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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Oct 15. 2021

노점상에서 플렉스하기

노점상 물건 사는 건 착한 일일까?

'선행'도 유행을 탄다. 

80년대생인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돈' 얘기는 어느정도 금기였다. 지금은? '플렉스한다'는 유행어의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을만큼 사람들은 '부'에 열광하는 모습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플렉스’는 무엇인가? '플렉스'와 관련된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있지만 역시 고전이 되어버린 영화<귀여운 여인> 속 리처드 기어의 대사가 줬던 임팩트를 깰 수 있는 건 없는 것같다. "여기부터저기까지 다~주세요!"는 역시 플렉스 계의 클리셰이다. 그거 다 합치면 얼마야? 나는 무리다.      


백화점에서의 플렉스가 어렵다면 편의점은 어떨까? 

드라마 <도깨비> 속 도깨비(공유 분)는 고3인 지은탁(김고은 분)에게 과자가 가득 들어찬 편의점 선반을 가리키며 "이쪽부터 저쪽까지 다 사줄 수 있어"라고 말한다. 과자 플렉스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역시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솔직히 요즘 과자 값 너무 비싸다.  두세개만 사면 만원인데, 이쪽부터 저쪽까지 사면 1년치 간식비는 다 털릴 것이다. 


시장에 가면 어떨까? 해가 질 무렵 동네 시장에 가보면 플렉스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바구니에 야채를 조금씩 담아서 팔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 갑자기 평범한 사람이었던 내가 세상 착한 사람인척, 외치게 된다. 


“할머니 남은 거 다주세요!”


그렇게 나는 할머니의 콩나물, 참나물 떨이를 한다.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플렉스이다.       


이처럼 노점상은, '값이 싼 것', '저렴하고 서민적인 것'을 주로 파는 상징적인 존재다. 주로 먹을 것을 파는 경우가 많은데 대체로 노점상에서 물건을 살 때면 왠지 모르게 '착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먹고 싶어서 사는 거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우스울수도 있지만, 평소 워낙 착한 일을 할 일이 없어서 그런가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붕어빵이나 순대를 살 때도 항상 필요한 것보다 넉넉하게 사는 편이다. 하루는 밤에 친구와 술을 마시고 나오는 길에 타코야키 트럭을 발견하고 남은 타코야키를 전부 플렉스했다. 친구 손에도 타코야키를 들려주고 "아저씨 날도 추운데 힘드시겠다"고 말했더니 친구는 내게 "야. 저 아저씨 아줌마 재벌일걸. 우리 따위가 불쌍해 할 수 있을리가"라고 말했는데, 이건 정말일지도 모른다. 


이 같은 '외제차퇴근혐의'는 요즘 노점상을 바라보고 반대하는 이들의 흔한 시선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불법 탈세의 온상' 이라는 시선도 있다. 사실 한국의 노점상은 지자체의 합의하에 유지되는 극히 일부 합법적 노점상을 제외하면 전부 불법이다. 원칙적으로 상행위자체가 일정한 규모를 갖춘 실내에서만 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은 워낙 ‘언더도그마(약자-언더도그-가 힘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강자-오버도그-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고, 강자가 힘이 세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는 믿음이다)’를 혐오하는 여론이 대세가 되어있다. 실제로 옛날에는 거짓말 좀 보태서 드라마만 틀면 불쌍한 노점상을 깡패들이 뒤엎는 장면만 나온 것 같은데. 요새는 이런 장면은 거의 못봤다. 노점상이 불쌍하다고 '착각' 하며 도와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는 건 정말 바보짓일까? 


내가 사는 동네에 엄청 유명한 옥수수트럭이 있었다. 여름마다 오는 옥수수 쪄주는 트럭인데 동네 주민들에게서 ‘명품 옥수수’라고 불리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엄청 큰 프렌차이즈 빵집 바로 앞 도로에 자리를 잡은 트럭인데, 빵집에는 손님이 없어도 트럭 앞에는 줄이 엄청났다. 운이 좋아야 사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정당하게 세주고 장사하는 가게도 아닌데 사먹지 말라’고 하는 여론도 동네커뮤니티에서 일었다. 그 가게는 어떻게 되었을까?


동네 빈 상가에 자리를 얻고 간판을 걸고 장사를 시작했다.     

 

사실 요즘 상가세가 얼마나 비싼지. 그럼에도 용기를 내서 가게를 얻고 세금을 내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사람들임을 나도 세금을 내보면서 깨닫게 됐다. 


확실히 선행도 유행을 탄다. '유행'이라기보다는, 적재적소에 맞게 해야 한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직도 할머니가 저녁에 야채를 떨이하는 모습을 보면 그냥 지나칠 자신이 없지만......착한 척 하는 것도 어쩌면 배워야 할 수 있는 일인 듯하다. 착한 일을 하겠다는데도 이거저거 알아야 하는 것이 많은 세상이라는 건 어쩐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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