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이를 생각하다보면, 울어도 될 때와 그렇지 않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먼저, 울어도 되는 때는 늦은 밤 혹은 이른 새벽입니다.
남편과 온유가 자고 있을 때, 아니 이 세상 모두가 잠들어 있을 것만 같은 그 시간에
저는 거실 한쪽이나 식탁 밑에 앉아서 시온이를 떠올립니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함께했던 사진, 영상, 그 동안의 추억들을 되짚어보면
말랐을 거라고 생각했던 눈물이 샘 솟듯이 나옵니다.
그 시간은 마음껏 눈물을 흘려도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때입니다.
슬피 엉엉 울어도 누구도 불쌍하게 생각치 않고,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을테고,
아무에게도 걱정끼치지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늦은 밤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자면, 다음날 아침의 눈은 필시 퉁퉁 부을 것입니다.
그럼 사람들은 간밤의 내 시간들을 추측할지도 몰라요.
마음껏 울 수 있는 두번째 순간은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때입니다.
다만,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눈물이 나와서는 곤란합니다.
그때는 아직 수 많은 사람들이 있고, 괜히 눈물 흘리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너무 급할때는 마스크를 눈까지 덮을 수도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이상하게 보이긴 하지만요.
집앞에서 내려주는 마을버스에서 하차한 직후가
진짜 마음껏 울어도 되는 때입니다.
시온이와 자주 갔던 공원 벤치에 앉아서
어두움 속에 내 얼굴을 숨기고 나는 마음껏 눈물을 흘립니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저게 시온이인가 생각도 하고
시온이가 여기서 뛰놀던 모습을 그리며 슬퍼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계속 울 수는 없습니다.
혹시나 나보다 먼저 남편이 집에 와있으면
눈물로 엉망인 내 모습을 보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적당히 울다가
찬 바람에 슬픈 기운을 지우고 천천히 집으로 가야합니다.
이렇게 글로 써보니
우리 인생은 울어도 될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들이 섞여있네요.
어쩌면 영원히 마음껏 울 순간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여하튼 이 생을 살아내야하니까요.
눈물짓다가, 눈물을 닦고, 일어섰다가, 다시 주저앉아서 울다가, 웃음짓다가 그렇게 살아가야합니다.
지금의 나는 아직 내가 울 수 있음에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눈물이 줄어드는게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