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이 수목장에 다녀왔다.
얼마 전 수목장에서 연락이 왔다.
시온이가 있는 자리에 나무 명패가 완성되었다고.
설치하고 나서 하루 정도 땅이 굳으면 보러 오실 수 있다고.
출근하고 문득 받은 문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직 남아있는 노란색 꽃잎이 기특하기도하고,
나무 명패에 새겨진 시온이 이름을 보니 너무 보고싶어서
얼른 수목장에 가고 싶었다.
그 주 토요일.
드디어 친정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온유와 함께 시온이가 있는 수목장에 다녀오기로 했다.
수목장에 가기 전날,
시온이에게 줄 꽃을 사러 갔다.
친절하셨던 꽃집 사장님께서 어떤 꽃이 필요한지 물으셨다.
"수목장에 놓아둘 꽃이요."
차마,
내 입으로, 내 어린 딸에게 줄 꽃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수목장이요? 그럼 국화는 어떠세요?"
"아니에요. 국화는 말고요.."
국화는 너무 슬픈 꽃이에요.
시온에게는 밝고 화려한 꽃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속으로 말하며, 진열장에 있는 꽃들을 휘 둘러봤다.
"사장님, 저기 노란색 튤립은 어때요? 옆에 프리지아도 예쁜데요."
노란색이 참 잘 어울렸던 시온이에게 맞는 꽃들을 주문했다.
프리지아는 보관이 쉽지 않아서 다른 것으로, 이것 저것 골라서 예쁘게 만들어주신다고 하셨다.
예약하고 가게를 나가려는데, 입구에 작은 꽃다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꽃집 사장님께서 그건 프리저브드 꽃이라고 하셨다.
생화는 금방 시드는데, 프리저브드 꽃은 오래가도록 약품처리를 한 꽃이라고 했다.
오래가는 꽃?
이게 좋을까?
꽃다발을 안고 서서 한참을 고민했다.
수목장은 야외니까, 바람도 많이 불고, 비가 오기도 해서..
프리저브드 꽃이 좋지 않을까?
그런데, 약품 처리를 하고 파랗게 칠해진 꽃이 나는 이상하게 예뻐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
시온이한테는 싱싱한 생명이 담긴 꽃이 잘 어울려.
우리 시온이에게 처음으로 주는 꽃다발은
싱그러운 생화로 주자. 바람결에 꽃향기도 맡도록.
사장님께 생화 꽃다발을 최종 예약하고 집으로 왔다.
마트에서는 시온이가 좋아하던 뽀로로 음료수도 한 병 샀다.
아침 일찍 꽃을 찾으러 갔다.
왠지 웃고 있는 것 같은 귀여운 노란색 튤립,
부드러우면서도 밝은 색들의 꽃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참 예뻤다. 생화로 하기를 잘했어.
"엄마, 저 꽃이랑 같이 사진 찍어주세요."
시온이에게 줄 꽃을 안고 기념사진을 남기는데,
왠지 모르게 시온이를 안고 찍는 것 같았다.
꽃처럼 예뻤던 우리 딸.
이제 너를 안고 찍지는 못하고, 너에게 줄 꽃을 안고 찍는다.
온유는 수목장 가는 게 나들이 같은지, 신나 보였다.
아니 어쩌면,
동생을 보러 가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온유는 수목장 가는 차 안에서 시온이가 걱정된다고 말했었다.
사람들이 밟을까 봐 걱정된다고..
온유는 시온이 오빠로서의 몫을 다 해내고 있었다.
해맑게 달려가는 그 뒷모습이 나는 많이 서글펐다.
저 뜀박질의 끝에 진짜 시온이가 기다리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시온이의 명패는 이제 갓 만들어져서 그런지 참 깨끗했다.
나는 장갑을 끼고 낙엽들을 줍고, 아빠와 같이 조약돌에 붙은 노란 꽃잎들을 정리했다.
이때 떼어버리지 않으면, 꽃잎이 돌에 다 붙어버리고 색깔이 빠져버린다고 그러셨다.
그렇게 깨끗이 손질한 후에,
시온이에게 싱그러운 꽃다발을 건넸다.
향기를 잘 맡도록 방향도 바꿔주고,
그토록 좋아하던 뽀로로 음료수 딸기맛도 주었다.
시온아.
너는 진짜 나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어.
별볼일 없는 내 인생에 너는 얼마나 특별했는지.
시온이를 지켜내지 못한 것 같은 생각에 마음 한켠이 무너져내리는 듯했다.
그때 문득, 시온이 나무 한 켠에 놓여있던 오래된 꽃바구니가 보였다.
한달전.. 시온이를 처음 수목장에 묻을 때, 두고 갔던 꽃바구니였다.
지저분해지면 수목장에서 치워주신다고 했는데, 그게 아직도 있었던 것이다.
한달이나 지났으니 다 시들고 말라버린 꽃들인데..
그중에 목화만 하얗게, 처음 모습 그대로 서있었다.
그때 깨달아졌다.
목화의 꽃말이 '엄마의 사랑'이라던데.
왜 그렇게 정해졌는지.
다른 꽃들은 시들어도, 목화는 처음 모습 그대로 한결 같이 서있구나.
숨 죽어 버리지 않고, 포송 포송 처음 모습 그대로 포근하게.
언제라도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을 그 모습 그대로.
그 순간 목화 두 송이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시온이를 못 잊는 건 당연한 거야.
우리는 엄마니까.
그냥 그 자리에서 그렇게 한결같은 거야.
한결 같이 사랑하고, 한결 같이 따뜻하게.
언젠가 시온이를 만나면 따뜻하게 안아줘야지. 원래 그랬던 것처럼.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시온이를 향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거야.
목화가 말을 건넸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 목화꽃에게 나도 대답해주었다.
위로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시온이 곁에 잘 있어준 것도 고마워.
다음번에 수목장에 오면,
목화 꽃 한 다발을 가져와볼까.
다음에 또 만나
목화 꽃에게도,
시온이에게도,
시온이를 닮은 꽃에게도 작별 인사를 건네고
수목장을 내려왔다.