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하는 기쁨에 관하여
요가입문 6년 전 | 우붓
2018년의 어느 날 아내가 발리 우붓(Ubud) 여행을 제안했다. 당시 아내는 요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시기였는데, 우붓은 요가의 성지와 같은 곳이기 때문에 요가를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아내의 제안은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간혹 호텔에서 제공하는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평소에도 매일같이 요가를 하는데 굳이 여행지에서도 요가를 해야 한다니.
시간은 우리 부부를 우붓의 산속 깊숙한 곳의 요가원에 옮겨다 놓았다. 요가원에 일찍 도착한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한편 평생 축구를 즐겨온 나는 축구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상대팀 선수들의 근육을 눈여겨보는 버릇이 있었다. 근육의 형태를 통해 그 선수가 몸싸움이 능한지, 속도에 능한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긴 머리에 상의를 탈의한 채로 명상 중인 남자분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도인과 같은 느낌의 분이었는데, 축구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의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축구와 같이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기 위한 근육과는 거리가 멀었다. 굳이 비슷한 형태의 종목을 꼽자면 같은 동작을 오랫동안 반복하기 위해 발달한 마라톤 정도가 떠올랐을 뿐이다.
요가를 수련하는 중간중간 그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움직임 사이사이에 근육이 섬세하게 긴장되는 것을 바라보며, 모르긴 몰라도 그간 요가를 수련해 온 그분의 노력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전혀 새로운 근육의 형태를 경험하며 '과연 요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간직한 채로 우붓 여행을 마무리했다.
요가입문 1년 전 | 속초
우붓이 좋은 경험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붓의 경험이 요가로 직접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서 속초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아내가 택한 요가원은 속초 영랑호에 위치한 ‘산요가’였다. 영랑호의 잔잔한 수면 너머로 울산바위의 위용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요가원이었다.
‘산요가’는 우붓의 요가원처럼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모여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 것으로 보아, 지역 주민 분들이 꽤나 계신 곳이었다. 요가원의 지역 주민 분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함께 요가를 수련했는데, 평생 축구를 즐겨온 나에게 이것은 매우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나는 20년이 넘게 축구를 즐겨 오면서 여행지에서 지역 주민 분들과 축구는 둘째 치고, 여행지에서 축구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 거주지가 아닌 곳에서 22명의 선수와 꽤나 넓은 운동장을 마련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굳이 비슷한 경험을 꼽자면 소속 팀과 MT를 가서 자체경기를 즐긴 것 정도이다. 다만, 그 경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축구만 했다는 점, 현지인과의 소통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 글에서 말하는 ‘여행’과는 거리가 있다.
반면, 요가는 축구와 달리 공간만 허락된다면 언어,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요가수업 전후에 지역 주민분들과 짧게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속초를 조금 더 다양한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여행다운 여행을 경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가입문 후 | 하와이
이미 요가는 아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요가에 대한 그간의 좋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주말마다 요가를 수련하는 사람이 되었다.
엔데믹을 맞이해서 하와이로 여행을 떠났다. 아내는 요가원에서 수련을 하는 대신, 평소에 본인이 수련을 하던 시간에 맞춰 호텔에서 요가 수련을 이어갔다. 혼자 남겨진 나는 산책으로 나만의 여행을 즐겼다.
한편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여행이 지속될수록 몸이 불편해졌다. 혼자서는 정확히 어느 부분이 불편한지 조차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아내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내는 이미 요가수련을 시작한 터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문득 요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호텔방의 캐리어를 한쪽으로 정리해서 요가를 할 공간을 확보했다. 요가 매트는 없었지만 다행히 호텔 바닥이 카펫 재질이어서 크게 무리는 없어 보였다. 자리에 앉아서 간단히 명상을 하고, 기억 속 선생님의 수업을 떠올리며 요가 수련을 시작했다. 자세를 거듭할수록 신기하게도 불편한 부분을 섬세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엉터리 요가를 마치고 나서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과 동시에 행복감이 밀려왔다. 처음에는 행복감의 원인이 단순히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에너지를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로부터 ‘혼자’ 요가를 수련한 점에 대한 칭찬을 받고서, 행복감의 본질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완전해졌음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초에서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20년이 넘게 축구를 즐겨 오면서 한 번도 여행지에서 축구를 해본 적이 없음을 고백한 바 있다.
좋아하는 스포츠를 다양한 지역, 국가, 인종의 사람들과 나누는 경험을 고대했지만, 취미 이상으로 발전하기는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다. 축구를 직업으로 삼고 싶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축구에 오랜 시간을 투자했지만 축구가 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가면 갈수록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다는 뜻이다.
비록 제한적인 경험에 근거한 판단이지만, 요가는 축구와 달리 일상 속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하와이에서의 경험을 계기로 비일상적인 여행에서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다는 요가만의 장점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