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프관종의 치료과정
출산하고 이틀이 지난날,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있는 시온이를 보러 갔다.
2021년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나는 시온이를 출산한 직후에도 아기를 안아볼 수가 없었고,
지금 아기를 보러 가는 이 순간에도 인큐베이터 밖에서만 아이를 바라봐야 했다.
이제 나는 곧 퇴원인데.. 이렇게 집에 가면 언제 시온이를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내가 입원해 있던 본관 13층에서 시온이가 있는 어린이병원 5층까지는 거리가 꽤 멀다.
연결통로를 지나면 차가운 바람이 많이 느껴진다.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몸을 웅크리며 걸었다.
그런데 뭐, 나 하나쯤 추우면 어떠랴. 시온이를 볼 수 있다는데.
시온이를 만나려면 조금 특별한 준비를 해야 했다.
양손을 소독하고, 소독된 가운으로 갈아입고, 신발도 바꿔 신어야 한다.
그리고 체온을 잰 후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직접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10명 남짓의 아기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곳에 들어선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큰 병실 가득히 들어찬 아기들의 침대, 곳곳에서 울려대는 아기들 울음소리, 온갖 기계음들, 분주히 움직이는 의료진들..
내가 생각한 신생아 집중치료실과는 완전히 달랐다.
나중에 간호사 선생님께 물어보니 현재 52명의 아기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아기들이 아픔과 싸우고 있구나..
숙연해졌다. 어린 생명들을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에 한없는 응원의 마음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시온이의 인큐베이터로 다가갔다.
우리 시온이.
한 없이 작고 여린 몸에 큰 종양이 있고, 여러 호스가 달려있는 모습에 나는 저절로 눈물이 났다.
종양이 기도를 막지는 않았지만, 누를 가능성이 커서 인공 삽관을 하고, 분유도 코로 먹는 상태라고 했다.
우리 아기.. 저렇게 작은데, 저 큰 종양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 입으로 먹고 싶을텐데.. 코로 먹는 게 힘들지 않을까? 온갖 생각을 했다.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이 아니면 시온이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기에..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시온아, 엄마는 먼저 집에 가. 엄마가 먼저 가서 집을 잘 준비하고 있을게. 시온이는 이곳에서 꿋꿋하게 이겨내고 있어야 해. 널 힘들게 하는 종양을 제거할 수 있을거야. 엄마가 응원하고 기도하고 있을게.
시온이 곁에 서서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다른 아기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시온이와 인사를 나누고,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병원 출입문이 열렸는데, 겨울 찬바람이 그렇게 차가울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기와 같이 나가는데, 우리는 왜 아기를 이곳에 두고 가야 할까.
혹시 몰라서 준비해 왔었던 분홍 겉싸개를 고이 품에 안고 집으로 향했다.
시온아 얼른 나아서 같이 집에 가자.
시온이는 그 후 며칠이 지나 한 번 더 MRI를 찍었다.
MRI 결과 양성 림프관종이 맞았고, 사이즈가 5cm로 처음 발견될 때보다 커져있었다.
불행히도 목 쪽뿐만 아니라, 혀 아래에도 2개나 더 종양이 발견되었다.
양성이라서 아주 위험한 종양은 아니지만, 아이가 성장해감에 따라 같이 커질 수 있고, 위치상 기도를 누르고 있기에 신속한 치료가 필요했다.
시온이를 담당하셨던 소아외과 교수님은 처음엔 피시바닐이라는 약물 치료를 시도해 보자고 했다.
병원마다 림프관종 치료법이 다르지만, 피시바닐은 가장 많이 시도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피시바닐은 일부러 염증을 일으키는 주사이다.
주사의 약물이 종양 속에 들어가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면, 열이 나면서 종양부위가 크게 부어오르게 된다.
1,2주가 지나면 서서히 염증이 빠지면서 종양이 제거된다고 한다.
그러나 시온이의 림프관종은 치밀하게 작은 방처럼 되어있는 구조라 약물이 구석구석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하셨다. 그래도 일단 해보자고, 교수님께서 결정을 내리셨다.
