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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주 Nov 13. 2021

유일한 엄마 노릇

림프관종 두번째 수술날

 

시온이가 간호사에게 안겨 수술실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수술대기실 침대에 앉아 그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다. 조금전까지는 내 품에 아기가 있었는데.


 우리집 둘째, 시온이가 목과 혀에 생긴 몹쓸 종양으로 (림프관종: 림프관에 생기는 양성종양. 아기 목에 주로 생기는 선천성 림프기형) 벌써 2번째 수술을 받는다. 어제는 입원하는 첫날이었다. 링겔주사를 위해 간호사가 아기 팔에 혈관을 찾았다. 혈관이 너무 작아 찾기가 힘든 바람에 몇 번이나 바늘을 쑤셔댔다. 시온이는 날카로운 고통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구 몸부림쳤다. 나는 당장에라도 시온이를 안고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 생각은 깊숙한 곳에 묻고 아기가 못 움직이게 돌처럼 버텼다.


 시온이와 병원생활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바로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다. 아기 환자를 돌보느라 제대로  먹어서,   씻고 잠을   자서가 아니었다. 엄마로서, 아이의 가장 가까이에서,  어떤 고통도 아이를 침범하지 못하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럴  없는 현실에 직면할 때였다. 의료적인 조치를 위해서라면 아기에게 어떤 아픔이 가해져도 인정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주삿바늘이 아기의 팔을 찌르고 아기 눈물과 핏방울이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동안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기가 수술실에 들어간 동안, 나는 병실의 밀린 일들을 하나씩 처리했다. 사용한 젖병을 씻고, 침대에 널브러진 아기 장난감과 내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렸다. 그리고 얇은 침대 커튼을 치고 울었다. 5인실이라 우는 소리가 새어가지 못하게 끅끅 내 입을 막으며. 혹여나 시온이를 다시 못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피가 너무 많이 나서, 어디 신경을 잘못 건드려서 시온이를 영영 못본다면 어쩌나. 나는 휴지뭉치를 들고 병실을 나가 복도 한켠에 있는 창문앞으로 갔다. 창 너머로 보이는 산이 왠지 모르게 든든했다. 거기 기대어 서서 한참을 울며 기도했다. 불쌍한 우리 아기를 제발 살려주시기를. 꼭 다시 만나서 시온이가 방긋 웃는 것, 말하는 것, 노래 부르는 것도 보게 해 주시기를.     



2시간여의 수술을 마치고 아기가 병실로 돌아왔다.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는 아기의 입이 거칠게 말라있었다.

수술을 위해 어젯밤부터 금식을 했으니 얼마나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플까? 그 메마른 입에, 굶주렸을 그 빈 속에 따뜻한 분유를 재빨리 타서 먹여야 하거늘, 금식은 오늘까지도 이어진다. 나는 힘없이 우는 아기를 아기띠로 들쳐안고, 그 작은 등을 투닥 투닥 한없이 두드려줄 뿐이었다. 나는 또 무능한 엄마가 되었다.

밥도 주지 않고, 날카로운 주삿바늘앞에서도 지켜주지 못하는 내가 얼마나 미울까? 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질문들을 던지며, 나는  발바닥이 아픈 줄도 모른  아기를 안고 병원 복도를 한없이 걸었다.

그날 내가   있는 유일한 엄마 노릇은 아기를 안고 터벅터벅 걷는 것이었다. 슬리퍼를 신고 오래 걷느라  발이 아파서, 아기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허리가 아파서 오히려 감사했다.


터널 같은 이 시간을 지나, 병원 밖으로 나가면 더 든든하고 멋지게 엄마노릇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래 걷는 동안, 어느새 시온이가 내 품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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