도 찝찝함만 남길 뿐이다. 나에겐 아직도 그날 할아버지가 쓰러지던 모습, 그리고 비둘기를 품에 안은 학생들이 나를 쳐다보던 눈빛이 너무도 선명하다.
만약 조금이라도 다친동물을 아픈 마음의 소유자라면, 외우자. 다친동물을 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로드킬당한 동물을 목격하거나 사고가 났을 시. 각 지방지역번호+120.. 고속도로는 한국도로공사로 1588 2504 신고. 정부민원안내콜센터 110. 환경부 콜센터. 128에 전화하면 된다고 한다. 당장 시간이 안된다면 동네 동물병원에서 그런 동물들을 받아주는 곳이 있으니 전화해보자. 다친동물을 도와주는 건 쓰라린 내 가슴이 아니라 전문가의 손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