피시바닐 시술은 아기를 전신마취하고 진행하는데, 대략 40분 정도가 걸린듯하다.
수술실 앞에서 남편과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기다렸다.
시술을 마치고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이동하는 시온이를 잠깐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시온이 얼마나 아팠을까. 지금 춥지는 않을까.
얼른 안아주고 싶다.
인형처럼 작은 아기에게 너무 고생했다고, 잘했다고, 뜨거운 칭찬을 보냈다.
부디 피시바닐 시술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시술한 지 2주 정도가 지났지만, 예상대로 시온이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래도 중간에 교수님께서 림프액을 주사로 좀 빼주셔서, 이때부터는 인공삽관도 하지 않고 입으로 분유를 먹는다고 했다.
우리 아기 왜 이렇게 뽀얗고 예쁠까?
그러다가 처음 받아본 시온이의 눈 뜬 사진.
엄마! 나 여기 있어요. 잘 이겨내고 있어요. 얼른 보고 싶어요.
시온이가 왠지 이렇게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시온아, 너 정말 예쁘구나!
네가 태어난 날 내렸던 하얀 눈처럼, 너는 정말 하얗고 참 예쁘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을 얼른 마주 보고 싶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고슴도치 엄마였다.
결국, 교수님의 수술 결정.
거의 2주 동안 매일 시온이를 찾아보며 수술을 고민하신 교수님께서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약물로는 제거에 한계가 있기에, 시온이가 너무 어려서 수술의 위험이 있지만 그래도 해보자고 하셨다.
얼굴에는 온갖 신경이 지나가기에 매우 위험하고, 혀 아래 2개의 종양도 함께 제거하는 큰 수술이 될 거라고 하셨다.
굳게 닫힌 수술실 문 앞에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른다.
이때는 코로나가 한창이라 보호자 대기실도 없어서, 이 문 앞에서 서성대며 남편과 기다렸다.
수술이 길어졌기에, 병원 한 구석으로 가서 남편과 저녁도 먹지 않고 계속 기다리고 기도했다.
장장 6시간이 걸린 수술..
앞 수술이 밀려 저녁 5시쯤 시작된 수술은 밤 11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무척 피곤한 모습으로 수술실에 나오신 교수님은, 우리에게 제거된 종양을 직접 보여주셨다.
성인 손가락 4개를 합친듯한 큰 사이즈의 종양.
시온이를 괴롭혔던 종양이 깨끗하게 제거되었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어찌나 감사했던지.
그 순간 나에게 교수님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히어로였다.
시온이는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이동해서 회복의 시간을 가졌다.
그날 밤, 시온이가 이렇게 잘 자고 있다고 간호사선생님께서 사진을 보내셨다.
우리 아기.. 많이 아팠을 텐데.. 얼른 상처부위가 잘 아물면 좋겠다.
사진을 보며 잘 자고 있는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수술부위에 고통을 느낄 아기 때문에 마음이 저렸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병원에서 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시온이의 목을 짓눌렀던 큰 종양이 보이지 않는다.
혀 부위도 잘 아물어서 입으로 분유를 먹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 함께 왔다.
그로부터 며칠 뒤, 상처부위에 거즈를 떼어낸 시온이.
이제는 혼자 있는 걸 심심해해서, 간호사 선생님들께 계속 놀아달라고 칭얼댄다고 했다.
우리 아기, 얼마나 심심할까.
얼른 엄마 곁에 오렴.
수술 부위가 잘 아물어서 더 이상 림프액이 새어 나오지 않고, 아기가 입으로 분유를 잘 빨게 되면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날이 언제 올까?
*지나간 치료과정을 떠올려보며 글을 쓰니.. 시온이가 더없이 보고 싶어 지는 저녁이네요..^^
시온이가 힘든 시간들을 정말 잘 통과했었습니다.
지금도 천국에서 엄마를 응원하고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림프관종을 앓고 있는 많은 아기들을 응원하고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