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페스티벌, 원더러스트(wanderlust)
원더러스트는 요가, 명상, 필라테스 등 웰니스 라이프 스타일 관련 페스티벌이다. 인스타 계정의 활동을 미루어 짐작했을 때, 활동 무대는 한국을 비롯한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콜롬비아 등 글로벌 주요 국가이고, 한국에서는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2024년 6월 22일 (토) 오전 06:00
평소보다 30분가량 일찍 눈을 떴다. 반려견 토리가 힘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지난밤 잠을 설친 눈치다. 창문을 열어보니 역시나 비가 내리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토리는 비가 오면 구석에 숨어서 바들바들 몸을 떨곤 한다. 불쌍한 토리.
하루를 일찍 시작한 이유는 원더러스트(wanderlust)에 참여하기 위함이다. 밤새 내린 비로 땅은 젖어 있었고,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수시로 와이퍼를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아내와 나는 웃으면서 "아무래도 오늘 행사는 망한 것 같아."라는 대화를 나누었다.
오전 08:30
서울숲에 도착했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공원이다. 다행히 비는 잦아들었지만 당장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것 만 같은 날씨였다. 주차장에서 행사장까지는 도보로 약 15분이 걸렸는데, 목적지가 같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말 오전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원더러스트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크게 틀어진 음악은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고, 마련된 포토부스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참가자들은 서루의 안부를 물으며 반가워했고, 저마다 시간표를 보고 수업 혹은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즐겁게 나누는 듯했다. 그야말로 페스티벌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요가 주변인으로써 이 모든 모습이 신기하게만 다가오던 중, 잠깐 축구 대회의 풍경이 떠올랐다. 원더러스트가 축구 대회와 일대일로 비교될 수는 없지만 같은 활동을 위해 여러 사람이 모였다는 점 때문에 떠오른 것 같다.
일단 축구 대회는 일정표보다는 대진표가 제공된다. 대진표를 통해 경기에 대한 기대감도 기대감이지만, 상대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그리고 감독을 중심으로 하나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사람들의 표정은 축구 대회나 원더러스트나 밝긴 밝다. 다만, 축구 대회의 밝음 밑에는 승리에 대한 목마름이 숨겨져 있는 반면, 원더러스트의 밝음은 그저 밝음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리에 대한 경쟁과 집착, 부상에 대한 위험에서 벗어나 온전히 이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신선했다.
오전 09:00
요가원의 다른 회원분들과는 티켓부스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분들을 기다리며 다른 참가자들을 구경했다. 역시나 사람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 20~30대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50대로 보이는 분들도 눈에 들어왔다. 여성의 비율이 높긴 했지만, 그렇다고 여성의 비율이 절대적이라 하기에는 남성 참가자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잠깐 일본에서의 경험을 떠올렸다. 최근 일본에 거주 중인 가족의 건강 문제로 일본 후쿠오카에 다녀왔다. 시내를 걷다가 다양한 연령대(대략 30대, 40대, 50대)로 구성된 사람들이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직장 동료들은 아닌 것 같고, 비슷한 도구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아 가족보다는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에서는 회사를 제외하고 30, 40, 50대가 함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운 것 같다. 이 사회에 젠더갈등, 세대 간 갈등이 팽배해져서 그런가, 내가 상상 가능한 세대를 통합한 모임은 회사생활을 제외하고 조기축구회의 석식 혹은 결혼식과 같은 가족모임이 전부이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세대와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와의 만남은 그들의 노하우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음 세대와의 만남은 그들의 현재를 통해 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기회에 대한 목마름을 느끼던 와중에, 요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남녀노소가 벽 없이 한데 모여있는 광경을 바라보며, 요가가 특정 나이대 혹은 성별의 전유물이 아닌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쉽게 말해서 나중에 나이가 들어도 요가를 통해 눈치 보지 않고 지역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오전 09:30
요가 씬에서 유명하신 분들도 원더러스트에 많이 자리하셨는지, 누군가 지나갈 때마다 긍정적인 수군거림이 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상 깊은 점은 요 가인들이 유명인을 두고 나누는 대화였는데, 모르긴 몰라도 상당 부분의 주제는 그분들이 인도 어디에서 요가를 배워 왔고, 어떤 스타일의 요가를 수련하고 싶다면 꼭 가봐야 한다는 식의 대화가 주를 이루는 것 같았다.
사실 이 부분은 요가의 주변인인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으로 축구 대회에도 유명인이 있다. 손흥민, 박지성 급의 선수가 아니어도 어떻게 알려졌는지 그들에 대한 영웅담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영웅담은 보통 비교적 최근까지 선수생활을 하다가 부상으로 일반인의 삶을 살고 있다던가, 지난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다는 식의 이야기다. 다시 말해, 보통 그들이 우리 팀에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로 맞춰진다.
그런 점에서 요가와 축구는 유명인을 두고 오가는 대화는 결이 매우 달랐다.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를 경쟁의 대상이 아닌 배움의 대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축구라는 취미생활을 할 때조차도 경쟁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12:00
안타깝게도 행사 당일날 많은 비가 내렸고, 야외에서 예정되어 있었던 많은 행사들이 제약을 받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환불도 이루어진 것 같았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것을 보고 웰니스, 특히 요가가 이미 이 사회에 대중적으로 자리 잡았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축구는 월드컵, 테니스 및 골프는 각종 투어에 운집한 관객의 수를 보고 대중성을 가늠해 왔다. 반면, 요가는 그러한 경험이 없어서 못내 아쉬웠던 참이었다.
삶의 질이 높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챙기는 수요가 증가한다는 말을 좀 더 공감하게 되었다. 요가가 삶에 자리한 앞으로의 라이프스타일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